"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또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임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저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하며 패배를 겸허한 심정으로 인정합니다." (1992년 12월 19일, 김대중 은퇴 성명)
<김대중, 다시 정권교체를 말하다>(중앙북스, 2012)는 이 대목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김대중의 정계 은퇴 선언부터 1997년 12월 19일 새벽 제15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기까지 1825일간의 이야기다. 세 번째 낙선 이후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낸 이 기간은 정치인으로서는 물론, 한 인간으로서도 가장 고통스런 생애의 단면(斷面)이다.
그 고통스런 단면에는 좌절과 실의에 빠져 정계 은퇴를 선언한 노정객의 나약함과 소심함, 그리고 이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날 것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러나 정작 김대중 본인이 구술하고 직접 감수한 1500쪽 분량의 방대한 <김대중 자서전>(삼인출판사, 2010)에는 그 대목이 68쪽 분량으로 비교적 간략하게 담겨 있다. 그 당시 상황이 소홀히 다뤄진 것은 어쩌면 그 시절 겪은 실의와 좌절의 극한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김대중은 '큰바위 얼굴' 같은 우상<김대중, 다시 정권교체를 말하다>는 좌절과 실의에 빠진 김대중이 어떻게 재기를 모색하고 어떤 전략을 세워,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는지에 대한 승리의 보고서다. 더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노정객이 젖 먹던 힘을 다해 절치부심(切齒腐心)과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과정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책은 김대중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찬 기존의 전기(傳記)와는 다르다. 그의 약점과 나약함 그리고 소심함까지를 모두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기록한 김대중의 5년간의 단면은 <김대중 자서전>보다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책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언젠가는 DJ의 평전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우표를 수집하듯, 그의 모든 언행을 하나하나 기록해 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 DJ의 트레이드 마크인 '햇볕정책'의 탄생 비화 대목을 보면, <김대중 자서전>은 94년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필자는 DJ보다 더 꼼꼼한 기록을 통해 그보다 1년 전에 1993년 봄 케임브리지대에서 탄생했다고 밝히고 있다.
필자의 꼼꼼함은 일종의 팬과 우상 사이의 '팬덤'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책은 김대중을 자신의 '큰바위 얼굴'로 여기며 20여 년 동안 보필한 필자가 팬의 입장에서 언젠가 이 우상의 말과 행적이 역사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록의 뿌리는 연원이 깊다.
전남 고흥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장성민(공동필자)에게 김대중은 '큰바위 얼굴' 같은 우상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물으면 "김대중 총재님 비서요"라고 하면서 큰 '김대중 키즈'(Kids)다. 대학에 다닐 때는 DJ가 나온 기사를 빼놓지 않고 읽었다. 덕분에 그는 대학 4학년이던 87년 직선제 대선 당시 평민당 상황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걸어다니는 김대중 사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DJ 자신조차도 잊어버리고 있던 사소한 에피소드나 온갖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DJ의 '훈장식 리더십'
필자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DJ의 남다른 리더십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중의 하나가 DJ의 '훈장식 리더십'이다. DJ는 평소에 자신이 정치가가 안 되었으면 교육자나 학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DJ의 주변에는 한평생 충성스러운 측근들이 있었다.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김옥두, 남궁진, 윤철상, 설훈, 배기선 같은 이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밖에도 목숨 걸고 DJ를 추종하고 지지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DJ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측근들로부터 존경심과 충성심을 얻어낼까. 그의 리더십의 핵심과 요체는 뭘까.한 평생 야당을 했으니 권력으로 보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퍼주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지지자들은 목숨을 걸고 그를 따른다. 왜? 그런 궁금증에 대해 오랫동안 DJ를 곁에서 지켜보며 내 나름대로 얻은 답변이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설복'(說服)이다. 말 그대로 설득해서 복종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87쪽)그러나 그 전에 DJ는 본인 스스로를 설복하는 논리가 있어야 행동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DJ는 자식보다 나이 어린 비서에게도 존칭을 썼고 어떤 경우에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다. 심지어 DJ는 단둘이 있는 사적인 공간에서 비서에게 말할 때도 대의명분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는 논리가 없으면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자기가 세운 논리 때문에 행동이 제약받고, 논리의 포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 자체가 적어놓고 보면 연설문이고 어록이 되기에 충분했다."(91쪽)조순 서울시장 후보 '복장 코디'까지 코치한 DJ또한 이 책에는 필자가 김대중의 재기를 위해 짜낸 '대한민국 대통령 만들기, 김대중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권력의지의 발현과 DJ에 우호적인 학자들을 동원해 만든 '전당대회를 통한 두 마리 토끼 잡기' 보고서를 비밀캠프를 통해 구현해가는 과정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를테면 1995년 정계에 복귀해 새정치 국민회의를 창당한 김대중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당의 공식선거운동본부와는 별도로 서교호텔 꼭대기층에 비밀리에 '조순 당선대책위원회'를 꾸려 복장 코디에서부터 연설 코치까지 모든 걸 코치했다. 필자는 "DJ가 다른 사람을 위해 복장 코디네이터를 하고, 토론 코치를 한 건 평생 처음일 것"이라고 기록했다. 지방선거, 특히 서울시장 선거의 승리가 곧, 1997년 대선에 재도전할 수 있는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또 DJ가 마포 강변 한신코아 1411호에 '밤섬 아지트'라고 부른 비밀 대선캠프 사무실을 얻어 대권의 산실로 만들어 간 과정도 흥미롭다. 밤섬 아지트에서 구상한, 대권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였던 이른바 DJP연합도, 사람들은 정치공학적으로만 해석하지만 DJP연합 모델의 출발은 네덜란드 정치학자 아렌트 레이파르트가 정립한 '협의민주주의'(수적인 우열과 상관없이 정당들끼리 권력을 공유해 사회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정치이론)였다.
박정희 대통령과 맞설 야당후보를 뽑는 1970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DJ가 YS에 역전승한 이후부터 대한민국 야당사는 두 사람의 갈등과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DJ 대선 승리의 마지막 고비는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당시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긴급기자회견 형식으로 터뜨린 'DJ 비자금' 의혹이었다. 1970년과 1987년, 그리고 1992년에 이은 DJ와 YS의 마지막 승부이기도 했다. 이때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겨울 골프 모자를 푹 눌러쓴 DJ가 조선호텔에서 YS 대리인(김광일 청와대 정치특보)을 만나 담판하는 장면은 007 첩보작전을 방불케 한다.
거대한 '인재 풀' DJ와 '김대중 키즈'의 출사표
김대중은 '인재 풀'의 거대한 저수지였다. 김대중은 88년 총선을 앞두고 '평민연' 등 재야 출신을 대거 영입했다. 96년 총선을 앞두고는 김근태를 비롯한 재야 운동권과 정동영, 천정배, 추미애 등 전문가 그룹을 영입해 마침내 97년 대선에서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김대중의 승리가 없었다면 '대통령 노무현'도 없었다. 노무현을 해양수산부장관에 발탁하고 집권 민주당의 고문직을 맡긴 이른바 '김심'이 없었다면 '노풍'도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뒤에 광주에 가서는 "제가 성공해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 그룹과 진보진영이 대거 정치권에 입성한 것도 김대중 집권 이후다. 지금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 변호사를 중심으로 시민사회에서 낙천·낙선운동을 펼친 것도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현재와 같은 '진보 대 보수'의 경쟁구도가 만들어지는 데도 김대중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이 책의 제목을 <김대중, 다시 정권교체를 말하다>로 정한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던 정권교체를 이뤄낸 김대중의 집념과 전략이 여야 정치권 모두에 '창과 방패'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공동필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2011년 2월부터 약 8개월간 <중앙SUNDAY>에 인기리에 연재된 '인간 김대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 장성민이 추가로 자료를 제공하고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혁이 집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책에는 20년 동안 김대중의 비서와 참모로 일한 장성민이 일기형식으로 기록해온 김대중과 측근들의 대화를 포함해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수많은 비화가 담겨 있다. 기자 김종혁은 수십 권의 책을 쓰기에 충분한 자료들 중에서 고갱이만을 추려내 마치 김대중을 곁에서 지켜보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예비후보자 가운데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을 지낸 인사들이 50명에 달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노무현 키즈' 가운데 얼마가 국회에 입성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또 이 책의 필자인 장성민(전남 고흥·보성)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으로 신인이 아니지만, 그 말고도 마지막 세대의 '김대중 키즈'들이 이번 총선에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1997년 정권교체 이후 인수위를 거쳐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서 5년간 김대중을 보좌하고 '대통령비서실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명진(광주 남구), 제1부속실장을 지낸 김한정(서울 양천을),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훈(경기 과천·의왕), 퇴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을 지낸 최경환(광주 북을) 예비후보들이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국회에 입성해 '김대중 정신'을 구현해 나갈지도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