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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집단교섭은 지금 참여하는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섭이 성공하면 전국 청소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바꿀 수 있다. 선례가 생기면 90%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다'라는 걸 깨닫고 함께 움직이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이화여대 청소노조 손종미 분회장)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월급, 한 평 남짓한 휴게공간…. 자신의 목소리도 낼 수 없었던 대학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 뭉쳐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려대와 고려대병원, 연세대, 이화여대, 경희대, 홍익대 등 6개 사업장 청소노조는 지난 17일 임금 인상과 청소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12개 하청업체 대표자와 집단교섭을 벌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교섭은 흔치 않은 사례여서 언론 등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한겨레신문>은 "힘 있는 정규직 노조도 하기 어렵다는 집단교섭을 '청소 아줌마'들이 해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7일, 이번 집단교섭을 이끌고 있는 고려대 이영숙 분회장, 고대병원청소노조 김윤희 위원장, 경희대 백영란 분회장, 연세대 김경순 분회장, 이화여대 손종미 분회장, 홍익대 이숙희 분회장을 직접 또는 전화로 인터뷰했다.

 

 

노동자 목소리 들어준 집단교섭, 그러나 임금은 제자리

 

"이번 집단교섭, 잘 되어가고 있나요?"

"(고개를 저으며) 이거 봐요. 이게 회사에서 준 제안서인데, '연대·고대·고대병원·이대는 4600원, 홍대는 4580원'이라 돼 있어요. (지난 교섭보다) 하나도 안 올랐어. 작년 11월 시작해서 7차까지 온 교섭인데 아무 것도 되고 있지 않아."(고려대 청소노조 이영숙 분회장)

 

주 40여시간을 근무하는 청소노동자들의 급여는 100여만 원 남짓이다. 손종미(48) 이화여대 분회장은 "매년 물가는 크게 올라 장바구니에 물건 하나 담기 어려운 상황에 이 정도 임금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 임금 평균의 50%에 해당하는 시급 5410원을 주장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집단교섭에서도 불구하고 임금동결을 고수하고 있다. 이영숙(65) 고려대 분회장은 "1월 31일이 8차 교섭이다"라며 "이때도 회사가 제대로 된 안을 갖고 오지 않으면 노조 측에서 적극적으로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측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김경순(65) 연세대 분회장은 "작년에 최초로 집단교섭을 했을 땐 회사들도 처음이라 얼떨결에 인정한 것 같으나 이번 교섭에서는 경험도 있고 복수노조 문제도 생겨 어렵다"고 말했다. 이숙희(54) 홍익대 분회장도 "작년 집단교섭 성공은 사실 홍대 투쟁의 영향이 컸기에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고 얘기했다.

 

집단교섭의 가장 큰 난제는 '복수노조'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 복수노조다. 우리 같은 경우는 새 노조 생기고 갑자기 조합원들 사이에서 '우리는 민주노조라 근속년수에 따른 포상을 못받는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불안해하더니 결국 탈퇴하더라. 다른 학교에서도 복수노조가 특근수당이나 인사권 등을 말하면서 (노조원들을)포섭하고 있다."(손종미 이화여대 분회장)

 

집단교섭에 참여한 분회장들은 이번 교섭의 난제로 하나같이 '복수노조 문제'를 말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교섭 대상 노조가 2개 이상이면 과반이 넘는 노조에 교섭권을 주고 있다. 한마디로 복수노조가 생기면 힘이 큰 노조가 교섭권을 뺏어갈 수 있는 것이다. 최근들어 현 청소노조에 반대되는 성향의 다른 노조들이 대학 내에 속속 등장해 기존 조합원의 탈퇴를 유도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런 노조의 경우 회사가 '배후 조종'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연세대에서는 하청업체 J사가 복수노조 설립에 개입했다는 문건이 발견돼 이러한 의혹이 입증되기도 했다

 

대개 간부급 관리자로 이루어진 새로운 노조는 기존 조합원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포섭했다. 출범하자마자 거의 동시에 복수노조가 설립된 경희대는 출범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탈퇴자들이 생겨났다.

 

조합원이 380여명에 달하던 연세대도 복수노조 설립 이후 215명 정도만이 남았고, 홍익대의 경우는 이미 경비 쪽에서 새로 설립된 노조가 기존 경비노조의 교섭권을 가져간 상태다. 김경순 연세대 분회장은 "복수노조는 기존 노조보다 조합비를 적게 받고, 집회 대신 대화로 풀어나가겠다면서 조합원을 유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영란(55) 경희대 분회장은 "그러나 용역회사의 노조인 만큼 곧 기반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며 "복수노조 해결을 위해선 끊임없이 노동자들과 소통해서 민주노조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순 분회장도 "탈퇴한 조합원에게도 활동 내용을 담은 소식지를 계속 전달하고 있고 실제로 소식지를 보고 다시 마음이 돌아선 조합원도 있다"고 전했다.

 

"조합원들이 집단교섭에 큰 자부심 갖고 있어"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청소노동자들이 계속 싸우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받으니까 생활도 안되고, 저축도 못하더라. 비정규직이니까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피땀흘려 일해도 간신히 생계만 유지하더라. 우리같이 늙고 힘없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만이라도 인간다운 사회에서 살아보고 싶었다."(김윤희 고대병원청소노조 위원장)

 

"가능하면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지만, 싸울 수밖에 없다. 연대할 때 아줌마들이 '으쌰으쌰'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데 우리는 어떤 사상이 있어서 나온 게 아니다. 그저 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제발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내 일처럼 바라봐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이숙희 홍익대 분회장)

 

학생들과 연대한 것은 대학가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백영란 경희대 분회장은 "경희대 청소노조는 학내 대학생들이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학생공동대책위원회'을 꾸려 학교와 직접 협상하고 발로 뛰었기 때문에 출범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영숙 분회장은 "평소에 공부할 땐 공부하다가 우리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나와주는 고대 학생들이 아주 고맙다"며 "아직도 고통받는 다른 대학 노동자들에게도 학생들이 손을 내민다면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먹고 살기 위해 뭉친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연대를 통해 희망을 찾고 있다. 돌아오는 31일 8차 교섭에서 그들은 그 희망을 이룰 수 있을까?

 

"노조를 만들고 힘이 생기니, 8시간만 일하게 됐고 토일 근무도 안 하게 됐고 월급도 올랐고 상여금이라는 것도 받아봤고, 일개 용역회사 소장들이 짓밟는 것도 없고, 식대도 받게 됐다. 이 모든 게 청소노동자들이 전부 이뤄낸 결과다. 조합원들도 집단교섭을 하고 있다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게 단결, 연대의 힘이 아닐까 싶다. 흔들림 없이 똘똘 뭉쳐서 즐겁게 할 것이다."(이숙희 홍익대 분회장)

덧붙이는 글 | 김경훈, 김지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청소노조, #집단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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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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