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관내 학교마다 개학을 코앞에 두고 슬슬 분주해지고 있다. 당장 올 1월 1일자로 발효된 학생인권조례에 합치하도록 학교 규정을 손봐야 하기 때문이다. 교직원, 보호자, 학생대표로 구성된 규정개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고, 위원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어 민주적 절차에 따라 개정된 규정을 전체 학생들과 보호자에게 즉각 공지도 해야 하고, 조례의 선언적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 시행 규칙도 학교마다 마련해야 하니, 대강의 윤곽이라도 그려놓아야 할 지금부터 완성될 3월 초까지는 그야말로 숨 돌릴 겨를조차 없을 시기다.
그런데 방학 기간이라 그런지 학생과 학부모들은 물론, 교사들조차 학생인권조례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이미 선포일에 맞춰 조례의 전문은 물론, 해설서까지 교육청과 일선 학교의 누리집 등에 실렸고, 모든 교사에게 소책자가 배포됐지만 관심을 갖고 조목조목 살펴본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체벌 금지와 두발 자유화, 전자기기 소지 허용 정도를 명문화한 상위 규정 정도로만 두루뭉수리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름 꼼꼼히 챙겨봤다는 경우도 학벌이 온존하는 현실에서 시기상조라거나, 성적 지향이 다른 소수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 일부 조항을 들어 우리 정서에 맞지 않다며 조례 전체를 싸잡아 폄훼하기 일쑤다.
조례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훨씬 보편적이고 포괄적인데도, 학생의 경우 학교생활 중에 자신들에게 당장 절실했던 것만을, 학부모들과 일부 교사들은 언론 등에서 쟁점으로 부각해 갈등의 소지가 다분한 것인 양 떠드는 것들만 선택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이러한 편견과 오해들은 조례의 '연착륙'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게 뻔하다.
학생부장으로서 조례 제정의 취지에 공감하며 학생생활규정의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동료 교사들의 생각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 방학 중 보충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회 임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는 한편, 전화를 걸어 여러 학부모들로부터도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규정의 개정에 도움을 받으려는 것인데, 정작 조례에 명시된 사항에 위배되는 내용을 학교장 재량으로 유지하거나 추가하자는 주장이 생뚱맞게 나오기도 한다. 이는 교육 주체 간 조례에 대한 찬반이 명확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의외로 두발 자유화에 관한 허용 여부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못해 사소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내용을 두고도 적지 않은 갈등을 드러냈다.
학생과 교사 간의 '기 싸움'으로 인식되는 두발 단속 문제우선 학생들의 경우, 다른 건 몰라도 두발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심지어 "다른 조항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별 관심 없다"며 "우리에겐 인권조례의 전부"라고 잘라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자신의 개성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에 지금껏 아이들에게 두발은 가장 간절한 수단이자 목표였던 거다.
두발 자유화를 대하는 교사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아침마다 교문에 서서 등교하는 아이들 상대로 내키지도 않는 두발 단속하느라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는데, 혹 하나 뗀 것 같아 홀가분하다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단정치 못한 용모는 결국 행동이나 습관을 비뚤어지게 할 것이라며 우려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두발 단속이 전근대적인 방식이고 학습이나 생활지도에도 별 영향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단속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경우다. 어떻든 두발 단속 규정이 풀리면 아이들의 요구가 도미노처럼 확산돼 생활규정 중 적지 않은 조항들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말하자면, 학생과 교사 간의 일종의 기 싸움으로 인식하는 셈이다.
적지 않은 교사들이 두발 단속을 아직도 학생 생활지도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다면, 학부모들 대다수는 한발 더 나아가 두발 단속을 생활지도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두발 단속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망치게 된다는 식이다. 상담 경험으로 미루어, 학부모들 중 열에 일곱, 여덟은 두발 자유화를, 거칠게 말해서, 생활지도의 포기라며 큰 우려를 나타낸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조례의 체벌 금지 규정만큼은 당연하다는 듯 환영했다. 엉덩이나 허벅지에 매를 대는 것이나 멀쩡한 머리카락에 가위질하는 것이나, 따지고 보면 심한 굴욕감을 준다는 것에서 다 같은 체벌인데 왜 그토록 두발 단속에는 '관대한' 것인지 궁금했다. 학부모들은 마치 서로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이유를 들었다.
머리카락이 길면 아이들이 거기에만 신경 쓰느라 공부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억측일 뿐이지만 학부모들은 물론 교사들 사이에서도 두루 회자되는 주장이긴 하다. 답답한 마음에 과연 우려한 대로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길어지면 성적이 떨어지는지 두고 보자고 해도 도통 막무가내다.
이런 이유를 대는 이들도 많다. 긴 머리카락에다 염색까지 하고 거리에 나가면 성인인지 학생인지 분간할 수가 없게 돼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늘어나게 될 것이라 주장한다. 과문한 탓인지, 길거리에서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워대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질책하는 어른들을 만나본 기억이 없다. 그게 과연 머리카락 길이로 분간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일까.
용모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두발자유화 '선언'그런가 하면, 군대 생활을 빗대며 옳고 그름을 떠나 학생들의 머리카락은 짧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게 학생다운 것이라고 했다. 학생이 어른들 흉내를 내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들도 어른이 되면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다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논리고 뭐고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완결된' 주장이다. 마치 할아버지가 코흘리개 손자 어르듯, 스스로 '학생다움'을 정의내리고 두발 단속을 폐지해달라는 것을 치기 어린 주장쯤으로 단정해 버리고 있다. 두발 자유화가 자신의 용모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선언'인데도, 그저 어른들 흉내 내는 것쯤으로 비하하고 있는 셈이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학창시절 '앞머리 3cm, 옆머리 2cm'라는 칼 같은 두발 단속 규정을 따르기 싫어 동도 트기 전 새벽에 등교하고, 학생주임 교사의 눈을 피해 숨어다녔던 씁쓸한 과거가 있다. 학생인권조례와 규정 개정을 두고 대화하고 있는 또래 학부모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곧, 학생주임의 무자비한 '바리캉' 질에 머리에 '고속도로'가 나고, 그 흔적을 지우려고 어쩔 수 없이 삭발하고 등교했더니 이젠 반항하는 거냐며 다시금 혼쭐났던 그 시절을 추억할지언정 선선히 납득하는 기성세대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시대가 그랬으니 도리가 없었다고 위안할 뿐.
그런데도 여전히 두발 단속을 옹호하는 수많은 학부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때 그 학창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그저 그리운 나머지, 당시의 그토록 혐오했고 불합리하다 여겼던 관행들조차 면죄부를 주고 외려 두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게 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듯이.
수십 개 조항 중 표현의 자유를 언급한 제14조, 그것도 그 안의 세부 항목 하나일 뿐인 두발 단속 문제조차 '태클'을 거는 상황에서, 과연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취지마저 훼손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마련된다 한들, 그것을 실행하는 건 사람일진대 사람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는 일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전화를 끊고 올려다본 교무실 벽의 "교육은 마음의 일"이라는 글귀가 거듭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