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현재, 4·11 총선을 앞두고 경기도의 51개 선거구에 392명의 예비후보가 등록했다. 이 가운데 여성은 30명으로 7.5%에 불과하다. 새누리당 10명, 민주통합당 9명, 통합진보당 9명 그리고 무소속이 2명이다. 여성의 지역구 출마는 아무래도 현실적인 여러 가지 여건상 어려움이 많아 비율이 낮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지역 민주통합당 여성 지역위원장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경기지역의 민주통합당 여성 지역위원장은 전부 세 명. 유은혜(일산동구), 김현미(일산서구), 김상희(부천 소사) 지역위원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이번 4·11 총선에 출사표를 던지고 남성후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열심히 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지역구는 당선이 만만치 않은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일산동구와 일산서구는 지역 특성상 보수성향이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천 소사 역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아성으로 널리 알려진 지역이다. 김문수 지사의 후계자로 일컬어지는 차명진 의원이 이 지역에서 재선했다. 과연 이들 세 명의 여성위원장들은 어떤 각오로 이번 총선을 치를 예정인지, 여성위원장으로 어려움은 없는지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말] |
지난 1월 27일, 고양시 백석동의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유은혜 예비후보(고양 일산동구)를 만났다.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생머리를 아줌마 스타일인 '파마머리'로 바꾼 유 예비후보는 머리가 익숙하지 않아 자꾸 신경이 쓰인다면서 밝게 웃었다. 유권자들에게 보다 친숙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다가서기 위해 머리 모양을 바꿨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1981년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는 유은혜 예비후보는 그것이 인연이 되어 노동운동과 재야시민단체 운동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제도정치권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고 김근태 의장을 만나면서부터였다.
"20대 때 가졌던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소신과 제도정치권으로 들어오면서 이것을 정치적으로 실현해야겠다는 신념과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는 유은혜 예비후보는 2004년 열린우리당에 당직자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지역에서 출마하는 건 처음이에요. 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비례대표 19번을 받았는데, 18번까지만 국회에 들어갔어요. 여성정치인들이 관행적으로 비례대표 의원을 한 번 하고 지역에서 출마하는 수순을 밟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비례대표(국회의원)도 한 번 안 하고 지역에서 출마 준비를 하는 드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요."이번 4·11 총선 역시 비례대표 의원으로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유 예비후보는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수석대변인을 하면 비례대표 최우선 순위를 받을 수 있는데 왜 힘들게 지역 출마를 하느냐면서 주위 사람들이 말렸다면서 유 예비후보는 환하게 웃었다.
"기왕에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삶의 현장인 지역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을 해서 별로 망설이지 않고 지역을 택했다. 19대에 비례대표 의원으로 내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그런 식으로 쉽게 정치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믿음도 있었다.""여성정치인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나 지역현실은 달라"
- 지역으로 오니 어떤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후회하지 않았는지?"(지역구 출마를) 한 번도 쉽게 생각한 적은 없었고, 지금도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에서 여야들 떠나 정치에 대한 불신이나 거부감이 많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에 냉소적인 분들도 많고, 무관심한 분들도 많다.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우리 정치의 부정적인 측면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소외계층인 장애인이나 비정규직 아줌마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국회의원이 법과 제도를, 정책을 바꾸는 것이 이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대변해야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을 위해 법과 제도, 정책을 꼭 바꾸고 관철시켜야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지역에 잘 왔다는 생각을 그래서 한다."
- 선거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아침 일찍 일어나서 명함을 돌리면서 인사를 하는데 진짜 힘든 것은 무관심과 냉소였다. 명함을 받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욕이라도 하면 관심이 있다는 표현으로 보겠는데, 아예 냉담하게 쳐다보지 않고 눈길 한번 안 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2008년에는 명함을 주면 찢어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찢어지지 않는 재질로 명함을 만드는 후보도 있다고 했더니 "찢어지지 않으면 더 화를 낸다고 하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모든 유권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추운데도 장갑을 벗고 따뜻한 손으로 잡아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면 무척이나 고마워서 저절로 힘이 난다고 유 예비후보는 말했다.
- 여성할당 15%를 의무공천 한다고 하는데 여성의 지역 출마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여성정치인이 호평을 받거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나 지역현실은 다르다. 여성이 지역에서 출마를 꺼리는 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이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사회구조가 여전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결단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다 우리의 선거제도가 신인들이 자기를 홍보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현역의원은 의정보고서라도 낼 수 있지만 신인은 의정보고서는커녕 내 이름으로 홍보물 하나 낼 수 없다. 자신을 알리는 일조차 힘든 상황에서 유명한 명망가나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아니면 지역에 도전한다는 거는 굉장히 힘들고 꺼려지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여성이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다. 이런 여건이 달라지지 않으면 여성의 지역출마는 쉽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 중점 공약을 이야기해달라."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747 공약을 내걸었을 때만 해도 경제가 좋아지고 다 잘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국민들의 삶은 고단하고 고통스러웠다.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피부로 느끼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전셋값이며, 열악해지는 아이들 교육환경, 등록금 문제, 비정규직 문제까지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너무 많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 불안하고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 실현이 가장 시급하지만, 이 문제는 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에서 법과 제도를 마련해서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나 자신... 정치인은 끊임없는 자기 검증과 평가 필요"
유 예비후보는 이와 관련해 "민주정부 10년 동안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민주당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패배한 주요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 경제 민주화에 대한 끊임없는 점검과 실현이 가장 중요한 우선적인 공약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예비후보는 여성정치인의 입장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 문제를 보다 깊이 천착해서 여성들이 육아를 하는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현실적인 문제를 여성의 입장에서 잘 알고 있는데다 보육과 교육은 나라의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노인문제는 고령화로 인해 개인이나 가족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에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국가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유 예비후보는 강하게 주장했다.
- 이번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누구인가?"엉뚱한 대답일지 모르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상대후보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정치를 할 수 없다. 자신과의 싸움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들과 많이 만나면서 많은 말을 하고 듣는데, 내가 과연 그들과 한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는가, 내 소신과 원칙과 철학에 위배되지 않고 잘 하고 있는가, 이런 반성이 늘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포용해야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엄중해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특히 정치인은 끊임없는 자기 검증과 평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유은혜 예비후보는 |
학력 송곡여고 졸업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졸업
경력 민주통합당 일산동구 지역위원장 (전)민주당 수석부대변인 (전)국회의원 김근태 보좌관 (전)한신대학교 외래교수 우석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민주당 경기도당 여성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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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연대에 관한 입장을 후보들에게 꼭 묻는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지개연대'를 해서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다. 당시 고양시의 도의원은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기초의원도 야권이 연합해 후보를 내서 당선시켰다. 가장 원했던 것은 야권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이번 총선에서도 야권연대는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인 소명이다.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과정을 통해서 (단일) 후보를 확정해야 한다."
- 자기소개를 4자성어로 간단하게 한다면?"사자성어라고 해서 꼭 한자성어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죠? 사람은 누구나 처음과 과정 그리고 끝이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한결같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겠다는 생각이다."
"서로에게 밥을 나누는 사회, 함께 아이 돌보고 가르치는 사회, 젊은이들이 좌절하지 않는 사회,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사회, 국민들이 희망을 얘기하는 사회, 99%를 위한 사회를 만드는데 작은 역할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유은혜 예비후보의 '출마의 변'이다. 여성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가 그려지지 않는가. 유 예비후보가 자신의 뜻을 오롯이 펼칠 수 있는 것은 유권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고양시 일산동구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