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엄마 노릇 10년차다. 하지만 엄마 노릇은 갈수록 어렵다. 요즘 세상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과연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늘 고민한다. 동병상련, 이 고민에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엄마들이다. 여러 사람에게 귀를 열어봐도 자녀 얘기에는 역시 엄마만한 전문가가 없다. 단, 엄마들은 미완성 전문가다. 열정과 마인드 면에선 누구보다 전문가이지만,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점에선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올해 10년차 엄마인 나는, 좀 더 마음을 열고 '보통' 엄마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유별나지는 않지만 조금은 특별한 엄마들의 자녀 교육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기자 말>
이 엄마, 정혜인씨를 만나고 고민했다. 이틀에 걸친 인터뷰. 정씨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이 기사를 어떻게 풀어야하나. 잘 쓰면 '본전'이지만, 여차하면 '낭패'다. 정씨를 '괴팍한 엄마'로 만드는 건 한 순간이었다. 기사가 나가면 수많은 누리꾼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악플에 시달릴지도 모르니 우리 둘 다, 각오 단단히 해둬야 한다는 다짐(?)을 주고받고서 인터뷰는 진행됐다. 1월 말, 이틀에 걸쳐 정혜인씨를 인터뷰했다.
정혜인씨를 소개하겠다. 현재 1남을 두고 있다. 아들 상수군은 올해로 22살, 최종 학력은 중졸이다. 또래친구들이 고등학교에 갈 때, 상수군은 홈스쿨링을 했다. 성적히 월등히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교우관계도 좋았다. 혜인씨는 아들을 학교에 일부러 보내지 않았다.
혜인씨가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먼저 설명하겠다. 인터뷰에 응한 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인터뷰를 수락한 건, 학업성적을 제일로 여기는 요즘 사회분위기를 다시한번 짚어보자는 데 있다. 공부에 연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혜인씨 교육이야기를 들어보자.
- 아들을, 고등학교부터 진학시키지 않았다. 이유가 뭔가? "간단히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고등학교라는 시점을 특별히 기다린 건 아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언제든 학교에 그만 다닐 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대비하고 있었다. 공부를 꼭 학교라는 공간에서만 해야하는 건 아니잖나. "
- 꼭 공부만 하기 위해서 학교를 보내는 건 아니다. 또래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사회성도 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 그 점에서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살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다. 아들은 또래아이들이 갖는 학창시절의 추억은 갖지 못했지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갖지 못한 또 다른 것을 얻었다. 학교다니는 아이들이 갖지 못한 또 다른 것을 얻었다. 난 그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부, 꼭 학교에서만 해야하나? 혜인씨의 교육관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그녀의 개인사를 조금 소개해야 한다. 혜인씨는 결혼한 그 이듬해 상수를 임신했다. 임신 8개월째, 그녀의 남편은 암 판정을 받았다. 주위에선 모두 아이를 포기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아이의 첫돌을 보름 남겨두고, 남편은 끝내 세상을 저버렸다. 그렇게 혜인씨는 아들 상수와 단둘이 남겨졌다.
세상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혜인씨에게 아들 상수의 존재는 조금 더 특별하다. 남편을 잃고 시름에 빠졌던 당시, 만약 아들이 없었더라면 어찌 됐을까 생각하면 상수의 존재는 애틋함 그 이상이다. 두 모자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살았다. 둘만 사는 집에서, 함께 책을 보고, 대화를 나누고, 산책을 했다. 이 두 모자의 관계에서 '대화'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매개체다.
- 학교라는 공간을 불신(?)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대안학교를 꿈꿨다. 아이가 '엄마, 학교 그만 다니고 싶어요'라고 하면 곧바로 학교를 그만 두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의외로 적응을 잘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무렵, 내가 사진을 배웠다. 내가 출사모임이 있을 때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출사모임에 데리고 갔다. 교실에서 한글 공부를 하는 것보다, 자연에서 놀리고 싶었고, 그 편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날 보는 교사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뭐, 저런 엄마가 다 있어...'라고.(웃음)"
- 원래 제도권 교육에 반감을 갖고 있었나? "아이의 학교생활을 보면서 느낀 건 우리가 학교 다닐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대가 변했어도 교실은 변하지 않았다. 체벌도 여전했고, 폭력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한 번은 아이가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하자 교사가 우리 아들에게 '니네 엄마는 집에서 뭐하냐'고 물었단다. 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체벌이 뭔지, 욕이 뭔지 전혀 알지 못했던 아들에겐 학교에서 행해지는 체벌과 언어폭력은 충격 그 자체였다. 현실이 이 지경인데도 학교에 보내야하는 걸까, 계속 회의가 들었다."
- 그 이유가 전부였나?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때였다. 아이가 친구와 실랑이를 하는 걸 보고 지나가던 옆 반 교사가 우리 아들에게 '이 자식, 커서 깡패 될 놈이네'라고 했다. 아들이 그 말을 듣고 와서 나에게 '죽고싶다. 학교 폭파해 버리고 싶다'고 했다. 억울했던 거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해당 교사에게 이 문제를 따졌다. 그랬더니 자기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가 교장의 귀까지 전해졌고 해당 교사와 아들 사이에 진실공방이 이어졌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학교에 아들을 보내지 않았다."
- 아이가 다시 학교에 나간 이유는? "사실, 그 때도 여차하면 학교를 그만 두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열흘쯤 지나자, 아들이 말했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학교에 다시 나가고 싶다고. 학교에 다시 나가겠다고 하자 교장선생님이 집으로 와서, 아들을 직접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그때도 분명히 교장선생님께 얘기했다. 우리 아들이 뭔데, 그런 특수대접을 해주시냐고. 아들은 열흘 만에 다시 학교에 나갔다. 혼자서."
- 선생님들과 늘 위태위태했을 것 같다. 어땠나?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참교육학부모회에 참가해서 활동했다. 자모회장도 맡았다. 선생님들과는 정말 친하게 지냈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분도 계신다.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이 계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다. 그런 선생님들과는 치열하게 싸웠다. 아들이 중학교 시절, 내가 자모회를 맡았는데, 어느 선생님이 아예 대놓고 나에게 '언제 밥 한 끼 안 사요?'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자모회원들이 회비걷어 교사들 식사대접하는 게 관행이었는데 난 과감히 깼다. 대신 자모회원들에게는 나를 믿고 각자 형편대로 회비를 납부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그 돈으로 학교 도서관에 책을 사주었다. 또 수학여행비가 없어 못 가는 학생들을 여행 보내줬다. 이런 일들을 지지해주고 도움 주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학교대신 홈스쿨링 택한 아들과 엄마 -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게 뭔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상수와 얘길 나눴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고등학교에 가면 야간자율학습도 해야 하고, 보충수업도 해야 하고, 내신도 신경써야 하고...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공부와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네(상수)가 공부에 소질 있고 흥미가 있는 애라면 내가 적극 지원하겠지만 넌 내가 봐도 공부에 뜻이 없다. 스트레스 받으며 학교 다니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네가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래도 네가 학교에 다니고 싶다면 진학하는 거다. 어떻게 할래?라고 물었더니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 대개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자식을 달래서 보내는 게 부모인데, 정말 독특하다. 학교를 가지 않고 뭘 했나? "우선 읽어야 될 책 목록을 뽑아서 읽기 시작했다. 마침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홈스쿨링을 시작했던 그 해는 우리가 전주로 이사왔던 해였다. 아무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그러다 그림도 그리고, 여행도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학교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 체벌의 공포, 성적 스트레스, 불편한 교우관계 등 하지만 즐거움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수업시간, 소풍, 체육대회, 하다못해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놀던 추억까지. 학교생활은 지겹지만도 않고, 즐겁지만도 않다. 이 중 어느 한 쪽만이 학교라고 말하긴 힘들다. 즉, 학교는 이런저런 스트레스와 성장통을 이겨나가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배우는 공간이다. 선택은 자기의 몫이다. 혜인씨는 결국,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보다 본인과 아들의 자율성을 더 존중했고 신뢰했다."
- 학교를 그만둔 후, 계획은 생각대로 잘 이루어졌나? "잘 안됐다. 홈스쿨링을 해서 멋진 결과가 나와야 이야기가 좀 되는데...(웃음) 이건 농담이다. 내 생각과는 달리, 학교를 그만두자 아들이 책을 잘 안 읽는 거다. 내가 생각했던 홈스쿨링과는 전혀 달랐다. 홈스쿨링 체험수기 읽어보면 학교 그만둔 뒤 서너달 정도 빈둥거리다가 마침내 책을 읽게 되고, 공부를 한다는 스토린데 우리 아들은 도통 그런 기미가 안 보이는 거다.(웃음) 내 속이 탔다. 아들과 실랑이를 했다. 처음 일 년은 힘들었다. 그렇게 일 년을 싸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맞아! 행복하고 재밌게 살려고 학교도 그만뒀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싸워야 되나? 그 뒤부터는 아들을 채근하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뒀다."
- 대안학교를 보낼 수도 있었잖나? "학비가 너무 비쌌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학교는 멀리 떨어져 있어, 상수를 기숙사에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함께 즐겁게 생활하자고 그만둔 학굔데, 또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혜인씨처럼 확고한 교육관과 철학을 가지고 학교를 거부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학생은 꼭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다. 공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남들 다 가는 학교니까, 당연히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는 보내고 싶지 않은데, 안 간다고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학교에 보낸다는 부모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나는 혜인씨의 선택을 100% 지지하는 건 아니다. 나는 아직까지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통해서 더 배우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쪽이다. 하지만 혜인씨의 생각은 깊이 존중한다. 혜인씨의 얘기를 듣고 '자식을 학교에 안 보내는 엄마가 세상에 어딨어? 그러고도 엄마야?'-라고 일축하지 않길 바란다. 세상에 길이 하나만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내가 이 길을 왜 걷고 있는지 깨닫는 것이다.
- 학교를 포기하고 얻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또래 아이들이 갖지 못한 또 다른 무엇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적성에 안 맞고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된다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웠다."
다시 그때가 와도 "절대 학교 안 보낸다"
- 아이들이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불안함은 없었나?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뒤처지는 건 아니다. 비록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홈스쿨링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아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고, 자유롭게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때로는 무료하다 싶을 만큼.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겠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요즘 책읽기 모임에 나가서 독서토론하고, 출판사에서 의뢰받아 교정교열 작업을 한다.
정말 재밌다. 인생이 즐겁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줄은 몰랐다. 상수도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오십에 찾을지, 육십에 찾을지.....아니면 내일 당장 찾을 수 있을지 그건 모르는 거다. 그러기에 뒤처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상수는 작년에 처음으로 '돈벌이'라는 걸 해봤다. 집 앞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다. 혜인씨는 처음, 내심 걱정됐다. 늘 집에서 혼자 생활했던 아들이 과연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마치 그건 혜인씨의 아킬레스건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그곳에서 만난 한 회사의 사장님으로부터 취업제의를 받았다. 성실하고 성품이 바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상수는 그림 그리는데 소질이 있다. 혜인씨는 상수가 자신의 소질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주고 싶다. 하지만 혜인씨가 생각하기에 상수의 재능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꽃이 봄에 피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재능과 소질을 발견하는 시기가 전부 다르듯, 상수 역시 언젠가 그 꽃을 피울거라 생각한다. 그때까지 혜인씨는 묵묵히 지원해주고 응원해주고 싶다. 미래가 있기에 이들 모자는 행복한 것이다.
- 만약, 되돌아 가서, 똑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단호하게) 똑같다. 학교에는 안 보낸다. 대신 홈스쿨링 계획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세울 것이다. 작은 공간을 만들어, 상수처럼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모아서 함께 책도 읽고, 토론도 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아들에게는 한없이 자유로운 듯 보이는 혜인씨도 한가지 원칙은 있다. '내가 조금 더 손해보는 건 괜찮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불의는 참지 마라'는 것이다. 얼마 전 혜인씨는 주차를 하다가, 한 남성이 자신의 운전 과실을 옆에 있던 나이 든 경비원에게 덮어씌우는 것을 목격했다.
가만히 있을 혜인씨가 아니었다. 조목조목 따졌고, 필요하면 자신이 증인으로 나서겠다고까지 했다. 그 남성은 아무 말 못하고 돌아갔고, 이것을 지켜 본 아들은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우리엄마 짱!' 혜인씨가 아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공부는 바로 이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오늘도 교육현장에서 애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수고로움에 감사드립니다. 이 기사를 쓴 이유는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을 반대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에는 자기와 '다른' 교육관을 갖고 있는 이러한 엄마도 있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