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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는 나도 문화인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했다. 책도 더 많이 읽고, 영화와 연극도 자주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그동안 거의 보지 못했던 연극을 한 달에 한 편씩 보자는 결심을 했고, 1월에는 수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조선미 선배랑 같이 작품을 관람했다.

2월에는 연극배우인 이승찬 선배랑 2009년부터 무기한(Open Run)으로 공연 중인 연극 <동치미>(김용을 작/연출)를 보기 위해 지난 7일 저녁 대학로를 찾았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하여 전국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던 동치미는 현재 미주와 일본에서도 공연 계획이 잡혀 있을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 간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착하고 좋은 연극이다.
연극 동치미 포스터  동치미
연극 동치미 포스터 동치미 ⓒ 파라디소극장

정말 웃다가 울다가 다시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면서도 가슴 속이 뻥 뚫리는 감동이 남는 100분간의 사랑드라마다. 평생을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다가 은퇴한 김만복씨 부부와 1남 2녀를 중심으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과 보이지 않는 정(情), 부인 정 여사의 남편에 대한 지고지순한 존경심과 자녀들에게 대한 애절함이 끝없는 감동으로 밀려오는 작품이다.

특히, 다른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6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회사와 집만을 바라보며 열심히 일한 아버지의 생활과 은퇴 이후에도 자신의 노후에 대한 고민도 없이 IMF와 외환위기의 어려움 속에서 사업부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들과 강고한 시집살이로 친정나들이 한번 다녀오기 힘든 큰딸을 위해 자신의 꿈과 뜻을 펼치기 위해 세상의 돈벌이와는 별개의 삶을 사는 막내딸을 위해 남모르게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극작과 연출을 맡은 김용을 선생은 곰삭고 속 깊은 맛이 나는 김치 맛에 비유하여 동치미라고 정한 듯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와 자식 간은 사랑 중에 특히 부모의 내리사랑이 가장 아름다고 지고지순한 사랑임에 틀림없다면 연극 동치미는 한국 연극의 세계화에도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아버지를 열연한 배우 박기선 선생 이 시대의 서글프고 힘든 아버지를 너무나 눈물나고 그리고 있다
아버지를 열연한 배우 박기선 선생이 시대의 서글프고 힘든 아버지를 너무나 눈물나고 그리고 있다 ⓒ 파라디소극장

연극 동치미는 깐깐하고 근검절약이 몸에 밴 남편 김만복과 부인 정 여사의 집에서 일상적인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남편은 전기도 아끼고 물도 아끼고 약값도 아끼라고 한다. 부인은 당신 힘드니 올해는 에어컨부터 사자고 조르는 일상적인 아내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어머니 정 여사의 생일에 오랜 만에 집으로 찾아오는 세 자녀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자신의 생일임에도 스스로 시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남편과 자녀들을 말없이 기다리면서도 남편이 약까지도 알차게 챙기는 아내의 모습에 주인공 김만복씨는 화가 잔뜩 나있다.

"엄마의 생일에도 시간을 정해놓고 찾아오는 못된 놈들"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가장 먼저 집을 찾은 연극배우인 막내딸을 속으로는 반가워한다. 김만복은 "이제는 연극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든지, 결혼을 하라"고 종용한다.

엄마 몰래 아버지에게서 생활비와 방값을 지원받고 있는 막내딸 정연은 그래도 지지 않고 아버지에게 바락바락 대들며 연극으로 성공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이어 거의 동시에 집으로 온 큰딸과 큰아들은 오늘도 동반 가족이 없다.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는 아들 경원은 사업은 부도나서 재기 중에 있지만, 자녀와 부인을 외국에 보내두고 혼자 집으로 왔고, 사업가의 아내인 큰딸 정임은 이번에도 대통령보다 얼굴보기 힘든 바쁜 남편은 출장 보내고 혼자 친정으로 왔다.

배우 이경성 어머니를 연기한 배우 이경성 선생, 정말 눈물나도록 그리운 어머님의 모습이다.
배우 이경성어머니를 연기한 배우 이경성 선생, 정말 눈물나도록 그리운 어머님의 모습이다. ⓒ 파라디소극장

이런 언니와 오빠에게 먼저 온 막내딸이 괜스레 심통을 부려보지만, 정 여사는 모두를 감싸고 식사 준비에 바쁘다. 주인공 김만복은 자녀들 생각에 늘 마음이 아프지만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온 돈 없는 자신의 모습에 건강하지도 못해 자녀들에게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답답할 뿐이다.

큰 아들 사업자금으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냈다가 사업이 망해버려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노부부의 초라한 모습에 비애가 있기는 하지만 평생 부끄럽게 않은 삶을 살아온 것이 사실이기에 당당하기도 하다.

생일에 막내딸에게 빌린 카메라를 들고 오랜 만에 외출을 한 노부부는 사진을 찍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그동안의 인생 역정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기도 한다. 사업에 망한 아들도 걱정이지만, 사업가의 아내로 살고 있는 큰딸은 친정나들이 한번 오기 힘들어 마음이 아프고 시집에서도 구박을 받고 있는 느낌에 속이 편치 않다.

다리도 아프고 속도 좋지 않은 자신을 꾸준히 챙겨주는 부인 정여사도 실은 무척이나 몸이 좋지 않다.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일하면서 고생한 남편의 몸이 아프다는 현실에 자신의 아픈 몸은 챙기지도 못하고 오로지 진통제 하나 만으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정 여사의 모습에 눈물이 더 날 뿐이다.

동치미의 배우들  연극 동치미의 배우들
동치미의 배우들 연극 동치미의 배우들 ⓒ 파라디소극장

어느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가던 중, 지독한 구두쇠인 남편은 덥고 추운 날에도 택시를 타지 않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늘 걸어서 병원에 다니는데 그날도 사실은 자신보다도 더 몸이 좋지 않은 부인을 데리고 자신의 병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가던 중, 갑자기 혼절한 부인을 병원으로 옮기지만 며칠 살지 못해 부인을 먼저 보내게 된다.

자신보다 더 많은 병과 상처 난 몸을 하고서도 철저히 숨기고 살아온 아내를 생각하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남편은 장례식에 찾아온 자녀들과 일을 치르고 난 후, 식음을 전폐하고는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열아홉에 시집와 50년을 동거동락하며 그렇게 사랑했던 부인 곁으로 길을 떠난 것이다.   

연극 <동치미>는 어쩌면 너무나도 평범한 이야기를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풀어놓은 작품이다. 효와 사랑, 특히 아버지의 사랑은 끝이 없고 깊고 곰삭은 맛이라는 것을 동치미라는 제목으로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

결혼해 자식을 낳고는 평생을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살다가, 은퇴를 하고서도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하나 뿐인 집까지 담보로 잡혀 사업자금으로 지원하고는 현재는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도 남지 않은 몇 푼의 돈 마저도 연극을 하는 막내딸을 위해 지원하며 겨우겨우 숨죽이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속 깊은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부인에게는 사랑하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고, 남편에게 고맙다는 인사말 한번 제대로 들어 본 적 없는 우리들 어머니의 이야기를 연극은 담고 있다. 그래서 너무나 눈물이 나고 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들 부모님들의 인생과 일상을 너무 잘 그리고 있기에 말이다.

때론 강고하고 아내에게 함부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정 깊은 남편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오고, 겉으로는 야단만 치는 것 같지만, 생활비에 방값까지 아내 몰래 지원해 주는 딸을 보면서는 눈물이 나기도 한다.

나는 아버지 역을 연기한 배우 박기선 선생의 눈빛과 빠른 호흡, 신들린 연기에서 여러 번 눈물이 나고 웃음이 나서 몇 번을 웃고 울었다. 8남매의 장남 장녀이신 고향 영주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수많은 동생들에 자식까지 어렵게 키우신 부모님 생각이. 특히 평생 어깨가 무거우셨던 아버님 생각이 유독 많이 났다.

연극 <동치미>는 정말 따뜻한 휴먼드라마다. IMF와 맞물려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김정현 선생의 소설 <아버지>처럼 뜨겁고 애잔한 눈물이 숨어있다.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카타르시스가 있는 작품으로 누적 관객수가 20만을 넘겼다. 또한 1000회 이상 공연이 계속돼 예술치료의 수작이라 부를 만하다.

가족과 함께 특히 사랑하는 자녀들이나 부모님을 모시고, 대학로로 연극 <동치미>를 보러가는 꿈을 꿀 것 같은 행복한 겨울밤이다. 바깥은 영하의 날씨지만, 가족 간의 사랑과 부모님의 얼굴이 더욱 생각나는 깊은 밤이다.

기념 촬영  연극이 끝나고 기념촬영, 가운데 왼쪽이 고향 선배인 연극배우 이승찬님, 우측의 안경을 쓴 사람이 김수종이다.
기념 촬영 연극이 끝나고 기념촬영, 가운데 왼쪽이 고향 선배인 연극배우 이승찬님, 우측의 안경을 쓴 사람이 김수종이다. ⓒ 파라디소극장

덧붙이는 글 | 연극 <동치미>, 가족극장 파라디소에서 공연 중, 종로5가 2번 출구 인근 기독교회관 지하 1층.



#연극 동치미#대학로 #가족극장 파라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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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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