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강은 경북 예천에 있는 회룡포 마을에 여행을 떠났다가 만난 내성천이었다. 금모래, 은모래라고 불리우는 보기만 해도 눕고픈 고운 모래가 내성천의 물줄기 보다 몇 배 크게 모래사장을 이루고 있었다. 수만 년 동안 강물을 정화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노릇을 해왔지만, 안타깝게도 상류에 짓고 있는 영주댐과 가까운 낙동강에서 공사 중인 4대강 개발 사업 때문에 그 빛을 잃고 말았다.
한쪽에선 댐이 생겨 물을 가두고, 한쪽에선 보를 세우고 강 속을 파헤쳐 (준설) 수심이 깊어지니 내성천의 모래가 말라가고 빨려가는 것이다. 더 마음이 아픈 건 강변에서 농사를 짓고 공동체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이 쫓기듯 오랫동안 살아왔던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것. 건설회사 혹은 토건족의 사업을 위한 사업들이 청정한 자연과 마을에 주는 폐해를 눈앞에서 처음 직접 보게 됐다.
언뜻 낭만적으로 보이는 <흐르는 강물처럼>은 먹고 사느라 바쁜 나머지 강을 살린다는 4대강 사업이 오히려 강을 죽이고 있는 '死대강 사업'인지 뭔지 분별하기 어려운 나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한 시인과 사진작가가 2010년 4월부터 반년 여에 걸쳐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4대강 파괴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보고 듣고 담은, 처절한 시대의 증언이 담긴 기록물이다.
4대강의 미래, 한강 혹은 청계천
"지역주민들의 소외와 눈물도 모르는 '타지 것'들이 남의 강에 와서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주먹질도 당해봤다. 하지만 한번만이라도 이명박 정권과 그들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옮기는 관료의 말을 100퍼센트 믿지 말고 함께 고민해 보시길 원한다.
고향의 물길을 한강처럼 바꿔놓고 보(댐) 옆에 수변공원을 화려하게 꾸며 놓으면 누가 찾겠는가? 낙동강이 한강이 되고, 영산강이 한강이 되고, 금강이 한강이 되었는데 말이다." (본문 중에서)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아우르는 책 속의 긴 여정은 서울을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한강에서 시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녹조와 콘크리트길과 제방, 그 위로 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강위의 작은 섬 하중도를 없애고 만든 아파트와 플로팅 아일랜드, 모래톱과 자갈밭을 잃어버린 강변 때문이다. 해마다 물고기들을 방류해야 하는,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수심 5미터의 어항이 바로 한강이며 4대강 살리기는 전국의 강을 한강으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1982년 착공해 1986년 완공된 한강종합개발은 1조 원 가까운 비용을 쏟아부어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인공하천을 만들어 놨다. 한강 양쪽으로 콘크리트 제방이 만들어진 지도 3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자연하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개발 독재의 황량한 풍경만 남겨 놨다. 주말이면 많은 시민들이 한강변으로 나와 자전거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지만 인간과 멀어진 강물은 더 이상 강이 아니다. 작금의 4대강 개발을 보면 '이 한강이 4대강 개발의 미래가 아닐까'라는 의구심은 누구나 들만 하다. 하긴 정부도 '4대강 살리기'의 모델로 한강을 제시했다.
예쁜 공원과 쾌적한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 무엇하나, 정작 강과 자연은 죽어나는데…. 필자도 자전거 타기를 즐기지만, 강변을 삭막하게 만드는 아스팔트 자전거 도로를 볼 때마다 이건 아니라고 되뇐다. 몇 년간 수많은 다슬기들을 방류했으나 단 한 마리도 살지 못한 청계천의 모습과 함께 4대강의 어두운 미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머잖아 우리는 한반도 전역에서 금강, 영산강, 낙동강이 아닌 또 다른 한강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진다.
4대강, 우리들의 거울에 비친 것들
"산천 파괴의 역사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4대강 사업' 이전에도 우리의 산천은 늘 개발이라는 탐욕 앞에 노출되어 있었다. 건설과 증산, 개발과 성장 가치는 사람살이의 토대를 무너뜨리면서도 한 치의 의심없이 강화되고 부추겨져야 하는 유일한 시대 가치였다.
그것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독재 정권이나 그 후 간신히 고개를 쳐들었던 이른바 민주화 정권 시절이나 진배없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들에서 그들은 두 얼굴의 한 뿌리 형제들이었다. 그 끔찍한 형제 결속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동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그들더러 개발과 성장의 선봉이 되어달라고 열렬한 얼굴들로 의탁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파괴되고 있는 강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습을 저자 송기역은 '우리들의 거울'이라고 전한다. 우리 시대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 바로 4대강 파괴의 현장이라고. 그리고 강이라는 거울을 바라보며 우리는 각자 무슨 욕망을 투영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사진을 찍은 이상엽은 죽어 뒤집어진 자라의 모습도,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물고기의 모습도, 강바닥의 모래를 파내 농사를 지을 땅 위에 모래를 퍼올려놓은 잔인한 모습도, 잘려나간 무수한 나무들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연의 경치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도 책에 담았다. '우리'가 자행하고 있는 우리의 거울이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토지 수용 문제로 지역 공동체가 겪는 갈등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보(댐) 위에 올라 보를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에게 지역 관변단체와 부동산업자들이 몰려와 '우리 강'에 상관하지 말라며 겁박을 한다. 낙동강가의 한 농부에게 강에서 퍼낸 모래가 농지에 복토돼 땅을 못 쓰게 되면 어떻게 하려는지 질문하자 "논에 있는 모래를 팔고 살면 되죠"라고 답변한다. 그러는 사이 전국의 강은 자신들의 이름을 잃고 현대강, 대림강, 대우강, GS강, SK강, 두산강, 포스코강으로 바뀌고 있다.
강 다음에는 산, 그 다음엔 섬
"이어지는 사업을 위한 사업들. 땅도 강도 파혀쳐지고, 뭉게지고, 삶에서 유리되고, 자본으로 집중된다. 풀숲의 꿩 한 마리가 사라지는 강변 습지를 바라본다. 강변 곳곳에서 흩날리는 건설사들의 깃발을 본다. 우리 국토가 건설사들의 '밥'이 된 지 어언 반세기가 지났다. 그들의 탐욕은 이제 강으로 갔고, 다음은 어디일까? 분명 산이다. 그 다음은 어디일까? 섬이다. 그리고 또 어디일까?" (본문 중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지도 모습을 바꿨다는 경기도 안산의 시화호 방조제와 전북 군산시의 새만금 방조제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본 적이 있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 바다 위에 비현실적인 직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이걸 진취적이라고 해야 할지, 파괴적이라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누가 이런 발상을 했는지 궁금했고, 나중엔 방조제길 위에서 발견한 드넓은 터의 '조력 발전소' 공사현장을 보곤 이젠 하다 하다 별 발전소를 다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사들의 '사업을 위한 사업'의 봉이 된 지 오래된 우리 땅에서도 모자라 바다에까지 탐욕의 손길이 뻗쳐진 것이 방조제였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김어준은 속 시원하게 쓴 그의 책 <닥치고 정치>에서 갈파한다. 현 정권은 특이하게도 국가 자체를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한 수익 모델로 삼고 있다. 4대강의 경우는 과도하고 측정하기 힘든 준설로 생기는 모래 장사의 뒷돈을 챙기는 것이고, 인천공항의 경우는 민영화의 명목 뒤에서 배당을 받아 챙긴다는 것. 이러한 돈에 대한 정신병적 집착,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함, 상상을 초월하는 뻔뻔함,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천박함이 다수 국민들이 반대를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기간에 4대강 사업을 하는 현 정권의 정체이며,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오직 이권이란다.
S라인의 아름다운 물길과 습지가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순천만에는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갯벌 하나가 순천시를 먹여 살리고 있다. 잘 보존된 자연환경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아름답던 생명의 강을 훼손한 4대강 개발 사업은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대착오적이다. 자연유산이 곧 최고의 문화유산이라는 걸 언제까지 모른 척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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