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쓰레기 투기 금지', '주차 금지', '소변 금지' 등 다양한 경고문을 보게 된다. 그런데 경고문도 경제성장과 문화 발전에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1980년 이전에는 '소변금지'를 자주 봤는데, 마이카 시대가 시작되면서 '주차금지' 경고문이 많아졌다.
모두가 배고프고 가난했던 1950년대에는 '쓰레기 투기' 경고문은 보기 어려웠다. 음식물 찌꺼기는 돼지를 사육하는 집에서 옹기로 된 구정물통을 사줄 정도로 인기가 좋았고, 생활 쓰레기도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초부터 동네마다 청소차(손수레)가 생겨났고, 지정된 쓰레기 처리장이 등장했다.
'주차하지 마세요!'처럼 존댓말을 쓰거나 '주차 금지'처럼 단순한 경고문이 있는가 하면, 신고하겠다고 겁을 주거나 벌금을 물리겠다는 엄포성 경고문도 있고, 붉은 글씨의 '접근 금지!'나 '엄벌에 처함!' 등은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협박성 문구나 쌍욕을 써넣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살벌해지는 경고문이 있는가 하면, 익살스러운 그림이나 해학이 들어간 문구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경고문도 있다. 30여 년 전 호젓한 골목에서 봤던 '이곳에 오줌 싸지 마세요. 똥개는 제외!'라고 쓴 경고문은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글귀다.
경고문도 일종의 문화이고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다양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겠는데, 사물을 보는 시각과 감정이 각자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해서 이왕이면 보는 사람 마음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욕은 내 배설물을 상대방에게 끼얹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그와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속이 뒤집힐 땐 욕이라도 한마디 걸쭉하게 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쌍욕이 들어간 경고문을 볼 때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렇게 써놓았을까?' 하고 이해를 하면서도 한편 아쉬움이 남는다. 행인에게 미소를 짓게 하는 것도 공덕을 쌓는 일이요, 화를 절제하면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좋을 거라고 생각돼서다.
나경원, 유인촌이 떠올랐던 경고문
위 사진은 누군가가 어느 학교 담벼락에 써놓은 경고문이다. 웬 욕지거리를 써놓았느냐고 힐난하는 독자도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기자의 눈에는 풍자와 해학이 담겨 있고, 소박한 민중의 일반적인 정서를 그대로 나타낸 문구로 보였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경고를 하거나 '쓰레기 안 돼'라고 적으면 된다. 그런데 '나쁜 놈 십 발'을 추가해서 적었다. 처음엔 맞춤법이 틀린 쌍욕(씨X)인지, '발이 열 개'라는 뜻인지 헷갈렸다. 그러나 볼수록 쓴 사람의 재치와 해학이 엿보여 미소가 지어졌다.
감칠맛도 함께 느꼈는데 '주어가 없다'는 말로 자신의 무지함을 스스로 드러냈던 새누리당(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떠올랐다. 초등학생도 금방 이해할 경고문이지만, 나 의원이 생각난 것은 아무리 찾아도 문구에 '주어'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의원은 대변인 시절(2007년) 이명박 대선 후보의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공개되자 관련 브리핑에서 "BBK라고 한 것은 맞는데 (내가라는) 주어가 없다"고 강변했던 인물이다. 당시 당에서는 "뛰어난 임기응변"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자승자박'이었다.
당시 나 의원은 "이명박 후보의 강연에 '주어'가 없어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동영상의 본질마저 왜곡했다. '나쁜 놈 십 발'은 맞춤법은 틀렸으되 해학이라도 있지, 당시 나 의원의 억지는 소도 웃을 천박한 개그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 유인촌 전 장관의 막말이 떠오르기도담벼락에 써 놓은 '나쁜 놈 십 발'을 보는 순간 떠오른 또 하나의 인물은 한때 'MB 정권의 나팔수'로 불리었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문광부) 장관이었다. 유 전 장관이 재임 시절 했던 반말, 욕 등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유 전 장관은 2008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기자들이 사진을 찍자, 인상을 찌푸리며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사진 찍지마, 씨X, 어유 정말 성질 뻗쳐서…"라는 막말을 해댔는데, 동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면서 이를 본 국민은 분노했다.
파문이 일자 당시 문광부는 유인촌 장관 막말은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유 장관을 이명박 졸개로 비유했기 때문에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곤경을 벗어나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 결국, 유 전 장관이 사과는 했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않았다.
"찍지마 씨X"로 시작되는 욕설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었다. 그 자리는 개인 유인촌이 아닌 문광부 장관 유인촌이 국민 앞에서 감사를 받는 자리였으니 그의 막말과 삿대질은 국민을 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삿대질한 대상이 기자였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언론 담당 주무 장관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공개된 장소에서 취재하는 사진기자에게 '찍지마'라고 한 것은 취재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으니 언론 자유를 배신한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장관 같았으면 목이 열 개라도 버티지 못할 유 장관이 큰소리를 치면서 지금은 '청와대 문화특보'라는 금태완장(?)을 차고 있는 것이 이상하고 이상하다. 유인촌 문화특보를 두둔하는 언론사들 위력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지켜줘서인지, 아니면 그 정도는 괜찮다는 것인지 도통 헷갈려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