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 사이, 입춘과 경칩 사이에 우수(雨水)가 있다.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 양지바른 곳은 이제 겨울이 하나 둘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꽃샘추위 남았다고는 하지만, 그 기세가 오는 봄 막을 수는 없을 터이다.
경기도 퇴촌의 작은 계곡. 제법 추운 곳임에도 양지바른 곳의 물소리는 힘차다. 겨우내 바위빝에서 숨죽이고 겨울잠을 자던 물고기들의 움직임도 제법 빨라졌다.
아직은 겨울의 흔적. 지난 가을 떨어진 나뭇잎들이 얼음에 갇혀있다. 이들이 꿈꾸는 자유는 봄이 오면 이뤄질 것이다.
추위에 얼어붙은 계곡, 추위에 속내를 뿌옇게 감추고 있더니만 이제 조금씩 그 속내를 보여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점점 투명해진다.
겨울이 깨어날까 숨죽여 조용히 흐르던 물들의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 소리에 봄 깨어나고, 깊은 잠에 빠져있던 겨울도 덩달아 잠이 깨 주점주섬 갈 준비를 한다. 한두차례, 꽃샘추위는 오겠지만, 이미 겨울에 단련된 몸을 다시 얼리지는 못할 터이다.
긴 겨울 보내면서 봄을 그토록 그리워했지만, 이제 머지않아 다시 겨울이 그리워지겠지.
그렇게 돌고도는 계절, 사계절이 뚜렷한 이 땅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그리하여, 늘 그 계절을 누리지 못하고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우수, 내리던 눈이 비가 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절기다운 날이다. 아주 조금씩 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봄,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무너질 겨울, 겨울의 몰락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의심할바 없이.
입춘과 경칩사이의 우수, 아직 봄의 흔적이 완연하지 않지만 봄의 실상을 보여주는 날이었다. 이렇게 완연한 봄, 이 역사에, 우리의 고단하고 지친 삶에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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