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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고강도 압박에 나서 대부분 시중은행이 신규 가계대출을 중단한 지난해 8월 18일 서울 중구 충정로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이 은행관계자와 상담하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고강도 압박에 나서 대부분 시중은행이 신규 가계대출을 중단한 지난해 8월 18일 서울 중구 충정로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이 은행관계자와 상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폭풍이 치는 산에 입산금지 조치를 해야 할까, 아니면 입산에 대해 개인들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우리나라의 경우 날씨가 좋지 않을 땐 입산금지한다. 그러나 입산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틈을 노려 산에 올라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의 경우, 입산을 허용한다고 한다. 폭풍이 몰아쳐도 산에 오르거나 혹은 산행을 포기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이 알아서 판단할 자유라고 보는 것이다. 자유의지에 의해 산에 올라 사고를 당하면 사고 결과는 당연히 개인의 책임이다. 우리는 입산을 금지시켰음에도 무리한 산행을 해서 당한 사고에 대해 개인의 책임과 관리 책임을 동시에 묻는다. 자유시장 주의에 입각해 평가한다면 대단히 비합리적인 현상이다.

자유시장주의에 의해 판단한다면 일본의 경우처럼 개인이 스스로 위험을 인지할 수 있고 통제해야 하며, 개인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과에 대해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 정답이다. 우리나라의 조치는 대단히 불필요한 규제이며 규제를 전제로 했음에도 여전히 관리 책임을 묻는 것은 불편한 현상일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은 자유시장 논리가 판매과정 전반에 지배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폭풍 칠 때 입산금지 조치를 취하는 우리나라조차 금융시장만큼은 자유시장주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그에 따라 '자신의 신용도를 스스로 평가해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빌려야 한다'는 생각은 모든 사람의 상식처럼 굳어져 있다. 만약 상환능력을 뛰어넘는 돈을 빌려 갚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순전히 채무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못 갚을 것을 알고도 돈을 빌려주었다면?

참으로 이상한 것은 금융권이 전 국민에게 등급을 매겨 신용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잡하고 난해한 프로그램에 의해 신용도를 평가하고 시스템에 개인 정보만 입력하면 금융거래 내용들을 전부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등급 안에서 점수까지 매겨진다. 가끔씩 신용평점이나 등급을 접하고 있으면 도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나에 대해 이런 식의 평가를 하는 것일까 의아하다.

이렇게 무례한 신용평가를 하는 것은 신용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전제되어 있다. 한마디로 돈을 빌려줘도 되는지, 얼마나 빌려줄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다. 거의 강제적인 신용정보 이용에 대한 동의를 받아내고서 무례한 신용평가를 한 것이 불쾌하긴 하지만 돈을 빌려주는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서라니 참고 넘어가줄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개인에 대한 무례한 평가를 해 놓고도 결과는 순전히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산에 올라서 사고에 대응할 만한 건강과 운동능력이 있는지까지 검사하는 것과 같다. 불쾌감이 들 정도로 온몸을 샅샅이 검사하고, 심지어 줄세워 등수를 매긴다. 그런데 막상 산에는 대충 올려 보낸다. 사고가 나면 그것은 산에 오른 사람의 책임이라고 떠넘긴다.

너무 황당한 일 아닌가. 이런 황당한 일이 금융권과 금융소비자들의 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금융권에서는 빚을 갚지 못해 파산과 회생 제도를 이용하는 것조차 도덕적 해이라는 잣대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런 생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파산과 회생 전에 최소한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비인간적인 채권추심을 받도록 방치한다.

의무는 지키지도 않으면서, 모두 소비자 책임이라니...

 금융감독원은 대부업체 40곳의 대학생 대출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 6월 말 현재 4만7천945명의 대출 잔액이 794억6천만원으로 집계됐다고 4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행인들이 서울역 인근의 한 대부업체 앞을 지나는 모습.
금융감독원은 대부업체 40곳의 대학생 대출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 6월 말 현재 4만7천945명의 대출 잔액이 794억6천만원으로 집계됐다고 4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행인들이 서울역 인근의 한 대부업체 앞을 지나는 모습. ⓒ 연합뉴스

최근에 발생한 카드론 보이스 피싱 사고를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금융권의 태도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카드 소유자도 모르게 카드론 한도가 주어진다. 카드론 피싱 사기자들은 이를 악용해 카드론 대출을 가로챘다. 소비자는 자신의 카드에 대출 한도가 발생한 사실도 모르고 사기꾼들에게 개인 정보를 넘긴 것이다.

카드사는 카드 소유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카드론 한도를 발생시켜 사기 피해에 노출 시킨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사는 전혀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드 소유자가 개인 정보 관리를 소홀히 한 탓으로만 돌린다. 한마디로 카드 소유자의 부주의와 개인 정보 관리의 무지함으로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보이스 피싱 사기 피해는 고학력자, 심지어 전직 은행 지점장도 당할 정도로 고도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사기를 피해갈 방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부주의의 문제 또한 자신에게 카드 대출 한도가 발생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당연한 것이다.

사실상 신용평가를 통해 신용공급을 하는 과정에서 신용에 대한 주의 알림은 금융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사항이다. 그러한 의무사항은 지키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소비자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도대체 이렇게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라면 애초에 신용평가는 무엇 때문에 했던 것인가. 사람들을 실컷 줄세워 놓고 등급을 매겨 불쾌감을 주고선 결과는 소비자 책임이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인가.

문제는 금융소비자 당사자들조차 이런 금융권 중심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채무 불이행자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파산과 회생 등의 부채 구제제도에 있는 불합리한 진입 장벽 등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금융권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도덕적해이

금융권의 논리가 금융감독 당국에 의해 인정되고 합법화 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학습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 과정에서 금융권은 늘 책임에서 벗어났다. 그러니 가계부채가 날로 심각해지는 이 와중에도 일반 기업의 두배 가까운 수준의 고배당을 하는  것이 아닐까.

채무자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일자리를 잃고 가족이 병에 걸린 경우가 허다하다. 취약한 사회 안전망, 불안정한 노동 정책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 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복지로 해결해야 할 것을 금융으로 내몰고 금융권에서는 못 갚을 줄 알면서도 신용을 뿌려댔다.

더 이상 채무자들에게 채무 불이행의 불편한 잣대, 구제제도 이용에 대한 도덕적 해이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된다. 돈을 빌려 못 갚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빌려준 자의 책임이 훨씬 크다. 즉 도덕적 해이는 금융권에서 공공연히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금융권은 예금자의 돈을 허술하게 관리해왔고 그 돈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권력자처럼 행세했다. 가계부채 상승세가 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측을 하게 하는 이때, 이제 사고를 바꿔 개별 금융소비자가 아닌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도덕적 해이#가계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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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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