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 쌓인 아름다운 수표교를 걸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조선 세종 2년(1420) 세상에 나와 600년의 길고 긴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 온 수표교의 겨울 풍경은 한 폭의 멋진 그림이었습니다.
하얀 눈 내리는 날 수표교 돌다리 감촉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다리 위를 걷고, 돌난간을 쓰다듬기도 하면서 6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느껴보았습니다. 조선왕조 500년과 치욕스런 일제 침탈을 다 지켜본 역사의 숨결이 담긴 수표교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이 다리에 담겨 있을까요? 다리 난간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수표교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제게 속삭여줄 것만 같았습니다.
청계천의 여러 다리 중에 가장 유명한 수표교(水標橋)는 조선시대 선왕들의 어진(御眞. 초상화)를 모신 영희전(永禧殿)으로 가는 통로였다고 합니다. 설, 한식, 단오 등 명절 때마다 임금은 수표교를 건너 영희전으로 참배를 다녔습니다. 숙종이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던 어느날, 수표교를 건너다가 여염집 문밖으로 왕의 행차를 바라보던 여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해 왕궁으로 들였는데, 바로 그 여인이 장희빈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수표교는 조선왕조 500년의 삶이요, 역사 그 자체입니다. 수표교 아래 돌기둥에는 '庚辰地平(경진지평)'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영조36년(1760)에 청계천을 준설한 후, 돌기둥에 세로로 庚(경)·辰(진)·地(지)·平(평)을 새겨 이후 개천을 준설할 때 표준으로 삼도록 한 것입니다. 특히 수표교 돌기둥은 마름모 모양으로, 다리에 전달되는 물의 압력을 최소화하고 홍수도 예방하려는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의 '복원'은 거짓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역사와 숨결이 담긴 청계천 때문일까요?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2년 7월 2일 서울시장 취임사에서 "청계천 복원은 대한민국의 얼굴을 바꾸는 사업으로써, 광통교, 수표교 등 청계천의 옛 다리는 청계천 복원사업과 함께 본래의 자리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복원했다고 자랑하는 청계천엔 22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22개나 되는 다리 중에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본래의 자리'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다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대통령의 약속은 모두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에 불과했습니다.
'본래의 자리'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겠다고 이 대통령이 약속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지만, 오늘도 수표교는 장충단공원에 쓸쓸히 처박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수표교는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원래 있던 자기 자리에서 시민과 호흡해야 합니다.
수표교는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그동안 서울시 관계자들은 "수표교가 지금의 청계천 (폭) 보다 더 길다"는 것과 "수표교를 청계천으로 옮기려면 주변 건물 매입을 위한 많은 예산 때문"에 청계천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수표교와 청계천을 수차례 답사한 결과, 서울시의 해명은 수표교를 복원하지 않으려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수표교 길이는 27.5m이고, 청계천의 'MB표 가짜 수표교' 길이는 25.7m로 수표교가 더 길다는 서울시 주장이 맞긴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애초부터 수표교를 복원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만약 차후라도 수표교를 복원할 의향이 정말 있었다면 청계천의 폭과 수표교 길이만이라도 맞췄어야 합니다.
청계천 복원을 주창했던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의 딸 김영주 청계천 복원 시민위원회 역사분과위원장은 "청계천을 직강하천으로 만들면 각기 길이가 다른 청계천의 옛 다리들을 원형대로 복원할 수 없게 된다"며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문제점을 강력히 지적한 바 있습니다.
수표교를 청계천 본래의 자리에 복원하기 어렵다는 서울시 변명과는 달리 저는 수표교가 다시 자기 자리에 돌아올 수 있다는 멋진 희망을 발견하였습니다.
진짜 수표교(27.5m)와 가짜 수표교(25.8m)와의 차이는 1.8m에 불과합니다. 현재 청계천 변에는 인도와 2차선 도로가 있고, 또다시 상가 쪽으로 인도와 주차 공간이 있습니다. 청계천 양쪽을 합하면 총 4개의 인도와 4차선의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혜를 발휘한다면 1.8m의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4개의 인도와 4차선만으로 부족하다면 수표교 양쪽에 있는 건물들을 사들여야겠지요. 그렇다면 서울시 주장처럼 수표교를 복원하는데 너무 많은 예산이 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청계천 주변에는 막개발 탓에 엄청난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청계천 복원 총 책임자였던 양윤재 전 서울부시장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고도 제한을 풀어달라는 등의 청탁과 함께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아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는 청계천 사업이 복원이 아니라 이권이 걸린 개발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양 전 부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 만인 2008년 광복절에 특별사면을 받고, 바로 4개월 뒤엔 장관급인 대통령 직속 건축정책위원회 민간위원으로 발탁됐습니다. 참 놀라운 이 대통령의 자기 사람 챙기기지요.
이렇게 막개발로 고층빌딩들이 늘어선 청계천입니다. 그런데 수표교 양쪽은 지금도 옛날 그대로입니다. 수표교의 한쪽은 택배회사가 마당으로 쓰는 공터요, 주변은 공구상가들입니다. 또 반대편은 소방기구들을 파는 한 평짜리 옛날 상가들입니다. 더욱이 이곳은 한두 평짜리 작은 상가들이 길게 늘어선 곳이기에, 한 상가 건너마다 통로가 있습니다. 사들일 상가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수표교를 복원하기 위해 이 상가들을 꼭 매입해야 한다면, 당연히 이분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서울시가 염려하듯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종로3가 세운상가에 한 바퀴 도는데 1분 30초에 걸리는 '한 뼘 공원'을 만들기 위해 무려 1300억 원을 사용하였습니다. 설사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한 뼘 공원보다는 수표교 복원의 가치가 몇백 배 더 크겠지요? 수표교 복원에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서울시 주장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선조의 지혜가 담긴 '수표' 역시 돌아와야 합니다수표교와 함께 제자리로 꼭 돌아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표교의 수표(水標, 보물 제838호)입니다. 수위를 측정하던 수표는 세종 때에는 나무 기둥에 눈금을 새겨 만들었으나 홍수에 떠내려가고, 성종(1469∼1494) 때 높이 3m, 폭 20㎝의 돌기둥으로 다시 만든 것입니다. 수표교의 수표를 찾아 홍릉 근처 세종대왕기념관을 찾아갔습니다. 웬 세종대왕기념관이냐고요? 1958년 청계천을 복개하며 수표교와 수표를 장충단공원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1973년 또다시 수표를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긴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수표는 그저 작은 기둥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6각 방추형 돌로 상당히 크고, 돌기둥 양면에는 21.5㎝를 1척 기준으로 1척에서 10척까지 눈금을 새겨놓았습니다. 특히 뒷면 3·6·9척에는 작은 홈을 파서 각각 갈수(渴水)·평수(平水)·대수(大水)라고 표시했는데, 멀리서도 수위를 쉽게 읽게 한 것이겠지요. 수표는 6척 안팎의 물이 흐를 때가 보통 수위이고, 9척이 넘으면 위험 수위로 보아 하천의 범람을 미리 예고하였다고 합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청계천의 잘못된 설계가 홍수를 심화시켰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광화문광장 역시 홍수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홍수 예방을 위한 놀라운 지혜를 보여줬습니다.
수표가 있기에 수표교입니다. 그렇다면 수표교만 청계천에 돌아올 것이 아니라 수표 역시 수표교와 함께 제자리로 와야 올바른 복원이 될 것입니다. 수표가 세종대왕기념관에 있다고 특별히 더 잘 보존되는 게 아닙니다.
600년 청계천의 역사 유물을 파괴한 MB 지난 1월 31일 서울성곽 순례에 나선 박원순 시장이 청계천 오간수교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복원한 오간수문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박 시장은 청계천 개발 당시 발견된 오간수문의 기초 유구들이 파괴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그 기초석들이 어딘가에 아직 보관되어 있다면 다시 복원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청계천의 오간수문은 동대문 바로 곁에 있습니다. 오간수문은 서울성곽 일부로서 청계천의 물을 성 밖으로 빠져나가게 하려고 성벽 아래에 설치한 구조물입니다. 서울시가 지금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한양도성은 총 길이 18.6km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도성으로서, 4대(大)문[숭례문(남대문)·흥인지문(동대문)·숙정문(북대문)·돈의문(서대문)]과 4소(小)문(창의문·광희문·혜화문·소의문), 그리고 두 개의 수(水)문인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한양도성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려면 한양도성의 한 부분인 오간수문 역시 복원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요?
오간수교 옆 한쪽 벽에 5개의 아치형 구멍이 달려있습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이미 오간수문을 복원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이명박 전 시장이 복원해놓은 오간수문은 개구멍처럼 아주 작습니다. 원래 오간수문이 이렇게 작았던 것일까요?
박원순 시장이 한양도성의 또 다른 수문인 '이간수문'을 들렀습니다.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서 발견된 이간수문은 오간수문과는 지척 사이입니다. 이간수문은 그 높이가 사람 두 배에 이를 만큼 상당히 크고 높았습니다. 이간수문 역시 물의 흐름을 원만히 하기 위해 가운데 돌이 마름모형으로 놓여있었습니다.
오간수문은 이간수문과 같은 크기였겠지요. 이간 수문 한쪽에 철책이 달려 있었습니다. 수문으로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함입니다. 청계천 복원 당시 오간수문의 철책이 발견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까닭에 녹이 슬고 부서진 잔해들이었지만, 오간수문의 크기를 짐작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청계천의 역사 복원을 주장하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오간수문을 개구멍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수문이 아니라 모양을 흉내만 낸 것입니다. 이명박 전 시장은 오간수문의 위용을 보잘것없는 개구멍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복원했다는 오간수교 위에 넓적한 돌기둥들이 놓여있습니다. 이명박 전 시장이 왜 이 돌들을 오간수교 다리 위에 만들어 놓았을까요? 원래 이 자리가 오간수문이 놓여있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청계천을 복원하는 과정에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오간수문의 기초유구들이 놀랍게도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오간수문 터에서는 기초석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토목기술 연구를 위한 소중한 자료들이 발굴되었습니다. 문화재란 원형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간수문의 모든 기초 유구들을 파괴한 후에, 다리 위에 가짜 오간수문 기초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장 밑에 있어야 할 다리 기초를 다리 꼭대기에 얹은 코미디이지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청계천을 복원해 서울을 역사 도시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울의 600년 역사를 상징하는 역사유적인 청계천을 파괴하고, 대신 국적 불명의 '콘크리트 어항'을 만들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자랑하는 청계천 복원은 후대에도 다시 복원하기 힘들도록 역사·문화를 파괴한 범죄입니다.
청계천을 돌아보고 가는 길에 합정역에서 이집트를 홍보하는 광고물을 만났습니다.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외국은 역사유적을 그대로 잘 보관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완공을 위해 600년의 역사를 처참히 파괴하였습니다.
수표교는 조선시대부터 정월 대보름이면 흥겨운 다리 밟기 놀이와 연날리기의 장관이 연출되던 곳입니다. 조상들의 역사와 숨결이 녹아 있는 수표교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뿐 아니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파괴한 청계천의 소중한 역사도 다시 복원돼야 합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4대강 사업 반대 여론에 대해 "청계천의 성공신화가 두려워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맞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찬양하는 청계천의 성공신화는 이명박 한 개인의 성공을 위해 역사를 파괴한 대국민 사기극이었습니다.
비록 늦긴 했지만 "청계천를 올바로 복원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현명한 발걸음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