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2일) 있었던 MB의 기자회견은 며칠 전부터 여러모로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우선 임기의 마지막 1년을 남겨둔 시점이 주는 의미가 각별했고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친인척 측근비리에 대해 뭐라고 할 것인지도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러다가 기자회견이 임박해서는 회견의 요점이 '사과'보다는 여야의 선심성 총선공약에 대한 '강력 대응'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국민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MB의 기자회견은 집권 4년에 대한 자화자찬뿐이었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신속하게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만들어 매주 한 번씩 새벽같이 모였"고 "현장을 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모든 사항을 꼼꼼히 점검"한 결과 "2008년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으며 "선진국들은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는데, 우리는 오히려 신용등급이 올라갔습니다"라고 자평했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는 높아진 국격도 집권 4년의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그리고 서민경제가 어려운 것은 또다시 닥친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으로 돌렸다.
요컨대 MB 자신은 새벽같이 일어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며 국격이 높아지는 등 나름 성과도 많았는데 계속되는 글로벌 위기 때문에 서민경제가 어려워져서 내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다.
'자화자찬' MB 기자회견...4대강은 어디로 갔나세간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기자회견 내용도 놀라웠지만, 집권 4년을 자화자찬으로 치장한 것이나 특히 국민들에게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업적이 2008년 금융위기 극복뿐이라는 점도 나는 놀라웠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UAE 원전수출이나 야심차게 추진한 4대강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1년 후면 퇴임이니까, 오늘의 기자회견은 MB가 취임날에 즈음하여 국정을 돌아보는 마지막 회견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4년 동안 내세울 업적이 그렇게 없었을까. 자원외교니 수질개선이니 이 모든 게 스스로 돌아보아도 치적으로 말하기엔 부끄러웠던 것일까.
대기업 CEO 출신의 MB가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친 대기업 정책을 펼 것이라는 점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누구나 다 알던 사실이고 실제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러하였다. ▲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 금산분리 완화 ▲ 수도권 규제완화 ▲ 법인세 인하 ▲ 고환율 고수 등 수출대기업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한국의 대기업들은 사상 유래가 없는 호황을 누렸다.
2011년 30대 재벌의 총자산은 1460조 5천억 원(이는 같은 해 한국의 GDP보다 26% 더 많은 수치라고 한다)으로 지난 5년 새 무려 700조 원이 넘게 늘었고 계열사 수는 1019개로 1.6배나 늘었다. 특히 10대 재벌의 2010년 매출액(756조 원)은 전체 제조업 매출액의 41%에 달한다. 그 덕분에 거시지표상으로는 가장 빨리 경제를 회복한 나라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만 돌아갔다. 'MB 같은 장사꾼이 대통령이 되면 정말로 나도 MB처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에게 표를 준 자영업자나 영세 상인들은 아마도 골목마다 파고드는 대기업 빵집과 '통큰 치킨', 기업형 슈퍼마켓 때문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높은 환율은 원화의 가치를 낮게 유지하겠다는 것인데 그 효과는 물가에 그대로 반영돼서 (다른 요인들도 있겠지만) 지난 4년 내내 우리는 살인적인 물가인상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니까, 서민들 지갑 털어서 경제 지표상에 통계로 잡히는 재벌들 배불리게 해 주고 경제위기를 극복한 것이 집권 4년 MB의 최대 치적인 셈이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유난히 높은 한국은 이를 완화하고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해 첫째로 고용의 대다수를 떠받치고 있는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하고 둘째로 북한경제를 적극적으로 포섭하여 실질적인 내수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향후의 글로벌 위기에도 (완전한 처방은 결코 못 되겠지만)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MB 정부는 정확하게 그 반대방향으로 내달렸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바꿔버린 대통령, MB가 유일
MB의 자화자찬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모두가 글로벌 위기로 사경을 해맬 때 유독 한국이 가장 빨리 경제위기를 극복했으니, 자신의 이른바 '747 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7대 강국 진입'은 오히려 조기에 달성이 됐어야 한다. 하지만 MB 집권 4년을 맞은 지금, 세상사람 그 누구도 한국을 세계 7대 강국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만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원유값이 120달러 가까이 올라서 물가를 계속 위협하고 있고, 투자가 줄어들면 젊은이 일자리가 걱정되고, 내수가 위축되어 서민 생활이 더 어려워질 것을 생각하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2.22 기자회견문 중)"대통령은 마치 이 모든 것이 글로벌 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변명하지만, 대기업 CEO 출신의 경제대통령을 뽑은 이상 이런 결과가 초래될 것은 이미 4년 전에 예정돼 있었다. 자신의 목도리를 내어 준 가락동 할머니의 일화를 소개하며 MB는 아무리 국격이 올라가고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해도 이런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자회견문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스스로 자신의 MB노믹스가 실패했음을 시인한 것과도 같다.
MB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다. 일문일답에서 나온 친인척 측근비리에 대해 MB는 강도높게 당사자들을 비난했지만 자신의 내곡동 사저에 대해서는 경호상의 문제 때문에 불거진 것으로 얼버무렸다. 그리고 자신은 기업으로부터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직과 국가기관을 동원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할 방법이 있다면 굳이 기업에서 돈을 받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내곡동 사저는 그러한 의혹들 가운데 만천하에 드러난 극히 일부일 뿐이다. 20조 원이 넘게 들어간 4대강 사업은 MB의 동지상고 동창들과 4대강 일대에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한 MB일가에게 엄청난 이득을 안긴 반면, 보의 안전성은 지금도 장담할 수가 없다. 앞으로 여기에 얼마나 더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40조 원이라던 경제효과도 기껏해야 절반 이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패한 인천공항 민영화나 지금 추진 중인 KTX 민영화도 소위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으려는 MB와 그 측근들의 농간이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아랫사람들도 이를 보고 배운건지, 외교부는 카메룬 다이아몬드를 끌어들여 대놓고 주가조작에 가담했다.
MB는 2008년 금융위기와 최근의 유럽발 경제위기를 일러 "세계 경제사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했지만,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대통령이 국가를 수익모델로 만들어 버린 예는 일찍이 없었을뿐더러 왕조시대에도 그 유래를 찾기가 어렵다.
1년 3일 뒤, MB는 축복받으며 떠날 수 있을까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두 축이라고 한다면, MB 집권 4년 동안 후퇴하고 망가진 한국의 민주주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과 소통하려는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경찰에게 매 맞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인터넷 매체는 '점령'당했고 방송국엔 낙하산만 내려앉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과 방송인은 거리로 내쫓겼다. 미네르바와 정봉주의 구속은 MB 치하의 대한민국이 도대체 북한의 철권통치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회의감을 안겨 주었다.
그와 반대로 정권 주변의 힘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온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영부인의 20촌 인척까지 물고 늘어졌던 5년 전과 비교한다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정연주가, 한명숙이, 그리고 노무현이 비리의혹만으로 감당해야 했던 온갖 탄압과 조롱과 멸시 딱 그만큼이라도 지금의 비리연루자에게 적용된다면 아마도 MB 정권은 진작 붕괴했을 것이다.
국가기관은 권력자의 사욕을 채우거나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될 뿐이었고, 필요하다면 선관위 같은 중요국가기관을 집권당이 무력화시키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총만 안 들었을 뿐, 이는 대한민국을 도적질한 쿠데타와 다를 바가 없다. 지난 MB 집권 4년은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도둑맞은 4년'이다.
MB의 임기는 정확히 1년하고도 3일이 더 남았다. 기자회견 마무리 발언에서 국가재정이 튼튼하고 국제협력이 긴밀하다며 남은 1년을 자신하는 MB이지만, 공공부채는 800조 원에 육박했고 김정일 사후에 중국의 국가주석과 전화통화 한 번 하지도 못했던 불편한 진실을 떠올리면 남은 1년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의 전임자는 "야, 기분 좋다"는 말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청와대를 떠났다. 1년 3일 뒤, MB는 무슨 말을 남기고 청와대를 떠날까. 그의 전임자처럼 좋은 기분으로 청와대를 떠날 수 있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퇴임을 축복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