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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조폭 아빠도 딸에게는 꼼짝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예를 들면 <가문의 영광 1>에서 장정종(박근형 분)과 오빠들이 장진경(김정은 분)을 위해 박대서(정준호 분)을 연결시켜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숨졌을 때 동생 김경희씨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김경희씨 남편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두 사람 결혼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절대 권력자 김일성 주석도 끝내 두 사람 결혼을 막을 수가 없었다지요.

이땅의 거의 모든 아빠는 이처럼 딸 앞에서는 '바보'가 됩니다. 딸 바보 아빠들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5살 짜리 딸이 "000, 누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질투'를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볼에 뽀뽀도 하지만, 3학년이 넘어가면 뽀뽀를 할 수 없다는 것에 한탄하고, 중학교를 들어가 조금만 늦게 들어오면 "누구를 만났느냐" "왜 늦게 들어오느냐"며 따집니다. 결혼 할 나이가 돼 남자 친구를 데려왔는데 키도 크고, 학벌 좋고, 집안 좋고, 매너 좋고 "딸을 주시면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겠다"고 해도 꼭 '도둑놈'으로 보입니다.

 생머리를 자르겠다고 했지만 아빠는 내키지 않았다. 그냥 생머리카락이 좋았기 때문이다.
 생머리를 자르겠다고 했지만 아빠는 내키지 않았다. 그냥 생머리카락이 좋았기 때문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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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15일, '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우리 집 예쁜 아이가 대뜸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긴생머리를 참 좋아합니다. 아내가 퍼머하는 것도 싫다는 내색을 자주 할 정도로. 이 정도면 그의 독재에 가깝지요. 하지만 긴 생머리를 좋은 걸 어떻게 합니까.

"아빠 나 머리카락 자르고 싶어요."
"아빠는 생머리가 좋은데."
"…."


"여보, 아침마다 나보고 머리카락 만져 달라며 조르는 것 몰라요?"
"아빠 머리 자르면 안 돼요?"
"조금 더 생각 해보고."
"아니 자기 머리카락도 마음대로 자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독재예요, 독재."
"아무튼."


이내 집안에 찬공기가 들어온 듯했습니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은행에 다녀오겠다며 아내와 막둥이를 데리고 나섰습니다. 머리는 끊임없이 '생머리가 좋은데, 생머리가 좋은데'라는 말이 맴돌았습니다.

"서헌이 머리 자르게 할까요?"
"여보, 서현이는 이제 중학생이예요. 자기 머리는 마음에 드는 대로 해야지. 아빠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어요?"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하지 말고. 그냥 자기 자르고 싶은 대로 자르게 하세요."
"…."


 긴생머리를 자르겠다고 하는 딸 아이. 결국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긴생머리를 자르겠다고 하는 딸 아이. 결국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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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 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빠 저 머리카락 자르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쁜 아이. 머리카락 자르고 싶은대로 해."
"괜찮아요."
"괜찮아? 정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아빠, 정말 잘라도 돼요?"
"응."

딸 아이는 부리나케 미용실로 달려갔습니다. 울먹이는 딸 앞에 딸 바보 아빠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다른 것도 비슷합니다. 이상하게 딸 아이는 왠지 더 사랑하고 싶고, 더 챙겨주고 싶고, 더 잘해주고 싶습니다. 큰 아이와 막둥이는 매몰차게 혼낼 때도 있지만, 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빠들은 왜 딸에게 이렇게 약한 것일까요? 딸에게 한 번씩 이런 말을 합니다.

"서헌아!"
"아빠 왜 불렀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식에 신부와 신랑이 손을 같이 잡고 들어가지만 아빠는 꼭 너를 데리고 들어갈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당연하지. 우리 예쁜이가 아빠 곁을 떠나 다른 사람 품으로 가는데 마지막 그 길을 아빠가 보내주고 싶기 때문이야. 아빠 사랑이 남편에게 이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지."


그러면 딸 아이는 얼굴이 함박웃음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아려옵니다. 아직 중학교 1학년 밖에 안 됐는데, 20년 후가 될지도 모르는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ㅇ해집니다. 정말 딸 바보가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예쁘고, 착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빠#딸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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