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입 신고하러 왔습니다."지난 21일 '전투복'이라고 불리는 노란색 점퍼에 검은색 등산 바지, 그리고 등산화를 갖춰 신은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4·11총선 출마 지역구인 부산 북강서을 일대 상가 방문에 나선 참이었다.
지역 유권자들에게 눈을 맞춘 문 최고위원은 연고 없는 곳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데 공을 들였다. 이런 전입신고 과정은 부산 사투리를 쓰는 이곳 유권자들 속에서 또박또박 방송용 표준어를 쓰는 문 최고위원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산은 저와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지난 10여 년 선거 때마다 부산 지역에 지원유세를 왔었는데 그때마다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이 도와 달라, 화끈하게 도전해보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의리를 지키러 왔습니다. 북강서을이 만만해서가 아니라 정말 어려운 곳이라 오게 됐습니다."쉽지 않은 도전을 시작한 터라 문 최고위원은 몸이 세 개라도 모자라는 상황이다. 최고위원으로 중앙당 일도 챙겨야 하고 야권연대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총선의 핵심 전략인 야권연대 성사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앙당 일정이 없는 날은 지역구를 돌며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도 좀처럼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문 최고위원은 이날 상가 방문에 이어 점심시간에는 통도사에서 운영하는 공창사회복지관을 찾아 어르신들을 상대로 배식 봉사에 나섰다. 문 최고위원은 배식부터 식판 정리까지 꼼꼼하게 손을 놀렸다.
그는 "요즘 한명숙 대표가 왜 과로로 입원했는지 이해된다"며 "하지만 힘내라, 이번에 된다는 주민들의 격려를 들으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 문 최고위원은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때운 뒤 좁은 차 안에서 쪽잠을 청했다. 30분여간의 짧은 휴식이었다.
문 최고위원은 이날 동행한 <오마이뉴스> 취재진에 지역구 자택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남자 혼자 사는 집답게(?) 말끔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밥통은 물론 웬만한 살림은 다 갖춘 모습이었다. 부엌 수납장에 가득한 라면과 냉장고 한 칸을 차지한 부산 탁주 서너 병, 영양제 3통이 문 최고위원의 주요 양식인 듯했다. 동행한 캠프 관계자는 "냉장고에 여러 식재료들이 있지만 사실상 라면이 주식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지 방문 온 안도현 "부산·경남이 대한민국 변화 출발점"
이날 문 최고위원은 반가운 지지 방문객도 맞았다. 노무현재단 전북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안도현 시인 일행이 멀리 전라북도에서 부산까지 찾은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부산·경남의 변화가 대한민국 변화의 출발점"이라며 "문 최고위원이 꼭 승리할 거라 믿고 응원하러 왔다"고 말했다.
실제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문 최고위원의 지역구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최고위원은 새누리당 후보들을 누르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14일 <시사저널>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 수준에서 허용오차 ±4.4%p)에서 문 최고위원은 45.8%를 얻어 이 지역에서만 내리 3선을 했던 허태열 새누리당 의원(39.6%)을 6.2%p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접한 사상구에서 불어오는 '문재인 바람'의 지원에다 문 최고위원의 높은 인지도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게 캠프 자체의 분석이다.
실제 지역구 상가 방문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대부분 문 최고위원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았다. 젊은 유권자들은 즐겁게 사진 촬영을 청했다.
북구 화명동 일대 은행에서 만난 주민들은 "<부러진 화살> 잘 봤어요"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고 일부 여성 유권자들은 "실제로 보니 억수로 잘생겼다"고 반기기도 했다. 문 최고위원은 "영화 정말 좋죠? 그런데 저 실제로는 착한 사람"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문 최고위원이 찾은 한 은행의 직원은 "낙동강 벨트를 꼭 지켜달라"며 "문 후보가 당선돼서 부산을 확실하게 바꿔 달라"고 덕담을 했다.
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의 호의적인 반응이 실제 투표장에서 표로 연결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캠프 관계자는 "2000년 총성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이곳에서 여론조사에서는 15% 이상 앞서다가 실제 투표에서 뒤집어졌다"며 "좋은 분위기를 표로 연결시키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문 최고위원은 전입 신고에서 한발 더 나아가 20년 이상 지속된 새누리당 1당 독식을 깨달라는 메시지를 들고 민심 파고들기에 나서고 있다. 그는 "열심히 일을 안 해도 무조건 당선시켜 주는 새누리당의 20년 싹쓸이가 부산을 망쳤다, 문재인 상임고문, 김정길 전 장관과 손잡고 부산을 바꿔 보겠다, 정치적 균형을 맞춰 달라"며 지역구를 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