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지했지만 농담은 그치지 않았고, 위로와 다짐은 서로를 더욱 가깝게 했다. 그들은 그렇게 '평화'란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다.
25일 '제주 국제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온 국제평화운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만났다.
강정마을 의례회관에서 오전 10시부터 열린 '강정마을 주민과의 간담회'에는 글로벌네트워크 의장인 데이브 웹을 비롯 28명의 국제평화활동가들과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 마을주민 약 40명, 총 70여 명이 참석했다.
자신을 '제주도 원주민'이라고 소개한 강미경씨는 "군사동맹인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대신하는 새로운 '아시아연합'을 구상하자는 제안을 들었다"며 "하지만 나는 그런 식의 연합보다는 새로운 정신운동으로 하모니즘(조화주의)을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그 하모니즘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인데 여기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미 그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나이가 81세인 강성원 할아버지는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해오는 동안에 겪은 마음고생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우리 강정마을 주민들이 벌써 5년째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하고 있는데 아마 주민들의 70, 80%는 환자일 겁니다. 나도 밤에 잠이 오질 않아요. 누워서 있으면 '나 혼자 죽어서라도 해군기지 막을 수만 있다면 죽기라도 할 텐데'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매일 농사를 지으면서도 마음은 온통 해군기지 문제로 가 있고….
해군기지 문제 불거지기 전에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이 이제는 한 동네 살면서 만나도 서로 피하고, 제사 음식도 같이 안 나눠먹고…. 이것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도움말을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사회복지사이자 미국의 평화운동가인 메리 베쓰 설리번이 강 할아버지의 호소에 응답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결국 그 해답은 강정마을에서 찾을 수밖에 없어요. 물론 지역사회의 사회복지사 등 마을 밖의 사람들도 함께 고민해야 겠지만 우선은 마을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파괴된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닐 수 있지만 해군기지 찬성과 반대로 나뉜 주민들이 언젠가는 치유를 위한 만남을 해야 합니다. 끊어진 관계를 연결시키고 관계의 다리를 놓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주위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핵무기 반대운동으로 유명한 영국의 평화운동가 엔지 젤터는 "앞으로 한 달 동안 강정마을에 주민 여러분과 함께 머물 것"이라며 "여러분이 억압을 당하면 함께 억압당하고, 여러분이 감옥에 가면 나도 함께 감옥에 갈 것"이라고 주민들을 위로했다.
브루스 개그논 글로벌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승리는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여러분은 승리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정부의 탄압이 거세지고, 군사기지를 건설하려는 이들의 행태가 거칠어지면 질수록 승리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분이 승리하는 순간까지 여러분의 투쟁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인도의 평화와 연대조직(AIPSO) 제이 나라야나 라오 전 사무총장은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국제연대강화를 위해서 두 가지를 즉석에서 제안해 참가자들로부터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냈다.
우선 '제주 국제평화회의'에 참가한 국제평화운동가들은 자신이 외부에서 강정투쟁 지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리스트를 작성키로 했다. 그리고 또 수시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정해서 전 세계에서 동시에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국제평화운동가들의 위로와 다짐에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이 조그만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공동투쟁을 결의해주셔서 더욱 감사하다"며 "평화는 평화가 지킬 때 가장 아름답다"고 화답했다.
주민들과 간담회를 마친 국제평화운동가들은 해군기지 건설 공사장 정문 앞까지 행진을 벌인 후 문정현 신부와 함께 '평화의 절'을 함께 했다.
한편 '강정을 생명평화의 마을로,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를 주제로 열린 '제주 국제평화회의'는 26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국제연대 전략회의'와 '글로벌네트워크 연례 총회'를 열고 폐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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