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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쪽의 고속도로망 구축을 보여주는사진  한반도 경제성장의 동력을 위해 국토 동맥으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총 9개의 고속도로 건설노선을 보여주는 사진
▲ 한반도 남쪽의 고속도로망 구축을 보여주는사진 한반도 경제성장의 동력을 위해 국토 동맥으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총 9개의 고속도로 건설노선을 보여주는 사진
ⓒ 오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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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문을 연,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기념관을 24일 찾았다. 한 인물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한 평가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기념관이 진정한 기념관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치있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과거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전시는 2층부터 시작해 1층으로 나온다. 박정희 기념관에 들어서자 마자, 박정희의 초상이 한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옆 책 모양의 전시물이 있는데, 세계은행(World Bank) 경제개발원(EDI)의 교재로 <박정희 경제개발 정책 회고록(1994)>이 채택되었다고 소개한다. 이어 외국 석학들의 말을 빌려 박정희를 칭송한다. "조국 근대화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전으로 제도적 개혁을 단행하였다"는 말로 박정희의 치적을 드높이기에 여념이 없다.

연표에는 정치, 경제, 외교, 국토개발, 사회문화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었다. 박정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는 알 수 없다. 앞뒤, 거두절미하고 '1961년 5.19일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했다고만 전한다. 역시 전시 브로슈어에는 '위대한 선각자의 정신과 역사를 배우고...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목적을 밝히고 있다. 역사를 제대로 배우려면 역사의 음과 양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역사적 자료가 음과 양을 보여줘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박정희 기념관의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는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수출입국, 고속도로 건설, 전력개발을 들었다. 정신개조운동으로 새마을 운동, 산림녹화사업, 4대강의 다목적 댐 건설과 농업개발로 노동 생산성 증대를 이루었고, 중화학 공업을 건설을 위한 공업단지를 조성했고, 과학기술 개발을 위한 인력양성에 주력하였다고 주장한다. 전시물에서 주장하는 두개의 키워드를 정리하면 '조국근대화 성공'과 '한강의 기적'이다.

박정희 기념관에서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는 숨겨져 있다. 근대화의 그늘 아래 가려진 부끄러운 과거는 모두 은폐시켜 놓았다. 박정희의 독재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없다. 어떻게 자랐으며, 어떤 과정으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숨을 거두었는지도 알 수 없다.

국민교육헌장  박정희 기념관의 말미에 국민교육헌장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 국민교육헌장 박정희 기념관의 말미에 국민교육헌장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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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기념한다는 것은 그의 업적만이 아니라, 그가 잘못한 것들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다. 역사를 배우는 우리들은 그런 선각자들의 과오를 통해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배움의 길을 걷게 된다.

박정희 기념관은 박정희의 생애를 평가하는 곳이 아니었다. 박정희 기념관은 박정희가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에만 주목하였다. 우리가 잘 살게 된 것은 모두 박정희의 업적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우리는 이 기념관에서는 절름발이 박정희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박정희의 죽음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할 때까지 어떤 생각을 했던 사람인가를 알 수도 없다. 창씨개명을 했던 그의 태도는 모른체 한다. 그의 가치관과 신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을 지내면서 어떤 치적을 쌓았는지에만 관심을 갖고 선전한다. 개발과 발전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기만 한다.

박정희 기념관에서 우리 사회의 미숙함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떤 한 인물에 대해, 과거 행적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다른 목소리, 다양한 평가들을 외면한 채 박정희의 업적과 치적만 내세운다고 해서, 그가 갑자기 훌륭한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을까?

박물관은 기념관을 포함한 연구기관이다. 연구결과를 전시로 관람자들에게 내 보이는 것이다. 이 박물관은 앞으로 박정희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명백히 밝힐 수 있을까? 솔직히 박정희 기념관을 보면서 떠돌이 약장수의 선전물을 보는 듯했다. 이 박물관은 박물관의 기본인 연구를 참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박물관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성숙하게 이끌 수 없으며, 온갖 선전의 구호만 가득 나열할 것이 뻔하다.

앞으로 기획전 등으로 박정희에 대한 새로운 전시를 선보일 터이지만, 상설전에 한 줄도 없는 것들, 은폐하고 싶은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박정희의 과거 과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까? 아니, 말이라도 할까? 아예 말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찬사만 난무하는 그런 전시가 반복되고, 선전용으로 남용되는 전시에서, 관람자를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계몽과 선전, 치적을 통해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작업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뻔뻔스럽게 경제성장과 발전의 논리를 전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박정희 기념관의 마지막 부분의 전시물  박정희의 어록을 통해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음을 보여주는 전시물
▲ 박정희 기념관의 마지막 부분의 전시물 박정희의 어록을 통해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음을 보여주는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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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대한 평가작업이 필요하다. 박물관의 비평작업도 연구만큼이나 중요하다. 박정희 기념관은 바로 이런 우리사회의 과거 기억의 문제, 과거 문제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함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박물관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박물관의 전시내용도 달라진다. 박물관에서 부끄러운 이야기는 숨기고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만 포장돼 사람들 앞에 설 때,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배울 수 없고 성찰의 기회를 갖기도 어렵다.

박물관의 전시에서 우리는 우리가 과거 어떤 잘못을 했는지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교훈을 얻고 새로운 삶을 모색해야 한다. 박물관을 누가 만드는가도 중요한 과제다.

최근 시민들이 만드는 박물관들이 속속 준비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박물관의 전시물을 구입하고, 건물과 터를 마련하고,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박정희 기념관은 우리가 해야 할 숙제가 아직도 더 많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부분이 아닌 전체적인 평가를 보여줄 수 있는 연구와 전시가 우리 박물관 동네에 더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은 이번 박정희 기념관을 통해 더욱 확실해졌다. 잘못된 것을 잘못 되었다고 인정할 수 없는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기념관 #국민교육헌장 #조국근대화 #박물관의 연구 #기념관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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