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라는 지명은 있는데, 이게 좀 이상해."
며칠 전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시카고에 거주 중인 지인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현재 일리노이 대학교 (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 UIC)에 다니고 있는 그녀는 이날 한 수업에서 미심쩍은 지도를 발견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가 수강하는 과목은 'Chinese civilization(중국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중국 역사 강의. 그녀는 "수업을 진행했던 조교가 사용한 고대 중국 지도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고구려'라는 지명은 있는데, 그 지역까지 한나라의 영역으로 나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조교가 구글(Google)에서 지도를 구해 활용한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조교가 수업 보충자료로 사용했던 지도는 중국 왕조 중의 하나인 한(漢)나라(BC 206~AD 220)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지도에 표시된 한 왕조의 영토가 문제였다.
포털사이트, '동북아' 역사 왜곡 최전방 공격수? 중국의 한 왕조에 해당하는 약 400여 년 동안 한반도 북부와 지금의 만주 일대는 고조선(BC 2333~108)으로부터 옥저(BC 2세기~AD 5세기), 동예(BC 3세기 이전~AD 3세기), 부여(BC 2세기~AD 494)를 거쳐 고구려(BC 37 ~AD 668)의 영토였으며 이후 발해(AD 698~926)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고대 역사의 장이었다.
그러나 2002년 초부터 2004년 초까지 그리고 200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는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이하 동북공정)의 영향으로 고대 동북아 역사를 왜곡한 지도들이 구글과 같은 검색사이트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구글의 경우 '중국 한나라 지도'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거의 모든 자료가 중국의 역사 왜곡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Han dynasty(한 왕조)'라는 검색어를 입력한 결과 약 40여 개에 이르는 한 왕조의 지도 이미지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 중 대략 5개 정도만 고조선 또는 고구려의 영토가 별도로 표기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정확한 지명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자료 대부분은 영어로 된 설명과 함께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에 동북아 역사재단 김정열(상고사 전문가) 씨는 "중국에서 제작하여 유포시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역사 왜곡 지도는 구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검색 사이트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내 포털의 경우 네이버와 다음, 야후코리아, 네이트 등에 'han dynasty' 또는 '중국 한나라 (지도)' 등과 같은 한나라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면 왜곡된 형태의 지도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네이버와 다음, 야후에서는 주로 블로거들의 이미지가 검색되었다. 그 중 대부분은 중국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자들이 활용한 것들이었다. 현재 일부 방문자들의 오류 지적에도 대부분 블로거가 활용한 왜곡 지도를 그대로 개시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해당 블로그 방문자들의 '퍼가기'나 '다운로드' 등을 통하여 확산 될 우려가 있다. 게다가 블로그의 내용이나 댓글들을 살펴보면 사용된 지도의 오류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용자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네이버의 한 블로그에는 한나라뿐만 아니라 진나라와 명나라의 왜곡된 지도도 게재되어 있다. 반면 네이트의 경우 왜곡된 지도가 동북공정 관련 뉴스나 왜곡 지도의 오류를 지적하는 목적으로 사용한 블로그 등에 의해 개재된 상태지만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지 않으면 어떤 목적의 자료인지 확인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또한, 구글에서도 'Qing dynasty(청 왕조)'를 검색하였을 때 이와 비슷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수업 보충자료... 그릇 된 역사의식 키울라! 무엇보다 국내 포털의 경우를 비롯해 구글처럼 국제적으로 이용되는 웹사이트에도 역사 왜곡 자료가 게재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다. 그 결과, 일리노이 대학교의 '중국 문명' 수업처럼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인 구글 등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담은 지도들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외국 학교에서 왜곡 지도가 강의 보충자료로 사용되면 동북아 고대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외국 학생들은 오류에 대한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대로 학습할 우려가 크다. 그릇 된 역사가 웹을 통하여 지속해서 유통 될 경우, 대한민국의 찬란했던 고대사를 중국의 그것으로 도난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김정열씨는 "중국이 고조선 한 무제의 공격으로 기원전 108년 멸망했을 당시 한사군을 설치하여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에 걸친 영토를 통치하려 하였던 것을 근거로 지도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한 왕조의 최대 전성기 일부의 상황으로써 400여 년에 이르는 한나라 전체의 역사를 대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 군현은 고구려에 의해 물러나게 되었으므로 지도 한 장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우리 재단을 비롯한 국내 학계에서는 중국 쪽에서 편찬된 교과서나 역사 왜곡 문제에 수정을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으나, 중국 정부에서 미온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그는 "이러한 현상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학계 차원에서 당대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아울러 역사 전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중국은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 속하는 지역의 과거사는 모두 중국사'라고 보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이론적 배경으로 위구르와 티베트 지역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켜 이 지역 통치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고자 서북공정(위구르) 및 서남공정(티베트)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