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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조선은 자전거의 나라였다. 자전거는 자동차 등 다른 교통수단을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통근, 통학, 업무, 레저 등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쓰였다. 그 시대 자전거문화는 어땠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앞으로 다가올 자전거 시대에 비슷한 모습으로 재현되진 않을까. 그 시절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 <기자 말>

 겨울은 자전거가 타기 불편한 계절이다. 그런데도 겨울 내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에 그랬을까. 사진은 2차대전 당시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전시의 겨울'(2008).
겨울은 자전거가 타기 불편한 계절이다. 그런데도 겨울 내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에 그랬을까. 사진은 2차대전 당시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전시의 겨울'(2008). ⓒ 전시의 겨울(2008)

지난 1월 31일 서울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됐다.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시내는 거북이 경주장으로 변했다. 큰 차들은 시속 10~20km 정도로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큰 눈이 내리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면 차선이 사라지며 차도엔 자동차와 사람이 엉겨서 다닌다. 자동차도 다니기 힘드니 다른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다리는 푹푹 빠지니 걸어 다니기 힘들고, 자전거 또한 바퀴가 눈 속에 파묻혀 나아가기는커녕 낑낑거리다 넘어지기 일쑤다.

오래 전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주교통수단이 자전거이던 시절 눈이 오면 경성 시내에서 모든 교통수단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였다. 

"어젯밤부터 내린 눈은 거리에 엉키어 가고 오는 전차는 소걸음치고 자전거는 모두 파묻히고 가고 오는 행인들은 강을 건너듯이 다리를 거두고 껑충껑충 뛰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다. 눈사태에 가끔 전차도 서서 앞에 눈을 치우고 다시 진행하는 형편이었는데 이후에 정전으로 시내 전차는 수차 가도 오도 못하고 서 있었다." - <동아일보>(1940년 2월 14일)

겨울은 여러모로 자전거 타기에 좋지가 않았다. 눈이 많이 내리면 자전거를 타기 어려웠다. 내린 눈이 녹아서 빙판이 되면 미끄러지기 쉬웠으니 위험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추워서 타기 힘들었다. 바람이 불면 체감기온은 더 떨어지는 것처럼 자전거 타는 사람은 보행자보다 더 춥기 마련이었다. 몸이 움츠려드니 핸들 조작 또한 부드럽지 않았다.

땅이 얼어서 단단하다는 점도 나쁜 점이었다. 혹시라도 자전거를 타다 떨어지면 차돌처럼 단단한 땅에 부딪혀 팔이 부러지거나 뇌진탕을 일으키기 쉬웠다.

그렇다면 해방 이전 시절 사람들은 겨울에 자전거를 놔두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했을까? 그렇지 않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그들은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이유는 그들에게 자전거는 여가용이 아니라 생활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터에 나가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야 했고, 자전거만큼 이동하기 좋으면서 유지비가 적게 드는 교통수단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했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으니 큰 눈이 내려 업무마비가 되기까진 자전거를 몰았다.

그때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평양 자전거배달부들 임금인상 파업, 한겨울 시민들 아우성

일제강점기 유명한 대중잡지인 <별건곤> 48호(1932년 2월 1일자)에 기자가 직접 냉면 자전거 배달부가 돼 경성 시내를 누빈 기사가 실린다. 시기는 겨울철이었다.

시원한 냉면은 여름에 인기가 있었지만 겨울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들이켜는 시원한 육수가 별미였기 때문이다. 찬바람 부는 거리를 한 손엔 냉면그릇을 들고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지그재그 달리는 모습은 꽤 볼만 했을 것이다. 

당시 기사를 보면 냉면 자전거 배달부들이 어떻게 다녔는지 드러난다. 옷은 그 시절 흔하게 입었던 한복바지와 저고리, 손을 보호하면서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장갑을 끼고, 머리가 춥지 않도록 방한모를 썼다. 야간운전이니 전등도 필수. 기자는 한 손가락에 전등을 끼고 자전거를 탄다.

기자는 저녁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네 차례나 배달을 한다. 모두 여유 있는 사람들이 냉면을 배달한 게 공통점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해방 전 냉면은 고급 음식이었다.

냉면이 유명한 곳은 평양이었다. 당연히 냉면집이 많았고, 딸린 자전거 배달부도 많았다. 사람들이 냉면을 찾았고, 냉면은 자전거 없이는 배달이 어려웠으니 자전거 배달부는 제법 힘이 셌다.

 오래전 겨울철 냉면은 별미였다. 경성과 평양과 같은 대도시에서 겨울철이면 자전거배달부들이 저녁부터 새벽까지 자전거를 타고 냉면을 배달했다. 그 풍경은 꽤 볼 만 했을 것이다. 사진은 영화 '행복한 장의사'(2000)
오래전 겨울철 냉면은 별미였다. 경성과 평양과 같은 대도시에서 겨울철이면 자전거배달부들이 저녁부터 새벽까지 자전거를 타고 냉면을 배달했다. 그 풍경은 꽤 볼 만 했을 것이다. 사진은 영화 '행복한 장의사'(2000) ⓒ 행복한장의사(2000)
1926년 1월 6일 평양 냉면집 자전거배달부 16명이 동맹파업을 벌인다. 일급 60전을 1원으로 올려달라는 요구였다. 자전거 배달부가 없으면 먼 거리 배달을 할 수 없었다. 칼자루는 고용주가 쥐고 있었지만, 냉면 배달이 많은 겨울철, 자전거 배달을 못하면 휴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영업상 손해가 컸다. 결국 양측 합의하에 1월 10일 자전거 배달부가 파업을 접는다.
1929년 가을에도 평양 자전거 배달부들은 임금을 높여달라고 파업한다. 당시 다른 냉면노동자들까지 더해 파업에 참가한 인원은 260여 명, 그 중 자전거 배달부가 160여 명이었으니 꽤 많은 숫자였다. 한 면옥집은 자전거 배달부만 15명이 됐다. 협상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마침내 겨울이 다가왔다.

냉면집들은 초강수를 뒀다. 12월 17일 총휴업에 들어가고,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 260여명을 전부 해고했다.

당장 불편해진 건 14만 평양부민들이었다. 겨울 별미 냉면을 먹을 수 없게 된 것. 평양경찰서장이 중재에 나서 당장 개업하고 고용하던 노동조합원을 그대로 채용하라고 명령했다. 불복할 시에는 영업정지를 시키겠다고 면옥조합 점주들에게 엄포를 놨다. 점주들은 버텼다.

더 깊은 겨울에 접어들면서 양상은 더욱 뜨거워졌다. 12월 23일 냉면집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동맹으로 변경하고 평안남도 평안북도 황해도에 있는 면옥 노동자들까지 싸움에 가담한다. 자전거 배달부들이 시작한 냉면파업은 당시 평양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냉면이 인기 있었기에 가능했고, 자전거 배달이 그만큼 영향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때는 냉면이 가장 맛있다는 겨울이었다.

냉면 자전거 배달이 유명했지만 그 외에도 자전거 배달은 많았다. 우편이나 전보를 비롯 신문, 쌀, 석탄, 숯, 장작, 술 등이 자전거에 실려 이리저리 배달됐다. 이들 품목은 계절을 타지 않았고, 특히 몇몇 품목은 겨울에 더욱 필요했다. 겨울이라고 자전거가 쉴 수 없었던 사정이었다.

겨울에 자전거여행 나선 사람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주변사람들

 겨울이 되면 물이 꽁꽁 얼어붙은 강을 자전거를 타고 건넜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해빙기가 되면 얼음이 얇아져 위험했지만, 그걸 모르고 건너던 사람들이 종종 물에 빠지곤 했다. 사진은 겨울 한강.
겨울이 되면 물이 꽁꽁 얼어붙은 강을 자전거를 타고 건넜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해빙기가 되면 얼음이 얇아져 위험했지만, 그걸 모르고 건너던 사람들이 종종 물에 빠지곤 했다. 사진은 겨울 한강. ⓒ 김대홍

큰 강을 낀 도시에선 오히려 겨울에 자전거가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당시는 다리가 귀하던 시절이라 큰 강을 건너려면 무조건 배를 타야 했다. 겨울엔 달랐다. 강이 꽁꽁 얼어붙었으니 자전거에 짐을 싣고 건너면 됐다.

습관처럼 강을 건너다 봉변을 당하기도 했으니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는 시절이었다. 강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살살 흐르기 시작하면 얼음두께가 얇아지는데 특정 지점부터 먼저 얇아졌다. 재수 없으면 자전거와 함께 '푹' 꺼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4일 오전 11시경 영변 구룡강에서 소림면 용강동에 있는 명제신(25)과 동동 명봉호(37) 등 4명이 전기 구룡강에 나가 그물로 고기를 잡든 중 뜻밖에 자전거가 강중에 있음을 발견하여 관할 주재소에 가져갔다는데 일반 주민은 이른 봄 해빙기에 행인이 강을 건너다가 얼음이 꺼지는 바람에 사람까지 침몰이 되지 아니하였나 하고 주민은 강변을 주목한다 한다." - <동아일보>(1930년 4월 1일)

겨울에 자전거를 타고 나선 이들도 있었으니 그 중 강준흥이란 청년을 꼽을 수 있다. 때는 1925년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8일까지. 가장 추운 계절에 여행을 나섰다. 지금이야 봄이나 가을에 자전거여행을 떠났겠지만, 당시는 지금과는 생활이 달랐다. 주 5일제 시절이 아니었고, 대부분은 하는 일이 농사였다.

논일과 밭일에 매달려 있을 때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일을 다 마친 뒤에야 놀 수 있었다. 겨울철에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라 당시엔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응당 그래야 했다.

겨울에 떠나면 추위는 고통이었지만 이점도 있었다. 농사를 끝낸 때였기 때문에 마을은 비교적 한가했고, 곳간은 가득 차 있었다.

자전거여행이라고 해서 여행비 챙겨서 일일이 사먹고 잠자리값 내면서 다니긴 힘든 시절이었다. 인심 좋은 마을을 찾아서 잠자리와 먹을 것을 해결해야 했는데, 겨울엔 그런 인심을 기대하기 좋았다.

어쨌든 강은 황해도 연백군 연안면 관천리에서 출발해 강원도를 끼고 동해안을 타고 내려온 뒤 경북, 경남, 전남, 전북, 충남, 경기를 거치며 다시 북으로 올라간다. 매일 300리(약 118km)에서 500리(약 196km) 정도 되는 강행군이었다.

지금처럼 도로가 잘 닦인 시절에도 하기 힘든 놀라운 이동기록이다. 놀라운 점은 당시 신문(<동아일보> 1926년 2월 13일) 보도내용이다. 신문은 강씨가 이동한 지점을 담담하게 적었을 뿐 겨울여행에 대한 특별한 묘사가 없다. 겨울여행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와 같은 태도는 1926년 2월 한국에 온 인도 자전거여행가 바파라(당시 29세)와 밤우카라(당시 23세) 관련 보도에서도 확인된다. 1924년 11월 15일 봄베이를 출발한 이들은 일본과 조선을 겨울 기간 동안 여행한다. 지금이라면 "한겨울에 어떻게 여행할 결심을 했는지"를 묻고 확인했겠지만 그런 시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놀라운 태도다. 그런 모습은 자전거 선진국이라 불리는 요즘 일본이나 덴마크,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 볼 수 있다. 이방인에겐 역시 낯선 상황이다.

"덴마크에서는 여전히 자전거를 많이 탄다. 겨울에도 사람들이 흩날리는 진눈개비를 뚫고 빙판길을 가로질러 페달을 밟는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 <덴마크>(모르텐 스트랑예 씀, 휘슬러 펴냄, 2005년)

 겨울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영화 '러브레터'를 보시길.
겨울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영화 '러브레터'를 보시길. ⓒ 러브레터(1995)
겨울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영화 <러브레터>(1995)를 보면 된다. 배경은 일본 최북단 훗카이도(북해도)다. 도내 전역이 폭설 지대로 가장 추운 달 평균 기온은 영하 8도쯤 된다.
영화에선 두 여자 주인공(사실은 1인 2역)이 겨울철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연스럽다. 심지어 한 주인공은 모자나 장갑도 끼지 않고 겨울용 외투만 걸친 채 탄다. 영화에서 과장해서 표현했다기보다는 평상시 모습이 반영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덴마크나 스웨덴, 일본처럼 자전거를 많이 타는 나라들의 겨울은 남다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겨울이 더 길고 혹독했다. 일제강점기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도심에선 자동차와 전차, 소가 끄는 수레, 인력거와 자전거, 사람이 뒤엉켜 다녔고, 도심을 벗어나면 죄다 비포장길이었다.

특히 겨울이 되면 큰 눈이 내려 길이 끊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겨울만 되면 신문에 단골로 실린 제목이 '폭설'과 '교통 두절'이었다.

"지난 16일 오후 9시반경부터 함박같이 퍼붓는 눈은 익일 아침까지 약 1척1촌 가량의 적설로 순창지방 10여년 이래의 대설이 쌓이게 되어 자전거 마차 등은 물론 자동차 각선까지 불통되는 구세말의 분망한 지금에 여간한 곤란이 아니라 한다." - <동아일보>(1933년 1월 19일)

경성에선 눈을 치우는 기계를 우선 전차길에 투입했다. 눈을 치워 길을 낸 만큼 전차가 전진했고, 다시 기계가 길을 치우면 전차가 나아갔다. 속도는 더뎠다. 그렇게 겨우 전차 한 대가 운행을 시작하면 나머지 전차는 대기상태였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었다. 눈이 녹을 때까지 줄곧 대기상태. 지금이라면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얼마인지 알리느라 언론마다 법석을 떨었겠지만 당시 보도는 그렇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출근길을 가로막은 자연재해를 개탄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가워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별안간에 쌓인 눈인 까닭에 큰길에도 눈을 쓸어버릴 새가 없어 큰길에도 통행하는 우마차는 바퀴가 빠지고 행인은 발목까지 눈에 묻히어 모두 헤엄을 치는 모양으로 눈 속을 헤매어 가는 것은 장관이었으며 길모퉁이마다 치워도 있고 눈장난을 하는 아해들은 눈덩이를 굴리어 눈사람을 만들어 세운 곳도 많이 있어 참으로 기쁜 겨울에 쌓인 기분을 일으키었더라." - <동아일보>(1922년 1월 10일)

이와 같은 태도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특별히 인명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시선은 공통으로 발견된다. 오히려 폭설을 반기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 이유는 당시가 농경사회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큰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는 게 속설이었다. 대부분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던 당시, 큰 눈은 반가운 손님이었다.

농업인구가 전체 인구의 5% 정도에 불과한 요즘(2011년말 기준 296만 5천명) 큰 눈이 반가운 이들보다는 불편한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큰 눈이 내리면 이로 인한 경제피해가 얼마니 하면서 언론이 난리를 피우는 건 사람들 마음이 반영된 결과일 테고.

당시에 자전거를 많이 탄 건 경제상황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자동차는 너무 비쌌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자전거가 비싼 물건이긴 했지만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았기 때문에 욕심 부려서 살 만했다.

기름값이 갑자기 뛰거나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 아니면 정부도 굳이 자전거를 타라 마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차도에서 특별히 자전거를 배려하지 않았고, 사고가 나더라도 자동차편을 들었다. 그러니 경제형편이 나아지면서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은 오토바이로 옮겨 탔고, 다시 자동차로 갈아탔다. 1970년대를 전후해 정부가 자동차 위주 정책을 펴면서 이런 경향은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이제 생활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귀한 존재가 됐다. 주로 레저용으로 자전거를 타는 상황이니 겨울철에 자전거를 보기가 힘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고 꽤 살 만한 나라들인 일본이나 덴마크,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 겨울에도 자전거를 많이 타는 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겨울에 춥고 빙판길 때문에 위험하다는 건 그 사람들도 잘 알 테고.

해답은 옆 나라 중국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때 세계 자전거의 절반이 있었다는 중국에선 갈수록 자전거가 줄어든다. 사람들이 점차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타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타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은가.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선 자전거 여가인구가 점점 늘면서 전체 자전거 이용인구가 는다는 게 차이일 것이다. 자전거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과 차이는 여기에 있다. 이들 나라는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자전거를 탄다. 

덴마크에선 국회의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네덜란드에선 시장이 자전거를 타고 주례를 보러 간다. 그래도 자연스러운 건 자전거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겨울에 자전거가 '확' 줄어드는 우리나라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는 휴가철이나 휴일에 가끔씩 타는 놀이수단일 뿐이다. 주로 타는 곳도 강변이나 산. 헬스클럽의 야외버전인 셈이다. 헬스클럽 자전거가 에너지 절약이나 환경문제와는 별로 상관없듯이 여가용 자전거 또한 마찬가지다.

여가용 자전거가 생활자전거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의견도 있지만, 여가를 즐기기 위해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는 행렬을 보면 다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생활자전거의 나라로 가고 있는가. 여가자전거의 나라로 가고 있는가.


#자전거#겨울자전거#자전거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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