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마을에서 바다 쪽으로 타박타박 걸어 들어가면 차 벽과 맞닥뜨린다. 키 크고 홀쭉한 널빤지들을 척척 이어 붙여 만든 이 벽은 하늘에서 보면 '디귿 자' 모양을 하고 있다. 바다가 아닌 곳은 이 벽이 죄 둘렀으니 가히 성벽이다.
차 벽은 바다로 향하는 모든 것을 가로막았다. 이 굳건한 의지의 표상인 성벽은 과연 무엇을 보호하고 있을까? 인류보다 적어도 몇 배는 이른 시기에 생겨나 바다로 향해 내달렸을 구럼비 바위.
관계자는 이 오래된 과거를 보호한다. 지구 역사의 연속성을 보호하고 있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래야 이 혼란스러운 사건의 연속에 미쳐버리지 않고, 허허로운 웃음이나 뱉을 수 있다.
이 벽을 가만 들여다보면 네모난 창문이 군인들처럼 오와 열을 맞추어 횡대로 뻗어 나간다. 창문 마다에는 뛰어난 심미안의 소유자가 촬영하고 선택했을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사진이 우열을 가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관계자는 정작 이 중덕 해안, 곧 구럼비 바위 사진을 붙여 놓친 않았다. '보라! 이 엄청나게 아름다운 관광사진을! 이따위 중덕인지 구럼비 바위인지 쯤은 국익안보를 위한 국책사업에 내주어도 아무 문제 없다구!' 그럴 리가 없다. 그저 올레 코스가 일부 바뀐 줄도 모르고 이 길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완곡히, 유머러스하게 '여기 말고도 볼 곳은 참 많아요'라고 권하고자 한 것이리라. 친절하기 그지없는 관계자이다.
성벽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 강정 포구로 간다. 탁 트인 바다. 기다란 방파제 끝에 올라서서 바다 건너 구럼비 바위를 본다. 그러나 관계자는 바다 따위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계자는 날카로운 면도날이 무수히 달린 철망으로 구럼비를 보호하고 있다. 바다로부터. 구럼비 앞바다는 인어나 돌고래나 아주 무서운 이빨의 상어가 습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관계자에게 막아야 할 적은 이들만이 아니다.
관계자의 증언으로는 종북빨갱이, 외부세력 등으로 구성되었다는 사람들이 카약이라는 원시 야만적인 것을 타고 흘러와 이 성스런 바위에 올라 쿵쾅거리며 신발 자국을 남기는 것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자꾸 이 극악무도한 사람들은 바위로 침투해 댔고, 이에 관계자는 더욱 강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 3일 관할 경찰서에 관계자는 '구럼비 발파 허가'를 신청한 것이 알려졌고, 곧 이를 위해 폭약을 넣을 구멍을 뚫다가 지하 4미터 지점에서 물이 솟구쳐 나온 모양이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구럼비의 피눈물'이라 부르겠지만, 관계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폭파할 것이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 바위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씨익 웃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시 한 수 옮긴다.
구럼비 -고영진(강정주민)내 어릴적 내 누이가 더럭바위 김 긁어다가차롱에 걸러 김짱 만들어 저녁 밥상에 올려주던구럼비 더럭바위 돌김 맛은 잊을 수가 없다내 누이 추운 손 호호 불며 긁어 모아 만들어준구럼비 돌김은 추운 겨울날이면 생각난다가난 때문에 일본으로 시집간내 누이가 보고 싶어진다보고싶은 구럼비야 보고싶은 내 누이야너를 위해 하고픈 일 많은데내 손길이 닿지 않으니 이 슬픔 어찌할꼬살아만 있어다오 구럼비야 내 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