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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황금지구의> 겉표지
<울트라 황금지구의>겉표지 ⓒ 예담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다소 황당해보이는 범죄를 구상하는 작품을 종종 볼 수 있다. 오쿠다 히데오의 <한밤 중에 행진>에서 주인공 일행은 야쿠자의 돈 10억 엔을 빼돌릴 계획을 세운다.

이사카 고타로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서는 주인공이 옆집 남자로부터 '서점을 습격해서 대사전을 강탈하자'라는 제안을 받는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위험하거나 황당한 계획이지만 등장인물들의 태도는 진지하기만 하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서 경찰서에 가거나, 야쿠자에게 보복 당할 걱정도 별로 하지 않는다. 배짱이 좋은 건지 둔한 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엉뚱한 계획에 걸맞게 등장인물들의 평소 모습도 약간 코믹하다. 빈틈없이 냉철한 범죄자가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나사 한두 개가 빠진 듯한 언행을 일삼는 인물들이다.

크건 작건 간에 모든 범죄과정에는 우연과 변수가 개입한다. 범죄를 성공으로 이끌려면 우연에 적절히 대응하고 변수를 통제해야 한다. 이렇게 허점이 많은 듯한 인물이 어떻게 거기에 대처해서 범행을 성공으로 이끌까?

범죄를 꿈꾸는 사람들

가이도 다케루의 2007년 작품 <울트라 황금지구의>에도 코믹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기발한 범죄를 구상한다. 작은 도시 사쿠라노미야의 한 철공소에서 영업담당으로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히라누마 헤이스케, 그의 친구인 '글라스 조'가 그들이다.

헤이스케는 '지겹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흔해빠진 따분한 남자다. 자신이 따분하다는 사실을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런 헤이스케에게 백수건달처럼 살고있는 글라스 조가 오랜만에 나타나서 파격적인 제안을 늘어 놓는다. 시청 수족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황금지구본'을 훔치자는 것이다.

황금지구본은 20년전 거품경제가 한참이던 시절, 남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던 지자체에서 1억 엔을 들여서 만든 지구본이다. 지름 70cm에 무게 80kg인 이 지구본은 일본과 북극의 일부가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20년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본을 보러왔기 때문에 방문객들로부터 짭짤한 입장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멀어져 갔다. 대신에 그동안 황금가격이 올라서 그 지구본을 처분하면 1억5천만 엔에 가까운 현금을 챙길 수 있다. 글라스 조는 지구본 강탈에 대한 다른 대의명분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시청에서는 꾸준히 경비예산을 늘려 왔는데 실제로 예산이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새로 잡힌 예산을 가지고 떡값으로 썼거나 아니면 공무원들끼리 호화판 술자리를 벌였는지 모른다. 이건 시민에 대한 중대한 배신행위라는 것이다. 이제 '지구본 접수 작전'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게 되었다. 글라스 조와 헤이스케는 의기투합한다. 우리가 황금을 팔아서 현금도 챙기고 타락한 공무원도 응징하는거야! 지하드 다이하드(성전에 살고 성전에 죽는다)!

코믹한 인물, 심각한 범죄

사실 이런 계획은 무모함 그 자체다. 아무리 경비가 허술하더라도 전시 중인 물건을 몰래 빼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시장에는 경비원도 있을테고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을 것이다. 그 감시망을 피하더라도 80kg이나 되는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힘든 일이다.

무사히 빼낸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어떻게 황금을 녹여서 몰래 팔 수 있을까. 이런 장물을 처분하려면 나름대로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지구본이 도난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될 것이고 장물처리 전문가들도 주목받게 된다. 이런 난관을 모두 피해서 거액의 현금을 손에 쥐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범죄소설의 매력은 이런 불가능 범죄에 있을 것이다. 완벽하게 폐쇄된 밀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것처럼, 헛점 투성이인 도난계획도 누가 실행하느냐에 따라서 성공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헤이스케에게는 커다란 돈 보다도 따분한 현실을 잊게해줄 어떤 사건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글라스 조는 헤이스케에게 '너는 꿈꾸는 잠에 빠져있다'라고 말한다. 헤이스케는 글라스 조에게 '땅에 발을 디뎌라'라고 대꾸한다.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허황된 꿈도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그 꿈은 여행이 될 수도 있고 1억 엔 짜리 지구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꿈 하나가 따분한 현실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기도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울트라 황금지구의> 가이도 다케루 지음 / 신유희 옮김. 예담 펴냄.



울트라 황금지구의

가이도 다케루 지음, 신유희 옮김, 예담(2012)


#울트라 황금지구의#가이도 다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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