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요즘 민주당… 도대체 왜 그래요? 가만 보고 있으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공천하는 걸 보면, 이 아저씨들이 무슨 생각으로 일하는 건지. ㅠㅠ. 설마, 자기들이 잘해서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죠?"제가 자주 가는 커피숍 주인이 드륵드륵 커피콩을 갈다가 복받치는 무엇이 있었는지 다짜고짜 민주당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저 혹시… 이런 얘기, 저만 듣고 있나요? 요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가보면 정치얘기 열 중 여덟은 민주당 비판입니다. 직장인들의 점심밥상에도 민주당이 가장 많이 오르는 메뉴일 것입니다. 그만큼 씹을 게 많다는 얘기죠.
지난 10·26 서울시장선거 때부터 국민의 힘으로 잘 차려준 밥상을 곱게 받아먹기는커녕, 스스로 걷어차고 뭉개고 코까지 빠트리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이 어떨까요? 솔직히 젊은이들의 어법대로 "민주당, 너 미친 거 아니야?" 하게 됩니다.
지난 1·15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 국민들은 80만 명의 힘을 모아 한명숙 지도부를 출범시켰습니다. 민주통합당도 입만 떼면 자랑처럼 '80만 시민의 힘으로 당선된 지도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민주적 리더십의 자화상은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꼬일 대로 꼬여 버린 스텝을 풀기엔 이미 역부족 상태라는 진단이 당 내부에서부터 나옵니다.
문성근 최고위원 "얽힌 실타래는 단번에 잘라내야"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가장 먼저 그 문제에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는 6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그동안 당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많은 분들이 공천에서 탈락했고, 새로 정당권에 들어오신 분들은 충분한 경쟁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며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된 이후 비판받은 여러 행보가 누적돼 실타래가 크게 엉커 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어 문 최고위원은 "우리 모두 깊게 반성하되 해결책은 실타래를 풀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단번에 잘라내는 것"이라며 "대표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문화예술인답게 은유적으로 표현했지만, 그것은 대상이 분명한 성명입니다. 임종석 사무총장 등 억울할지라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후보에 대한 공천문제를 '잘라내라'는 메시지입니다.
비단 문 최고위원만 그렇게 입을 열고 나선 것은 아닙니다. 이인영 최고위원도 같은 날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이대로 총선을 치를 수는 없다"며 "조기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시스템을 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엉망이 돼버린 지금, 민주통합당이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한다면, '화이트워시'로 변장한 새누리당이 다시 득점하게 되는 기회를 주고 말 것이라고 불안해했습니다.
이종석 "개인적인 공천반납으로 지도부 과오 안 풀린다"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박사는 7일자 <한겨레> 칼럼을 통해 "과오를 바로잡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이 전 장관은 '얽힌 실타래'의 핵심을 임종석 사무총장 문제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당 지도부가 비리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임종석 사무총장을 공천한 것이 핵심"이라며 "국민은 민주당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원칙을 지도부 스스로 무너뜨렸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이 전 장관은 "민주당 지도부의 눈에는 안 보였을지 모르나,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당 지도부가 공천 잣대를 뒤흔들어 버렸기 때문에, 뒤에 아무리 훌륭한 공천을 해도 진정성을 의심받고, 탈락자들의 불공정 항의가 잇따르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민주당 지도부가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국민에게 생소한 법적 용어를 들고나와 다른 소리를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한 국민의 잣대는 억울해도 공천은 불가하다는 것"이라며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해온 당 지도부가 어떻게 국민의 판단과 동떨어진 기준을 거리낌없이 내놓았는지 의아하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이 전 장관은 "국민에 대해 진정성을 지닌 정당이라면 최소한 비리 문제를 두고서는 다소 억울한 경우가 나오더라도 추상같은 자기검열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민주당을 정조준 한 이 전 장관은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한자어를 인용하면서, "임종석 총장의 공천을 반납"하고, "당 지도부가 그릇된 판단을 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라"고 요구합니다.
무엇보다 이 전 장관은 "개인의 공천 반납이나 불출마 선언으로 지도부의 과오가 덮어지지는 않는다"며 "임 총장과 이화영 전 의원을 버젓이 공천자 명단에 올린 얼빠진 민주당 공심위도 자성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민주통합당 내부에서 자기 결단을 하고, 야권연대도 허벅지 살을 베어내는 심정으로 임할 때 국민들은 다시 민주당에 마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민주통합당 문제를 풀기 위한 3가지 조건이같은 비판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만 하루가 흘렀습니다. 7일 오전 9시에 열린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에는 문성근 최고위원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한명숙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반드시 총선 승리를 하겠다"며 "민주통합당의 한명숙이 모든 책임을 지고 야권연대의 결실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밖에 당내 공천 불공정 시비와 임종석 총장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민주통합당은 현재 벌어지는 모든 공천 불공정 시비들이 야권연대의 통 큰 양보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엄청나게 시끄러워도 '센 야권연대' 한 방이면 이런 문제들이 잊혀질 수 있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정말 한명숙 대표의 말대로 민주통합당이 야권의 맏형으로서 통합진보당에 '통 큰 양보'를 하고, 상당수 의석을 무공천 형태로 내놓는다고 해서, 지금까지 민주통합당에 불거졌던 모든 불공정 시비와 당내 논란, 집행력의 공동화 현상 등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 있을까요? 그 정도로 누르고 가면, 국민들이 "그래, 민주당 잘한다! 파이팅!" 해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텝이 꼬여 도무지 풀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정당이 아무리 야권연대에서 '통 큰 양보'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민주통합당이 처한 문제의 본질을 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원칙 대로 풀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꼬일 대로 꼬인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통 큰 결단'을 내릴 때라는 것입니다. 더 늦으면 진짜 실기할 수 있거든요.
혹자는 그 '통 큰 결단의 3가지 조건'을 이렇게 듭니다. 첫째 한명숙 대표의 불출마 선언, 둘째 비리혐의 문제로 불공정 시비에 올랐던 후보들의 자진 공천반납 선언,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철규 위원장과 공심위원들의 '책임있는 집단행동'입니다.
이같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들은 싸늘하게 얼어붙은 마음으로 민주통합당을 등질지 모릅니다. 강성종 전 의원이나 최규식 의원이 개인적 차원에서 선당후사 하겠다며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국민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혹시 우리 국민들이 정치인 개인들의 결단보다는 민주통합당이 집단적으로 국민들 앞에 사과하고 새로운 비전을 보여달라는 뜻 아닐까요?
4·11 총선이 불과 35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역사가 요구할 때 행동으로 말했습니다. 바로 1·15 민주통합당 전당대회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요? 80만 시민의 힘으로 당선된 지도부는 오로지 국민만 믿고 가야 합니다. 국민이 노(NO)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민주진보의 총선승리는 지난 4년간 MB정권 치하에 시달렸던 우리 국민 모두의 여망입니다. 그 여망을 민주통합당이 이대로 짓밟는다면, 국민들이 먼저 들불처럼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