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에 조성 중인 골프장 '강릉CC'를 둘러싸고, 지역 주민들과 강원도청 사이에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어 물리적 충돌 우려까지 낳고 있다.
강릉CC는 강릉시청과 골프장 사업자인 ㈜동해임산이 주도해온 사업으로, 주민들은 강원도청이 상위 기관으로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지만 그런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강원도청은 '합리적인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고, 그런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 주민들은 '좀 더 적극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릉시청과 동해임산은 2008년 6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구정리에 골프장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생존권 문제를 도외시한 채 사업을 진행해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강릉시청이 인허가를 내주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불법과 탈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지금은 강원도청 감사실에서 행정 절차상의 문제를 놓고 감사를 벌이고 있다.
강원도청 "불법 소란행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강원도청은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지속 발생되었지만, 최대한 주민의 입장에서 민원을 해결한다는 관점에서 이를 인내하며 공권력 개입요청을 자제해 왔다"며 불법 행위로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간 및 앞으로 발생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 법률에 의거 관계기관에 고발 조치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강원도청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청 경내에 설치한 불법시설물(노숙천막)을 오는 14일까지 자진해서 철거하여 줄 것을 (주민들에게) 요청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관련법에 의거 대집행할 계획이며, 향후 어떤 형태의 불법시설물도 허용치 않겠다"는 방침을 통고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경한 방침이다.
강원도청은 이런 방침을 정하면서, 그동안 주민들이 "청사 기물(도지사실 출입문)을 파손하고 도지사실에 강제로 진입하고 점거"했으며, "도지사 관사 앞에서 야간(새벽) 시위 및 소란 행위"를 벌이는 등 "최근 불법 소란행위의 정도와 빈도가 지나쳐...(중략)...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강원도청은 왜 이런 기자회견을 열게 됐을까? 기자회견 내용만 놓고 보면 애초 강원도청과 주민들의 관계가 몹시 불편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지난해 4·27 강원도지사 재보궐선거 때만 해도 최문순 도지사의 당선을 열렬히 환영했다. 지역에서 강릉CC가 문제가 되기 시작한 지 4년째 되던 해다.
주민들은 예전 김진선 도지사 시절에 시작된 골프장 문제를 비로소 자신들 처지에서 해결해줄 인물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그만큼 기대도 컸다. 최문순 도지사도 상당한 의욕을 보였다. 지난해 9월 23일 도지사 직속으로 자문기구인 '강원도골프장민관협의회'를 구성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최문순 도지사는 민관협의회를 운영하면서 그야말로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 왔다.
그러다 구정리 주민들을 비롯한 강원도 내 골프장 반대 주민들이 도청 경내에 비닐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4일이다. 골프장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해지고 있다고 판단한 주민들은 도지사에게 좀 더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지사 입장에서 그건 합리적인 해결 방식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강원도청은 그동안 주민들의 노숙농성을 묵인해 왔다. 그런데 넉 달여 만에 '공권력'과 '대집행'을 거론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골프장 반대 주민들 "처음부터 법대로 했어야..."강원도청의 방침을 전해들은 주민들은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민간전문가가 참여한 현장 감사를 실시하지 않는 한 노숙농성을 자진해서 철거하는 일은 없다"는 태도다. 그리고 주민들은 "도지사실 출입문을 파손하거나 도지사 관사까지 찾아간 것은 도지사가 그날 주민과 면담하기로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도청에 원인 제공 책임이 있다"고 반박했다.
강원도청은 지난달 29일 도청 비서실에서 도지사와의 면담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주민들과 시민단체 실무자 등 30여 명을 경찰을 동원해 연행토록 했다. 그러자 주민들은 1일과 2일, 도지사 관사를 찾아가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강원도청은 주민들에게 노숙농성장을 자진 철거할 것을 요청하는 한편, 강릉시청과 동해임산에도 민원 해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주문했다. 강릉시청에는 "강원도 감사 및 강원도골프장민관협의회 활동이 원활이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동해임산에는 "민간전문가의 현장 조사에 협조하고 조사 등에 지장을 초래하는 현장 훼손은 방지"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재 강릉시청과 동해임산이 강원도청의 요구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따라줄지는 미지수다. 동해임산은 이미 지난 3일 "(사업승인이 완료된 상태에서) 강원도골프장민관협의회의 민간조사원이 출입증을 근거로 하여 사업부지에 들어오려고 할 경우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민간조사원에 대하여 공사장 입구부터 원천적으로 출입 자체를 막을 방침이다"라고 명확히 밝혀놓은 상태다.
강원도청은 5일 기자회견에서 여러 차례 '법'을 강조했다. "도청 내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도청이 경찰에 요청하거나 혹은 경찰이 직권으로 즉각 조치하도록 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골프장 민원이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루라도 빨리 해결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런 도청에 "모든 일이 처음부터 '법'대로만 진행됐다면, 주민들이 이렇게 거리로 나서야 하는 일은 아예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