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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관방송 마을 이장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시골마을에 울려퍼진다
회관방송마을 이장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시골마을에 울려퍼진다 ⓒ 서재호

"아, 아, 이장입니다. 부락민들께서는 지금 마을회관으로 오이소. 파출소장님이 오셨어요.  소장님 기다리게 하지 말고 퍼뜩 오이소."

지난 2월 말, 오전 11시경. 마을방송이 조용한 농촌마을을 깨운다. 방송내용만으론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조그마한 마을에 파출소장이 무슨 일로 왔을까? 이장님의 방송은 잠시 후 다시 이어진다.

"아, 그라고(그리고), 올 때 이쁘게 차리(차려) 입고 오이소."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이쁘게 차려입고 오라'는 마지막 말은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마을회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한분두분 모이기 시작하고
마을회관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한분두분 모이기 시작하고 ⓒ 서재호

마을방송을 따라 마을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봤다. 여기는 경남 의령군 칠곡면 수부마을. 노인정을 겸한 마을회관앞으로 방송을 듣고 모여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만히 살펴보니 말 잘듣는 학생들처럼 최대한 곱게 차려입고 나선 모습들이다. 할머니들은 장롱 안에서 오랜만에 꺼내 입은 듯한 고운한복차림이다. 할아버지들도 양복차림이다. 그 중에 이장님의 복장이 기이하다. 윗옷은 양복을 갖췄지만 바지는 작업복 차림이다.

이장님께 물어봤다.

"이장님, 오늘 무슨 날인가요? 마을분들이 다 모이시네요?"
"어, 오늘 사진찍는다 아이가. 영정사진."
"네, 그렇군요. 근데 이장님 복장이 좀 그렇습니다. 상의는 양복인데 하의는 좀 … ."
"허허허. 이거?  영정사진은 위에만 나와 . 아랫도리는 안 나와. 그냥 이래 입으면 돼. 허허허."

이장님 웃음소리에 할머니 몇 분이 면박을 준다. 목소리가 아직 괄괄한 밀양댁 할머니가 대표로 한마디 한다.

"그래도 파출소장님 앞인데 의관은 갖춰야지, 그러면 되나?" 

목소리는 나무라지만 얼굴을 웃고 있다. 그 말씀을 하는 할머니께 여쭤봤다.

"오늘 영정사진을 찍는 다고요? " 
질문받은 할머니는 반색을 하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응, 우리 지역 파출소장님이 찍어줘. 무료로 해줘. 아이구 우리 소장님 바쁠낀데 고마바서( 고마워서) …."

여기저기서 할머니들의 수다가 이어진다.

"대보름날 논두렁 몰래 태워서 겁났는데 소장님 얼굴을 어찌 볼꼬 …."
"화정댁은 영정사진이 문제가 아이고 잡히(잡혀) 가야한다. 킬킬킬 "

노인들의 수다를 듣다보니 이제 대강 이해가 갔다. 오늘 이장님의 방송과 마을회관에 모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예쁜 옷차림도 왜 그런지 감이 잡힌다. 오늘은 지역의 파출소장이 무료로 영정사진을 찍어주기로 약속한 날이다. 이렇게 몇 분의 할머니와 웃음섞인 인터뷰를 하는 사이 오늘의 사진사 파출소장님이 등장한다.

부드러운 얼굴의 사나이, 그를 소개한다

파출소장 영정사진 무료로 찍어주는 파출소장
파출소장영정사진 무료로 찍어주는 파출소장 ⓒ 서재호

웃는 얼굴이 부드러운 반백의 사나이. 의령군 파출소장 박도주(56세) 경위다. 20여 년 경력의 베테랑 사진사이며 한국 공무원 미술대전 심사위원이기도 한 사람이다. 그냥 아마추어 수준의 취미 사진가가 아니다. 전문사진가답게 장관상, 경찰청장상을 비롯해서 포상도 수없이 받은 프로다.

파출소장은 이장, 노인회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프로답게 곧바로 촬영준비에 들어간다. 마을회관 거실에 백스크린을 걸고 사진 삼각대를 놓는다. 백스크린과 삼각대 사이에 의자를 놓고 먼저 온 할머니 순서대로 포즈를 취하게 한다.

이렇게 해보세요 자세 잡아주는 파출소장
이렇게 해보세요자세 잡아주는 파출소장 ⓒ 서재호

능숙한 솜씨로 얼굴각도와  턱선을 직접 잡아주고 긴장도 풀어준다.
"아이고 어머니, 오늘 이쁘게도 차려 입으셨네예. 최고로 이쁘게 찍어 드릴께예."

연신 카메라를 누르면서도 모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아래는 사진촬영을 하는 중간중간 진행된 파출소장과의 '솔직토크'다.

이쁘게 찍어드릴께예 뽀~샵도 해드립니더`
이쁘게 찍어드릴께예뽀~샵도 해드립니더` ⓒ 서재호

- 알고보니 유명인 이시더군요. 신문이나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하셨죠?
"KBS 1 TV의 <생생투데이 - '경찰 변신은 무죄'> 에 출연(2011. 11. 8일) 한 적이 있습니다. 2009년에는 KBS 9시뉴스에도 나온 적이 있고요. 신문에도 여러 번 나온 적도 있습니다. 서울일보(20119.21자)를 비롯해서 뉴스경남, 신아일보, 경남저널 같은 곳에서도 여러차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직접 말하려니 쑥스럽네요. 하하."

- 사진가로서 수상경력도 화려하신 걸로 압니다. 지금까지 어떤 상들을 받으셨나요?
"1995년부터 상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공무원미술대전 사진부문에서 동상을 받았습니다. 행정안전부 장관상, 경찰청장상을 비롯해서 7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습니다. 작년 9월에는 전국 경찰관중에서는 최초로 초대작가로 선정되는 영광도 있었습니다. 그 특전으로 공무원미술대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해서 이래저래 감사한 한 해 였습니다."

- 사진작가로서의 경력도 대단하신데 농촌 노인 분들을 위한 무료 영정사진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영정사진을 찍기 시작한건 12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제가 고향이 농촌이었기 때문에 농촌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거기다가 시골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니 홀로 계신 노인분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시골에 집집마다 돌다보면 갑자기 돌아가셔도 영정사진 하나 제대로 없이 장사 치르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많았습니다. 어떨 땐 주민등록 사진을 확대복사해서 사용하는 모습도 가끔 보게 되었습니다.

홀로 사시다 보니 형편도 어려웠을 겁니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 입장에서는 부모님께 영정 사진 찍자는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건 내가 나서야 겠다' '사진 찍는 내가 나설 일이다'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고. 부모님 같은 분들이 너무 고마워 하시니까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오늘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말 하는 중에 옆에서 할머니 몇 분의 인터뷰 간섭(?) 이어졌다. " 우리 소장님은 길에서 차도 잘 태워줘. 짐 들고 가는 노인은 꼭 태워줘. 우리 지역에 정말 고마운 사람이야 …." 소장님은 그냥 " 허허허 " 웃고만다).

- 영정사진 작업은 비용이 제법 드는 일 아닙니까? 비용은 얼마나 들고 어떻게 조달하나요?
"사진작업 이란게 공정이 이렇습니다. 일단 오늘처럼 이렇게 촬영해서 컴퓨터로 포토샵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왕이면 주름살도 좀 감추고 이쁘게 해드리는 작업이지요. 그 다음에는 사진관에서 인화하고 코팅한 다음에 화랑에 부탁해서 액자작업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액자에 곱게 넣어서 직접 갖다 드립니다. 일체 비용은 받질 않고요( 비용에 대해선 대답하길 꺼리다가 게속되는 질문에 마지못해 대답해 줬다). 정확하게 비용을 뽑기는 어렵지만 연간 2-7백만 원의 돈이 듭니다. 이 비용은 제가 어떻게든 개인적으로 해결하죠."

- 그렇군요. 그럼 이렇게 사비를 털어서까지 봉사활동을 하시려면 가족들의 이해가 필요할 것 같은데 이해를 잘 해주시나요?
"집에선 '돈 안되는 일 하는 남편'으로 찍혀 있습니다. 하하. 그래도 이렇게 1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이젠 아내도 '그러려니'합니다.제 마음을 잘 아니까 요새는 저를 도와주려고 합니다. 대학생 자식이 둘인데 돈이 많이 들죠. 아내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조그마한 식당을 차렸습니다. 미안하고도 고마운 일입니다."

-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 해시죠.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최근엔 이곳으로 아예 이사도 했습니다. 영정사진을 찍을 때 어떤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소장, 고마워요. 멀리 있는 자식보다 낫네라고...이런 말 들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에 어디선가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전화를 마친 김 소장은 이내 장비를 챙겨 일어선다. 이장을 비롯해서 마을 주민들은 점심이라도 먹고 가시라 잡았지만 김소장은 한사코 사양하며 마을회관을 나선다. 또 다른 마을에서 사진을 기다린다며 노인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파출소장이 탄 차는 마을회관을 돌아 아랫마을을 향해 사라졌지만 회관 앞에 배웅나온 노인들은 차가 사라진 곳을 향해 오랫동안 눈길을 주며 서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상남도 블로그에도 함께 싣습니다.



#농촌#영정사진#파출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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