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부터 해군이 업체를 동원해 강정마을 해안에 있는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는 가운데, 구럼비 바위의 보존가치가 새롭게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헤럴드경제> 인터넷판은 8일자 '구럼비의 진실은? 희귀바위VS흔한바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구럼비 바위의 보존가치를 의심하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기사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의견을 인용하며 "구럼비 바위 자체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도, 생물권보전지역도 아니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제주해군기지 사업단장, 윤태정(57) 전 강정마을 회장, 김영민 전력정책관 소장 등의 의견을 빌려 구럼비 바위는 희귀바위가 아니라는 의견을 소개했다.
구럼비 바위가 세계자연유산이 아닌 것은 사실, 그러나..말미에 "거기에서는 샘물이 솟아나오고 온갖 희귀식물들이 있다"는 문정현 신부의 주장을 반론으로 덧붙이기는 했지만, 앞선 세 명이 전부 해군기지에 우호적인 사람들이란 점에서 구럼비 바위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기사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우선, 구럼비 바위가 세계자연유산도 생물권보전지역도 아니라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말은 사실이다. 참고로, 도내 환경단체나 강정마을 주민들이 구럼비 바위를 세계자연유산이라거나 생물권보전지역이라고 소개한 적이 없다.
다만, 강정마을 앞바다에서 범섬 인근까지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환경운동가들은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생물권보전지역에 서식하는 희귀생물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구럼비 해안에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와 맹꽁이가 서식하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생태계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해군기지 공사를 멈춰야한다고 주장해왔다.
<헤럴드경제> 기사는 "구럼비 바위는 특정지역의 희귀한 바위가 아니며 제주전역에 흔하게 보이는 까마귀쪽나무을 뜻하는 일반 보통명사"라는 해군기지사업단장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에 윤태정 전 강정마을 회장은 "애당초 '구럼비 바위'라는 명칭은 없었다. 기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신성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붙인 것"이라며 구럼비 바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데 동참한다.
참고로 윤태정 전 회장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유치하기 위해 마을회를 소집하고 1200여명의 주민들 중에 87명이 참석한 가운데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안을 가결시켜 도청에 유치신청서를 접수한 사람이다. 그는 훗날 주민들에 의해 마을회장직을 박탈당했다.
구럼비 바위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라는 해군기지 사업단장의 주장이나, 애당초 강정마을에 '구럼비 바위'라는 이름이 없었다는 윤태정 전 회장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구럼비 바위가 일반명사?
필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서귀포시가 1999년에 발간한 <서귀포시지명유래집>을 펼쳐봤다. 이 책 361쪽에는 강정동 구럼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구럼비 혹은 구엄비는 강정동 2731번지로부터 4670번지까지의 논이 있는 곳을 말하며 지금은 구럼비로 부르고 있다. 구럼비를 '큰구럼비', '조근구럼비', '개구럼비'로 지역을 구분하고 있는데, … 현재의 '구럼비'라는 지명은 구엄→구엄부→구럼비로 변형되어 불린 것이다. '구럼비'는 그 옛날 해안가를 중심으로 초가로 된 아홉 채의 작은 암자들이 있어서 '구럼비/구암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고 하고, '구럼비낭(까마귀쪽나무)이 많이 있어서 '구럼비'라고 하였다고도 한다.'즉 '구럼비'라는 이름은 강정동 해안가에 논이 있는 지대를 부르는 고유지명이고, 구럼비의 어원은 '초가집 아홉 채'나 '구럼비낭(까마귀쪽나무)' 중 한 가지라는 설명이다. 그러니까 구럼비 바위는 구럼비 해안에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서귀포시 남원읍 해안마을에 살고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구럼비낭(까마귀쪽나무)이 많이 서식한다. 이 나무가 다른 나무들과 달리 해풍에 강하고, 활엽수이면서도 겨울에 낙엽이 지지 않기 때문에 바람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동네 그 어디에도 '구럼비'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없다. 제주도에 까마귀쪽나무가 흔해빠졌다 해도, '구럼비'라는 지명이 흔해빠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헤럴드경제>의 기사는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영민 전력정책관 소장의 주장도 인용했다. 그는 방송에서 "구럼비는 2009년 문화재청에서 조사 결과 보존가치가 크지 않다고 평가받았다. 구럼비는 195만 킬로미터 제주해안 전체에 산재되어 있다. 그래서 이것은 보존가치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구럼비 바위에 대한 전문가의 기록이 있는데문화재청이 진실로 구럼비 바위를 보존가치가 낮은 제주도의 흔한 바위로 평가했는지 필자는 잘 모른다. 다만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구럼비 해안에 대해 기록한 한 지질학자의 의견을 소개하고자 한다. 동국대학교 지리교육과 권동희 교수가 쓴 <한국의 지형>(한울아카데미, 2006)은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현무암질 지형은 그 원지형면이 생생하게 보존되는 데 반해 안산암 지역은 이와는 달리 보편적으로 침식이 진행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안산암 지형은 서귀포 서쪽 해안취락인 강정리 일대이다. 이곳은 지형이 평탄하고 토양도 두껍게 피복되어 있다. 강정리 일대에서 주목할 만한 곳은 폭 100m, 길이 500m 내외의 암석면이다. 이는 만조 시에는 해수로 덮이지만 간조 시에는 노출되고, 파식의 형태도 관찰된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암석면은 일종의 파식붕(wave-cut bench)임을 추정할 수 있다.'- 책 202쪽
제주도의 지표는 대부분 현무암으로 덮여 있다. 그런데 강정마을의 구럼비 해안이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지역과 달리 안산암 혹은 조면암으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안산암이나 조면암은 현무암과 달리 물을 지하로 쉽게 침투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강정마을은 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해 용천수가 풍부하다. 또 이들 바위는 침식에 약해 쉽게 토양화되는 성질이 있는데, 이 때문에 바위들이 침식된 후에 두터운 토양층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마을이 '일강정'이라는 불리게 된 것은 모두 독특한 기반암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권동희 교수가 설명하고 있듯이, 구럼비 바위는 만조 시에 덮이고 간조 시에 노출되면서 파도의 침식을 받아 표면이 판판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표면이 판판한 안산암 혹은 조면암 통바위가 제주도에 흔하다는 것은 지질학의 기본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진짜로 제주에 흔하다면 다른 한 곳만이라도 소개해주면 좋으련만.
구럼비 바위는 민속문화의 보고구럼비 바위는 자연지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인문학적으로도 소중한 보물이다. 대표적인 예로 할망물을 들 수 있다. 할망물은 구럼비 바위틈을 비집고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의 이름이다. 그리고 할망은 제주도 무속사회에서 어린이들의 출생과 산육을 맡아보는 신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예로부터 이 마을 주민들은 이 물을 이용해 토신제를 지내기도 했고, 정성을 드릴 때 정화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민속문화는 1차 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연의 유기적 질서를 소중하게 여긴다. 씨앗과 물과 흙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지 않고, 생명이 없는 것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민속문화의 체계 속에서는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이 무의미한 것이다. 만약 문화재청이 구럼비 바위의 보존가치를 폄훼했다면 문화재청이 아니라 스스로 야만재청이라고 고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