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장안의 화제였던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이 담당 PD의 파업참가로 결방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애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 남은 2회(그것도 가장 중요한 2회!)를 보기 위해 다시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은 무척 고통스럽다. 게다가 예정된 종방일인 3월 8일에 맞춰 분석 기사를 내려고 지난 주말 내내 1회부터 18회까지 몰아서 복습한 보람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은 배가되었다.
'대체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게야?'애꿎은 화풀이 대상을 찾던 나의 종착지는 결국 김재철 MBC 사장과 MB였다.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이게 다 노무현 탓"이었던 5년 전의 기억 때문에 어지간하면 '이것은 MB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역편향의 의심을 품으려고 노력했었지만, 초유의 <해품달> 결방 건도 "이게 다 MB 탓"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결방의 일차적인 이유는 담당PD가 파업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얼마지 않아 방송으로 복귀했다. 자신의 의견만 확실하게 전달하고 결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의 드라마 PD까지 파업에 참가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게다가 MBC에서는 지금 다수의 간부급 인사들까지 보직을 내던지고 속속 파업에 참가했다. 역시 전례가 없던 일이다. 한 정권의 임기 동안 MBC가 다섯 번이나 파업을 하고 기자들이 두 차례나 제작거부에 들어간 것도 전례가 없다. 이런 사정을 돌아보면 담당PD의 행동이 딱히 돌출적이거나 못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해를 품은 달> 결방, 이게 다 MB 탓이다그 절박한 이유, '큰집에서 쪼인트' 까인 김재철 사장 밑에서는 공정방송을 할 수 없다는 그들의 외침은 일리 있어 보인다. 한 예로,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자사 방송 <PD수첩>에 대해 오히려 담당자 5명을 중징계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과문까지 냈으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사장님이라고 보기 어렵다. 말하자면 <해품달> 속 성수청 도무녀가 흑주술을 쓴 결과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시야를 좀 더 넓혀보면 함께 파업을 벌이고 있는 KBS와 YTN이 눈에 들어온다. 온갖 권력기관을 동원해 없는 죄를 만들어 멀쩡한 사장 쫓아내고 MB의 방송전략실장을 사장으로 내리꽂은 KBS의 경우나, 또 다른 특보 출신의 사장 뒤를 이어 정권 입맛에 맞는 코드인사로 후임 사장을 배출한 YTN의 경우 모두 차라리 누군가 흑주술을 썼다고 하는 편이 훨씬 더 그럴 듯해 보인다.
방송3사가 또 이렇게 함께 공정방송과 낙하산 사장 퇴진을 내걸고 파업을 하는 경우도 전례가 없었다. 기자 이름을 가리고 한명숙 관련 불공정 보도를 쏟아냈다는 <연합뉴스>도 지금 파업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 MBC에서 벌어진 것과 비슷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MBC의 파업은 단순히 한 방송사의 문제가 아니라 낙하산 인사로 방송사 전체를 장악해 불공정 보도를 일삼는 정권차원의 문제로 환원된다. 따라서 적어도 <해품달> 결방만큼은 궁극적으로 "이게 다 MB 탓"이라는 세간의 '법칙'이 잘 적용되는 것 같다.
판타지로맨스 사극 <해품달>에서는 외척 윤씨 일파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성수청 도무녀 장씨로 하여금 흑주술을 쓰게 해서 세자빈을 죽음으로 내몬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참으로 '판타스틱'한 설정이다. 그런데, 도무녀의 흑주술을 '권력기관의 치밀한 꼼수'로 바꾸어 읽으면 MB의 방송장악은 정확히 윤씨 일파의 모략과 일치한다. <해품달>을 빌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MB가 흑주술을 써서 방송을 장악했고 그 여파로 진짜 <해품달>이 결방된 것이다.
몸통 바로 직전에서 모두 멈춰버린 측근비리 수사불행히도 그렇게 권력에 장악된 방송은 더욱 큰 흑주술로 국민들을 현혹해왔다. 이미 인터넷 포털은 '점령'했겠다, 전통적인 보수언론인 조중동은 여전히 건재하겠다, 게다가 엄청난 종편특혜까지 안겨 줬겠다, 말 안 듣는 방송인들은 줄줄이 퇴출시켰겠다. 이만하면 세상의 진실이 가려지고 거짓이 횡행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덕분에 세상을 뒤흔들 만한 전례 없는 권력형 비리도 세인들의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지나가버렸다.
MB의 친인척 비리와 측근비리는 이상득 의원이나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경우처럼 몸통 바로 직전에서 모든 수사가 멈춰버렸다. 희한하게도 권력핵심부에 대한 압수수색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외교부는 앞장서서 주가조작에 가담한 의혹을 받고 있고 여당은 선관위를 테러했다. 그 뿐인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경우 검찰과 모의하여 민간인 사찰에 대한 증거를 인멸했다는 양심선언이 쏟아졌다. 현직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한 내곡동 사건은 유야무야 대통령 본인이 "잘 챙기지 못한" 사안으로 넘어가고 있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주민들의 의견과 합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이 모든 사건은 한결같이 청와대와 MB를 가리키고 있다.
대통령이 투기목적으로 법을 어기고 국가기관이 비리혐의에 연루되는가 하면 청와대가 증거인멸에 관여하고 또 헌법기관이 여당으로부터 테러를 당하는,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판타스틱한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5년 전 같았으면 대통령이 여러 번 탄핵 당했을 사안들이다. 이런 일들에 비하면 어느 판사의 이른바 기소청탁은 사법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사소해 보인다.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은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기본을 뒤흔드는 이런 일들이 벌어져도 세상은 너무나 조용하다는 점이다. 이것만큼은 조선 최고의 신력을 가진 성수청 도무녀 장씨의 흑주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MB가 정권초기부터 뿌려놓은 흑주술 덕분에 아무도 자세하게 보도하지 않는다. 취재도 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 결과 부지불식중에 우리 모두가 이미 그 흑주술에 익숙해져버렸다. 2009년 노무현의 서거는, MB의 흑주술이 정말로 정적을 죽여 버린 대표적인 사례다.
야권, MB 흑주술 막고 민주주의 살려낼까
공교롭게도 우리의 '근혜공주자가'께서는 이렇게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이 흑주술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 옆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설마 우리의 공주자가께서 민주주의의 척살을 기원하지는 않았겠지만, 흑주술이 자행될 때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른 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그 자리에 있기만 했던 민화공주의 입장에서는 지금 그토록 위세가 당당한 '근혜공주자가'가 무척이나 못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MB의 흑주술을 막아내고 그 때문에 질식하는 민주주의를 살려낼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의 야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세간에는 오래 전부터 '연대를 품은 야권'만이 이 흑주술을 이겨낼 유일한 방책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왔다. 8일 자정을 넘기면서 새벽까지 진행된 야권연대협상은 결국 타결되지 못했다. 이대로 야권은 분열된 채로 총선을 맞이할 것인가? 과연 야권연대의 전설은 실현될 것인가? 정말 1:1 구도를 만들면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고 그 여파로 대선까지 거머쥘까?
지금까지 야권의 행보를 돌아보면 그 전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야권과 야권연대를 바라보는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감동이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본말이 전도된 듯 한 야권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야권이 연대를 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고 또 그 여파로 정권을 바꾸는 그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민주주의를 살리고 국민주권을 회복하고 4대강이나 구럼비 같은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궁극적인 목표는 오히려 자기 세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모든 수사와 야권연대협상이 그저 정치공학적인 계산으로만 비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이번에 협상이 결렬된 것도 근본적으로 그 때문이 아닐까?
야권연대 협상 시한으로 정해진 3월 8일, 민주당의 한명숙 대표는 강정마을에 도착해서 야권연대의 필요성만 5분 동안 연설하다가 주민들이 폭발을 막기 위해 하루만 더 있다가 가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야권연대 막판 협상을 강정마을에서 할 수는 없었을까?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뭘하려는지 알 수 없다무엇보다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해 선거 초반부터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이름만 바꾸는 보여주기 쇼였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 점에서는 '근혜공주자가'의 새누리당이 큰 점수를 얻었다. 분칠로만 얼굴에 묻은 얼룩을 감추는 꼼수였을지는 몰라도 국민들은 적어도 그런 노력에라도 박수를 보낸 것이다.
그에 비하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야권이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의 틀조차도 이미 낡았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여전히 호남당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통합진보당은 무슨 이유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는지 일반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정쟁을 일삼는 세력은 머지않아 도태되고 만다.
세간에 떠도는 이른바 '13년 체제'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87년 체제의 잔상은 새로운 한국사회를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낡았다. 안철수 바람이 분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미 감각적으로 또 본능적으로 기존의 체제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야권이 진정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가장 철저하게 자신의 현재 모습을 깨뜨려야만 한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한, 여야 주요 정당의 대표인 '달(우연히도 박근혜, 한명숙, 이정희 모두 여성이다)'들은 자신의 육신을 베어 낼 칼을 품어야만 종국에는 해를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야권연대가 성공적으로 성사되고 또 총선에서 승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눈앞의 자기 잇속만 챙기고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정치공학적인 계산에만 열중한다면 총선승리는 승자의 독배가 될지도 모른다. 의회권력을 바꾼 뒤 신속하게 개혁조치들을 취하고 그 성과를 얻기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행정권력은 권력말기이기는 해도 MB의 손아귀에 있다. 모든 언론을 동원해 또 모든 국가기관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반발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의회다수를 점하고서도 개혁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전례를 떠올려 본다면 단지 국회다수파가 되어 청문회와 국정조사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모른다"와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하는 증인들과 질문은 하지 않고 호통만 치는 야당의원들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이렇게 되면 머지않아 여기저기서 '개혁피로감'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고 야권이 지금과 같은 허약한 리더십을 보인다면 야권에게 권력을 넘겨봤자 별 볼일 없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오히려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지도 모른다. 의회권력 교체로 어느 정도 MB심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유권자들에겐 더 이상 정권심판론이 크게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야권연대와 총선승리는 기나긴 여정의 단지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지금부터 야권은 왜 야권연대를 해야 하고 왜 총선에서 승리해야 하는지, 그렇게 얻은 의회권력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답과 개혁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은 여의도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현장에서 가장 진실 되고 가장 강력한 선거운동을 벌일 수가 있다.
흑주술은 5년으로 족하다
<해품달> 담당PD는 비록 파업에 참가해 방송을 결방시켰지만 자신의 의사만 표시한 뒤 다시 방송현장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양심과 신념, 그리고 책임 사이에서 절묘한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아무리 밤잠 설치는 애청자이지만 담당PD의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는 참고 기다릴 수 있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난 5년 동안 '사실상 결방'되었다. 정권 담당자들이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기관을 휘둘러 사욕을 챙기는 데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적당히 해 먹고 그만두었다면 5년째 결방이라는 사태를 피할 수는 있었을 텐데, 이들에게는 드라마 PD가 갖고 있는 최소한의 양식도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었음에 틀림없다. 지난 4년과 앞으로의 1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앞으로 또 다시 5년을 더 기다린다는 것은 마치 허연우 낭자더러 다시 무덤의 관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흑주술은 5년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