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2011년 가을 어느 날 한양대학교의 한 강의실. 강연하러 온 연사가 강연을 시작하며 김수영의 시 <김일성 만세>를 읽자 강연장을 가득 메운 교직원과 학생들의 얼굴에는 불쾌함과 당혹감이 교차한다. 사람들의 당혹감을 읽은 연사가 시의 의미를 설명하며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김수영이 지은 시"라고 말하자 그때서야 청중들은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다.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남루함'. <철학 VS 철학>의 저자 강신주 박사가 밝힌 '김수영 다시 읽기' 강의의 기획 이유다. 강 박사는 지난 7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김수영 다시 읽기' 첫번째 강의에서 자신이 대학에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2012년을 사는 한국인들이 50년 전의 시인인 김수영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강 박사는 시를 '글로 표현된 자유정신'이자 '나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로 정의하며 "우리는 시를 쓰듯이 다른 누구가 아닌, '자신이니까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로운 자유를 행사하는 진정한 시인 경우에는 시 어디엔가 힘이 맺혀 있어야만 한다"며 "특히 김수영의 시는 자유에 대한 찬가이자 자유를 질식시키려는 체제에 대한 분노로 기억 된다"고 말했다.
권력 앞에 '쫄지' 않았던 자유인, 김수영김수영은 1921년에 태어난 한국의 시인이다. 한국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게 끌려가 전쟁에 참전했으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전쟁 후 석방되었다. 1947년 <묘정의 노래>로 등단했으며 4·19혁명 이전까지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다소 난해한 성향의 시를 썼다. 하지만 4·19혁명 이후에는 자유와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 그 안에서 소시민들이 경험하는 비애를 성찰하는 시들을 발표했다.
왜 김수영의 시풍은 4·19혁명 이후에 눈에 띄게 변화했을까? 강 박사는 "김수영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밤새 살해된 시체가 아침에 화장실 변기에서 토막 난 채 발견되던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견뎌내면서 자유의 가치를 배운 사람"이라며 "4·19 혁명 이후에 모두가 허용된 자유에 취해 있을 때 김수영은 그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고 설명했다.
"4·19 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60년 10월 6일에 김수영은 <김일성만세>라는 시를 씁니다. 이 시에서 김수영은 4·19 혁명 이후 등장한 민주당의 장면 정권이 사실 이승만 독재 정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요. 당시 그는 <김일성만세>를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 각각 보내지만 발표되지 않았습니다."강 박사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민주정부가 왔다고 흥분했지만 김수영은 새로운 정부가 반공을 국시로 유지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며 "여전히 '김일성만세'라는 말을 하면 잡혀가는 시대였고 그것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강 박사가 한양대학교 강연에서 설명 없이 <김일성만세>를 낭독하자 불쾌해하고 당혹스러워했던 청중들은 여전히 한국인들의 내면에서 반공 검열 체계가 작동한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우리는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 전체가 반공 포로소가 되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다"며 "인문정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불편함을 느끼는 자기 자신이 포로라는 자각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을 무서워하고 검열에 찌든 정신이 어떻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 권력이나 자본은 과거보다 훨씬 더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에 갇힌 동물이나 자연농원에 방목된 동물이나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허용된 자유는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없지요."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만이 당당하게 자기 삶 살 수 있어"강 박사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려는 사람만이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체제의 힘을 뼈저리게 느끼는 법"이라며 "허용된 자유 속에 안주하는 사람은 체제의 억압을 자각할 수조차 없다"고 설명했다.
김수영이 1968년 4월 23일에 지은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는 이렇게 일상에서 겪는 각종 억압들과 그것들을 마주하는 피곤함을 집안에 있는 가재도구를 빌어 표현한 시다. 강 박사는 "이사를 막 끝내면 집이 낯설고 적응되지 않았기 때문에 집안 곳곳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많다"며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장애물, 억압들에 적응할 생각이 없는 사람 역시 어디로 움직이든 계속 무언가에 걸리게 되어있다"고 설명했다.
"이 시에서는 '걸리다'나 '울리다'가 반복적으로 쓰입니다. 무엇에 걸리거나 부딪혀서 울린다는 얘기는 내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내가 죽었거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경우에는 무엇에 걸리거나 울리게 만들지 않지요. 권력이 금지한 것을 건드리지 않으면 걸리지도 울리지도 않아요. 하지만 이 시를 쓴 시기의 김수영은 살아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걸리적거리는 게 많았지요."
강 박사는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들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으면 갈등을 빚을 일이 거의 없다"며 "어느 사회에나 어른들이나 선생님 같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문이 있는데 그 문으로만 다니면 다칠 일도 없고 아주 편하지만 자신이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지금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아직 부딪혀 본 적이 없는 것"이라며 "청계천 광장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로) 시위하다가 경찰에게 한 번 맞는 일이 생긴다면 아마 바로 체제의 억압이 무엇인지, 그동안 어떻게 길들여져 왔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만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김수영의 시에서 드러나는 자유로운 인문정신은 우리가 왜 그를 다시 읽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