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000여 명의 관중이 서울대학교 강당을 가득 메웠다. 무대에 올라선 한 노장은 두어 시간을 입담과 날노래(유행가)와 시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청중들은 웃고 울었다.
'백기완의 노래에 담긴 인생' 공연 현장이었다. 젊은이에게도 두 시간은 긴데, 머리가 하얀 백기완 선생에게 공연 시간이 너무 긴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 숨을 죽이며 바라보던 관객들. 하지만, 백기완 선생은 그 긴 독무대에서 청중을 압도하며 사로잡았다. 울고 웃던 청중들은 기립박수를 치더니 우르르 무대 앞으로 달려 나가 앞 다투어 악수를 하고 인사를 건넸다.
재야운동가로 백발을 휘날리며 우레와 같은 질타로 민중을 일깨우던 시대의 입담꾼이자 담론자인 백기완 선생이 팔순을 맞아 '민중미학특강'을 시작한다.
민중미학특강은 ▲ 용이냐 이상이냐 ▲ 저치(마실) 가는 이야기 ▲ 버선발 이야기 ▲ 골굿떼 이야기 ▲ 달거지(취발이) 이야기 ▲ 빛깔에 담긴 민중의 꿈 ▲ 이 땅 민중들의 가장 예쁜이는? ▲ 노나메기란 무엇인가 ▲ 노나메기를 들이댄다 ▲ 주어진 억압의 판을 깨뜨리는 한소리, 불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등 총 10강으로 이뤄진다.
찬밥 다섯 그릇 때문에 해고됐던 13살 소년 백기완
지난 10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하여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주제로 희망광장이 열렸다(장소 : 시청광장). 희망광장의 백미였던 이야기 초대 손님은 백기완 선생과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지도위원, 현대·유성·쌍용자동차 등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해고노동자들이었다.
비정규직들에게 힘을 주는 한 말씀을 부탁하자 백기완 선생은 "내가 비정규직의 대선배"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67년 전 비정규직 있으면 나와 봐. 내가 비정규직으로 대선배야. 1946년 가을, 여름 잠뱅이 입고서는 춥고 떨려 길거리서 잘 수 없는 거야. 주변을 돌아보니 설렁탕집이 보여. 설렁탕집에 들어가서 잠자리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사정했지. 주인이 나한테 '너 정말 뭐든 시키는 대로 할테냐'고 다짐을 받은 뒤 잠을 재워 줘. 다음 날부터 내가 한 일은 설렁탕 한 그릇 하면 가져다주고 두 그릇 하면 날라다 주는 거였어. 나는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니 열심히 일 해야겠다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어. 어느 날 저녁에 설렁탕이 남아 있어 한 그릇 더 먹었어 . 옆에 보니 찬밥이 남아 있는 거야 그 찬밥을 먹다보니 밥을 다섯 그릇 먹었어. 다음날 주인이 '야 너 밥 많이 먹어서 안 되갔어. 오늘부터 그만 둬'라고 헤서 해고 노동자가 됐어. 그게 67년 전 일이야."열아홉 살부터 재야운동권으로 살아 온 백전노장의 삶은 역시 달랐다. 비정규직의 아픔을 알기에 김진숙을 위해 시작된 희망버스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탔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거리에 서 있거나 비를 맞았던 탓에 고문 후유증으로 생긴 고관절이 더욱 악화됐다고 한다. 요즘은 찬 곳에서 두어 시간씩 앉아 있다 일어나면 발걸음 떼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2012년 목표를 '한미FTA 폐기'와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로 잡은 백기완 선생은 한미FTA 폐기 집회, 쌍용자동차 희망텐트 비정규직 파업 현장 등 선생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어디든 달려간다.
인생 자체가 운동이요 산 역사인 백기완 선생이 2월로 여든 해 생신을 맞았다. 후배들과 지인들이 조촐한 잔치를 마련해 인사를 드리려 했지만, 선생은 한사코 마다했다.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한미FTA, 감옥에 들어가 있던 송경동 시인 등 걸리는 문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사코 마다하는 팔순잔치를 후배들이 졸라 마련해 드리려는 이유가 있다. 백기완 선생이 노년의 모든 것을 걸고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이 땅 민중들의 얼과 삶이 정신을 되살리려 시작한 '노나메기 운동'을 전하고 싶어서다.
5000년 역사를 이어 온 민중의 얼과 삶을 응축한 '노나메기' 정신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노나메기란 '너도나도 일하고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라는 실천운동이자 민중을 이끌어 온 정신이다. 민중들의 삶 속에 녹아진 예술혼과 삶의 철학이니 책이나 기록이 있을 리 없다. 그 시대를 살아온 백기완 선생의 입을 통해 구전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나메기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운동을 이어간다고 한다. 첫째는 '학술 교육 운동'으로 토론회 세미나 대중 강연 등 다양한 학술적 활동을 이어간다. 둘째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극복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안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노나메기 운동은 꼬뮌 정신과 옛 이야기와 삶에 녹아져 있는 문화를 아래로부터 뿌리내리게 하려는 실천운동이다. 그 첫 시작이 대중강의인 '민중미학' 강의다.
'민중미학강의'는 벽돌쌓기 주춧돌 작업
백기완 선생은 민중들에겐 끈질긴 생명력과 변화의 동력인 '뚤매(부활)'의 힘이 있다고 말한다. '뚤매'란 자기 안의 장단에 따라 다시 일어나는 힘을 이르는 말이다.
백기완 선생은 비바람에 제일 먼저 누웠다 제일 먼저 일어나는 풀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민중의 힘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라고 믿는다. 백기완 선생은 민중의 에너지가 부활하는 함성을 '우~당 우~당 우당탕 뚤매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백기완 선생은 '뚤매'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
여러분. 산 정상에 1억만 년 동안 평화롭게 자리 잡아 햇살과 비바람을 견뎌 온 커다란 바위가 있었어요. 어느 날 욕심 많은 자본가가 저 바위를 드러내고 저기에 멋진 별장을 지어야겠다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그 커다란 바위를 산 아래로 굴려 떨어트렸어요. 바위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화가 난 바위는 '우~당 우~당 우당탕 우당탕' 거리며 여기저기 다른 바위와 나무에 부딪치며 산 아래로 굴러가는 동안 온몸이 산산이 부서져 콩가루처럼 가루가 됐어요. 바위가 가루가 됐으니 존재가 없어졌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바위는 자기 몸이 부서지면서 자기 몸 안에서 우러나오는 장단 뚱땅 우당탕 장단에 맞추어 자기를 부수는 바위를 깨트렸어요. 비정규직도 마찬가지예요. 비정규직의 목을 자르는 자본가 적들과 싸우며 깨지면서 깨트리는 놈을 깨트리는 거예요. 깨지면서 우리 안의 '뚱땅' 장단에 따라 뚤매(부활의 정신)'처럼 살아나서 '우~당 우~당 우당탕' 적과 싸우며 깨트리는 놈을 깨트리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있어요. 그게 바로 뚤매(부활) 정신이야!"선생은 민중 속에 끈질기게 살아있는 생명의 가락과 투혼을 불러 일으켜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옛이야기를 통해 삶의 지혜를 전달하듯 민중을 위로하고 민중의 잠재된 힘을 상기시키고 싶어했다. 백기완 선생이 입을 열어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으면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를, 무지렁이 민초들의 삶과 애환과 지혜를 '민중미학 강의'에서 들려주려는 것이다. 선생은 "민중미학 강의"를 통해 노나메기 문화원 건립을 위한 '노나메기 300만 장 벽돌쌓기'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템플 스테이라는 이름의 대중적인 수련과 숙박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여기저기서 숙소가 불사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와 한 장 값은 보통 2만 원. 노나메기 벽돌 한 장 값은 커피전문점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5천 원. 노나메기 벽돌은 사람들이 백기완 선생에게만 들을 수 있는 귀중한 민중미학 강연을 듣고 '노나메기' 정신에 공감해 가슴에서 공감의 파도가 일렁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땅의 민중은 5천만 명이다. 1% 자본가인 50만 명을 제외한 4950만 명이 노동자, 농민, 민중들이다. 그 민중들의 10%도 안 되는 300만 명이 한 잔의 차를 마시는 대신 '노나메기 300만 장 벽돌쌓기'에서 한 장의 벽돌을 쌓는다면 어떻게 될까. YMCA 회관은 여성들이 피땀과 반찬값, 고무신 값을 모아 청년, 농민과 노동자의 힘으로 지어졌다. 노나메기 문화원도 이 땅 99% 민중들의 손 때 묻은, 한 시간 시급도 안 되는 푼돈을 모아 지어질 수 있다면 노나메기 정신을 제대로 이어가는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 백기완 선생의 팔순 잔치는 3월 18일 오후 5시부터 세종홀에서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셔서 함께 축하해 주세요. 그리고, 합창곡으로 부를 <임을 위한 행진곡>도 함께 불러주세요.
- 민중미학강의는 경향신문 15층 민주노총 교육관에서 4월 3일부터 6월 10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열립니다. 참가비는 없으며 '노나메기 300만 장 벽돌쌓기'에 참여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