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아간 대학가는 번잡했다. 나는 휴학을 하고 2개월째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친한 동기의 연락을 받고 학교가 있는 대전을 찾은 참이었다. 입학 시즌의 대학가 여기저기선 개강 파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2학번 신입생들과 선배들의 대면식.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자화상 속에서 꽤 오랜만에 동기들과 마주했다. 군 복무를 하고 한 학기를 휴학했으니 3년 만에 만난 셈이었다.
"취업한 거야? 페이스북 보니까 바빠 보이던데 무슨 일 하냐."맥주 오백을 손에 쥐고 끼어든 대화 저변엔, 그들의 현실 문제가 여기저기 깔려 있었다. 학자금 대출, 취업 걱정, 하숙비 인상. 그들의 씁쓸한 이야길 들으며 나는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1학년 때 처음 느꼈던 대학에 대한 로망, 풋풋한 감정들은 지긋지긋한 현실 뒤편에 옹송그리며 숨어 있을 뿐이었다. 동기들은 여기저기 모여 현실 문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치솟는 생활비와 암울한 취업 전선. 당면한 현실 앞에서 그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문득 저 멀리 앉아 있는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친구들도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현실과 마주하겠지, 치솟는 하숙비를 부모님께 요구하며 미안한 마음을 느끼겠지. 하는 생각에 괜스레 기분이 씁쓸해졌다. 그러다 문득 다음 달에 행해지는 선거가 떠올라 동기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서 이번 총선 때 누구 찍을 건데?"정치에 무지했던 스무살의 나... "중간고사 코앞인데 총선은 무슨"
스무 살의 나는 정치에 무심했다. 정당의 개념은 알았지만 정당의 성향은 몰랐고, 정책의 중요성도 알지 못했다. '정치 참여'라는 건 생각조차 못했고, 선거일이면 후보의 약력을 보며 그놈이 그놈일 거라고 단정 짓고 놀러다니기 바빴다. 당시의 내게 정치는 삶을 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상 영역 바깥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나. TV 화면 가득 촛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놀러 간 서울의 광장에 수많은 인파가 모였고, 내가 살던 대전에도 촛불이 군집했다. 친한 친구 녀석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가 병원 신세를 졌고, 인터넷엔 촛불 시위로 떠들썩한 대한민국이 중계되었다. 그렇게 문득, 정치는 내 일상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 뒤로 정치는 지속적으로 내 일상에 들어왔다. 평상시에 책을 끼고 사는 나였기에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어댔는데.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오연호가 펴낸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내게 감정을 호소했다면, 그와 조국이 펴낸 <진보집권플랜>은 내게 두루뭉술한 정치관을 뒤엎는 통찰을 던져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조중동'이라는 조그마한 창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사실 전혀 아름답지 못했고, 그 창 바깥의 내가 바라보지 못했던 세상은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눈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정치에 무심했던 게 아니라 지극히 무지했던 한 명의 유권자였던 것이다.
"그놈이 다 그놈 아냐? 중간고사가 코앞인데 총선이 뭔 대수야?"친구 녀석의 말마따나 사실 '그놈이 다 그놈'이었다. 어딜 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정치인뿐이었고, 당적을 변경해서라도 총선에 나가 한 번 더 국회의원 해보겠다는 줏대 없는 이들이 우글우글한 정치판이었다. 친구는 가벼운 정치냉소주의를 넘어 정치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다.
선거판을 봐도 제대로 자신의 공약을 이야기하는 후보는 없었고, 여기저기서 네거티브만이 판을 칠뿐이었다. 정치는 우리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정치냉소주의의 수혜자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정책을 통과시키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하에 미디어법이 통과되었고, 시청률 0.5퍼센트의 종편이 방송 산업에 진입했으며,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대운하는 4대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강 여기저기에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생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에서도 비슷한 일은 일어났다. 대선 후보시절 '등록금 반값 공약'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이를 조용히 없던 일로 하고 후불제를 도입했고,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이 법령은 높은 금리와 1500만 원이라는 낮은 상환 기준 소득, 졸업 4년 후 강제 상환 방침 등 애초의 '친서민' 정책과는 궤를 달리하는 정책을 만들어 버렸다.
4대강 사업 강행, 반값등록금 실종... 정치냉소주의 수혜자는?
지난 2008년 18대 총선 연령별 투표율을 보면, 20대 후반 세대들의 투표율은 고작 24.2%였다. 이는 60세 이상 투표율 65.5%에 비하면 거의 1/3 수준인 것이다. 그만큼 20대들이 선거 시기 투표장을 외면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근래 들어 '나꼼수'의 영향과 SNS의 발달로 20대의 정치 관심도가 부쩍 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 성향을 표현하는 게 '고리타분함의 전형'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정치주관을 표현하는 대학생들이 늘었다. 하지만 수없이 쌓인 리포트와 다가오는 중간고사, 네거티브만 남발하는 정치인들, 쉴 틈 없는 아르바이트 앞에서 얼마나 많은 20대가 관심을 갖고 투표장으로 나설까.
술자리가 파하고 계산을 하며 축 늘어진 친구의 어깨를 보았다. 전세금 15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께 부담을 주었다는 친구의 뒷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 학기 휴학을 하고 번 돈을 다음 학기 등록금에 대입해 보았다. 사실 나도 그와 비슷한 처지였다.
비단 나와 친구뿐만 아니라 수많은 20대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20대의 투표율이 50%가 오르면 등록금이 50% 떨어질 것'이라는 김제동의 말마따나 우리의 생활을 바꾸는 방법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4월 11일 작지만 큰 기회를 잡을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덧붙이는 글 | 이한규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