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3일) 도착한 공문을 보니 오늘 오후 3시까지 체육 수업시수를 주당 1시간 늘린 뒤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학기 중에 벼락치기로 그것도 반나절 만에 수업시수 순증을 결정하라니, 교육과정이 소꿉놀이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됩니까?"
서울지역 한 중학교 교장 P씨는 13일 오후 전화통화에서 이 같이 말한 뒤 "공문을 같이 본 교사들은 서울시교육청이 미쳤다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B중학교 교사들도 점심시간 긴급회의를 열었다. 공문 지시에 따라 체육 수업시수 증가 여부를 논의하려고 모였지만, 그 자리는 곽노현 교육감과 교육청 성토장이 되었다고 한다.
앞에서는 공문 보내고 뒤에서는 '비밀 메일'문제가 된 서울시교육청 공문(3월 12일자) 제목은 '학교스포츠클럽활동 활성화를 위한 시간 편성 추가 안내'.
시교육청은 이 공문에서 "일부 시간 확보가 가능한 학교도 학교스포츠클럽(체육수업) 활동으로 편성할 수 있음을 재안내한다"면서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시간을 편성하여 주시고 그 결과를 13일 오후 3시까지 유선 보고하고 16일 오후 3시까지 업무관리시스템으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게다가 일부 지역교육지원청 장학사와 중등교육과장은 일선 학교 교감과 교장에게 비밀 메일을 일제히 발송해 체육수업시수 확대를 사실상 강압하는 이례적인 일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전체 11개 지역교육지원청 가운데 기자가 입수한 2개 지역교육지원청 담당자의 메일에는 다음처럼 적혀 있었다.
"보안, 긴급. 교감선생님. … 놀라실 것 같아 미리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 저 또한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공문 보시고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교과부에서 우리교육청의 참가율이 대단히 저조하다며 많은 염려를 하셨고 추후 면밀히 점검하겠다는 말씀을 하고 가셨습니다. … 어렵지만 교장선생님의 적극적인 협조 당부드립니다." - ○○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하지만 이런 공문 내용과 메일은 시교육청이 지난 달 23일 학교에 보낸 공문과 상반된 것이라는 게 일선학교의 반응이다.
당시 시교육청은 "'중학교 체육수업시수 확대추진계획' 일시 중지에 따른 후속 안내"란 제목의 공문에서 "여건이 되는 학교에서 '스포츠클럽활동'(체육수업)을 자율 실시하라"고 지시해 교과부에서 발표한 '체육수업시수 확대 방안'에 대한 적용을 학교 자율에 맡긴 바 있다.
체육수업 확대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학교교육과정이 이미 완성된 2월 상황에서 시수를 갑자기 늘리는 것은 커다란 혼란이 초래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강원, 경기, 전북 교육청도 서울시교육청과 비슷한 공문을 각 학교에 보냈다.
18일 만에 상반된 공문 발송, 어떤 일이 있었기에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된 지 12일이 흐른 시점에서 왜 기존 공문과 상반된 공문이 만들어진 것일까?
서울시교육청과 전교조 서울지부(지부장 이병우) 등에 따르면 시교육청은 지난 12일 오후 2시 지역교육청 중등교육과장회의를 긴급 소집한 뒤 체육 수업시수 확대를 결정하고 곧바로 이대영 부교육감의 구두 결재를 받아 공문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의에는 교과부 과장 등 교과부 인사 3명과 이 부교육감이 참석한 사실이 확인됐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회의에서 교과부 직원들은 '체육 수업시수 확대'를 강조했고 전체 학교의 7.1%만이 시수 확대를 하기로 한 상황에 대해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교과부 직원들은 학기 중에도 체육시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고, 이 내용을 시교육청은 곧바로 공문으로 만들어 일선 학교에 보냈다.
이번 공문 사태는 시교육청 안에서도 '교과부의 군사작전식 압력'이 작용한 결과란 뒷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수업시수 증가는 학교별 교육과정편성위원회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가능한 것인데 시교육청 공문이 불법을 조장한 꼴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곽 교육감이 병원에 입원한 상황에서 교과부 압력을 받은 이대영 부교육감이 기존 공문을 뒤집는 것을 용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학교체육 담당 중견관리는 "12일자 공문도 체육 수업시수를 늘릴 것을 강제한 것이 아니며, 기존 교과부 방침이 완화된 것을 안내하려고 보낸 것"이라면서 "이 부교육감에게 구두 결재를 받고 공문을 보낸 것은 맞지만 이 부교육감의 별도 지시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시교육청 고위 관리도 "13일 당일에 수업시수 확대를 보고토록 한 것은 동향을 미리 파악해 계획을 세우기 위한 것일 뿐 다른 뜻이 없었다"면서 "일선학교에서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공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라도 다시 안내를 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