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검정의 일자 눈썹. 야구방망이를 든 '순악질 여사', 방송인 김미화. 그의 눈에는 '악질'은 사라지고 다섯 살배기 개구쟁이만 남았다. 환한 웃음으로 상대의 상처를 품는 그의 목소리는 치유의 힘을 지녔다.
서울 목동 CBS 편성국의 분주한 사무실에서 오후 방송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참에 '소중한' 짬을 내 방송인 김미화가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창근을 만났다. 그 자리에는 삼성반도체 희생자의 삶을 담은 르포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을 쓴 희정도 함께 했다.
3월 10일부터 서울광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희망 세상을 향한 99%의 희망광장(희망광장)'에 김미화가 보내는 연대와 응원을 들으려고 지난 12일 오전에 '티타임 좌담'을 가졌다.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가 흐르자 김미화는 '순악질 여사'로 돌변했다. "웃통 까고 대들면 (정권도) 무서워" 한다며 "악바리 같은 기질"로 맞설 것을 1000일 넘게 복직 싸움을 하고 있는 해고자에게 '배후조종'을 하기도 했다.
김미화는 워낙 사고를 많이 친 정부 밑에서 살자니 '희망광장'에만 함께해달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면 참여할수록 더 희망의 불은 뜨겁게 지펴지니" 희망광장에 "내가 몇 개의 씨앗으로 꽃을 피워줄 건지" 생각하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자고 권하는 김미화의 얼굴은 개구쟁이로 돌아왔다.
"즐겁지 않은 직장, 즐겁지 않은 회사가 잘 돌아갈 리 없다"
희정(이하 희) : "갈수록 일자리가 불안해지는 사회가 되고 있어요."
김미화(이하 김) :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만든 보호의 장치가 가진 사람 또는 기업에 의해서 희한하게 변질되었어요. 비정규직을 양산하지 않게 하기 위한 제도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정규직이 더 많아지는 것을 합리화 시키는 그런 제도가 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이런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현실은 기업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절대로 바꿔질 수 없는 거거든요.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그게 코에 걸면 코걸이, 다 말장난이 되더라고요. 이젠 기업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해요."
희 : "갈수록 비정규직들의 삶은 어려워지잖아요."
김 : "경제학자하고 함께 이야기 하다보니까, 이게 '토건마피아'처럼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커다란 일들이 다 이루어지고 있더라고요. 4대강 사업이라든지 뭐, 아파트를 지어도 마찬가지고요.
이제는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해요. '사람 값(가치)이 비싸지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게 경제학자들의 바람이고, 저도 그게 옳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너무 값이 싸요. 그러니까 인정을 못 받죠.
예전에는 직장이 내 가정이었고, 가정이 내 회사, 이랬어요. (일터에) 뼈를 묻는다는 표현이기도 하고, 직장 생활하는 게 즐거워야 된다는 말이기도 하죠. 지금은 직장이 즐겁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즐겁지 않은 회사가 잘 돌아갈 리 없다고 생각해요."
희 : "사람값이 비싸지는 사회, 가슴에 와닿네요."
김 : "제가 유종일 교수의 <경제 119>, 그 책을 보고, 이게 대안이라고 생각했어요. 비정규직의 급여가 오히려 비싸야 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들은 회사에서 자를 때 그만두라면 언제든 그만두어야 하잖아요. 복지혜택도 없잖아요. 그래서 회사에서 주는 복지 같은 게 없기 때문에 부담이 덜어지니까 비정규직을 쓸 때는 비싼 가격(임금)으로 고용해야 된다는 거죠. 외국 같은 경우에는 거의 그렇다고 하거든요.
(이걸 보고) 이게 대안이다 싶었어요. 기업의 생각이 이처럼 바뀔 수가 있다면 굳이 법률 한 구절을 요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는 꼼수 부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노사가)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일할 수 있죠. 비정규직들이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할 때, 악착같이 '왜 나를 잘라!' 싸우지도 않을 거고.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는 게 나는 좋다.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일을 하는 대가를 받고 싶다' 하면, 사회에서 정정당당하게 일하는 값 주고 쓰면 될 것 같은데, 근데 잘…. 사람 마음이 다 똑같지 않으니까."
이창근(이하 이) : "제조업 사내하청 같은 경우에는 임금 수준을 보면 50%예요. 공장 안에 있는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 이미 100%를 훨씬 넘어 200% 가까이 되고요. 예를 들어 정규직이 1만 명이면 비정규직 2만 명 되는 수준을 훨씬 넘어가고 있거든요."
김 : "그게 다 법과 제도 가지고 (기업이) 장난하는 거잖아요."
이 : "최근에 최병승씨(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파견 관련해서 대법원에서 이겼어요.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죠. 그런데도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없어요."
김 : "그게 답답한 거죠. 법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법에서 이기면 강력하게 제재하고 원상복귀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데, 법이 무슨 권고사항도 아니고 강제가 없는 거예요. 이런 경우에는 (기업을) 강제해야죠. 어려운 사람들이 때론 목숨을 잃어가며 오랫동안 기다리며 법에 기대는 게 뭐에요. 그 마음을 헤아려봐요. (법에서 승소하면) 해결해줘야 되는데, 뭐 회사에서 아무런 가타부타 이야기가 없잖아요. 이럴 때는 또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저도 프로그램 하면서 대법원에서 이기신 분도 인터뷰도 하고 했거든요. 너무 답답해요."
희 : "이럴 땐 어떡해야 되나요? 저도 답답한 거 같아요."
이 : "이럴 때는 엎어야죠."
김 : "이런 일이 반복되니 우리 사회가 너무 지나치게 극과 극, 극단적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나쁜 세력과 좋은 세력. 반대하면 무조건 '저 사람들은 나쁜 세력이야!' 뭐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이야기해버리니까, 할 말이 없지.
그래서 정치권에서도 이런 노동법이라든지 정책을 만드시는 분들은 더 고민이 많아야 될 것 같아요. 법이 자칫하면 기업에 이용당할 수 있고 이미 이용당하고 있으니까."
이 : "엄밀히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 이런 말을 임기 중에 한 적이 있거든요."
김 : "알아요. 그거가 잘못됐다는 거죠."
이 : "정치인이 재벌권력과 타협한 거죠. 재벌권력을 견제하는 게 (정치인의) 핵심적인 문젠 역할인데. 지난번에 쌍용차에서 열네 번째 돌아가신 분 (추모식) 했을 때 정동영 의원을 포함해서 국회의원들이 굉장히 많이 왔어요. 그런데 현대나 이런 곳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은 자본인 쌍용차도 (국회의원들을) '개무시'하는 거예요."
김 : "정치권이 이명박 대통령만 탓할 게 아니에요. 실제로 노무현 정부 때도 그렇고 김대중 정권 때도 그렇고, 모피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 게, 경제를 잡고 흔드는 사람들 생각 저변에 권력은 이미 그냥 넘어갔다고 생각하면서 거기(재벌)에 다 그냥 맞춰주는 거잖아요. 경제가 그 사람(재벌)들 아니면 죽는 게 아닌데. 그게 (정책이나 제도가) 다 1%로 가버리는데, 99%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언제쯤이나 모색을 할는지. 만약에 지금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도, 야당들이 했던 이야기를 뒤집을 수 있을까가 가장 걱정이라고. 야당이 권력을 잡는다고 그래서 과연 그게 우리(1% 재벌이 아닌 99% 국민)한테 넘어와라 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에요."
"'해보자, 잘못한 거 없다' 웃통 까고 대들면 무서워해"
희 : "지난해 희망버스에 이어 희망광장이 서울광장에서 열리며 노동자의 문제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요."
이 : "'희망'에 재미가 붙었어요."
김 :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희망텐트도 잘 하셨잖아요."
이 : "희망텐트는 지금도 있어요. 그런데 재미라는 것도 굉장히 양극화되는 것 같아요. 그니까 유명인들이 참여하는 재미, 김제동씨가 한번 해주면 나타나는 재미는 참 좋아하죠. 하지만 실제 우리(노동자)가 뭔가 만들어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 터부시해요. 극단으로 갈리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소셜테이너 분들의 노력들 정말 고맙지만…."
김 :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는데. 그냥 꾸준히 (노동자들이) 하시면 괜찮을 것 같아요. 쌍용차에 대해서 사람들이 생각을 놓고 있는 게 아니에요. 늘 생각하고 있죠. 어떻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고민하는 거지. 사실 (쌍용차 말고도 함께 할 일이) 너무 많아요. FTA 문제에서 시작해서 강정문제…."
이 : "사안이 사안을 덮는다고 하죠."
김 : "(현 정권이) 안하무인 식으로 밀어붙이니까."
이 : "그만큼 벌어지는 일들이 많고, 실은 그 하나하나가 정권을 내려오게 할 정도로 심각한 것들인데."
김 : "근데 내려앉지 못하죠. 왜냐면 그 사람들이 거기(권력)에 내려앉으면 완전 몰락인데요. 사람들이 이런 말하죠. '이제는 (정권) 말기 되고 그랬으면 기 좀 꺾이지 않아?' 절대로 (꺽이지 않아요), 제가 2년 전에 한 이야기인데, '(현 정권은) 더 그렇게 더 끝까지 갈 거다.' 당장 표가 나잖아요. 그니까 더 마음가짐을 독하게 가지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아니 왜 우리가 피해를 봐요. 우리 한 사람이 소중한 시민이고 인권이 있고 주권이 있는 사람인데.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건드리려면 건드려라. 삐뚤어질 테다. 죽여 봐.'"
희 : "그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상처를 마음에 지녔잖아요."
김 : "정말 긴 싸움이라고 생각하시고 견뎌야 해요. 쌍용자동차, 너무 오래된 상처고. MBC, KBS, YTN도 마찬가지고. 정말 기자들이나 방송쟁이들이 저럴 정도면, 이거는 정말…. 그 다음에 명진 스님, 문정현 신부님, 그런 종교인들 입에서 욕이 나올 정도면 뭐 말 다한 거죠. 종교인들이 한 중생이나 한 사람을 위해서 빌어주고 마음속으로 기도해주고 이런 분들인데.
오래된 사업장이니까 우리만 (해결하면 된다), 그거는 마음가짐에서 우선 잘못된 거고요. '우리는 딱지가 앉았으니까 해볼테면 해봐라. 이제는 (딱지가) 거의 다 떨어졌다.' 조금 딱지가 남아 있는데 요거 떨어지면 아무는 거잖아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번 해보자. 이런 끈기, 악바리 같은 기질. 이런 것이 있어야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약하니까 우리 도와줘. 이렇게 하면 더 터부라고 할까, 아까 (이창근씨가) 표현하신 것처럼 땅 밑으로 가라앉아. 그런데 '해보자. 잘못한 거 없다' 가슴 열고, 웃통 까고 대들면 무서워하죠."
이 : "지금 방송사를 비롯해 전체가 판이 깨지는 상황이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거냐. 좀 더 멀리보고 어떻게 잘할 거냐가 문젠데요."
김 : "멀지는 않았어요. 멀지 않은 일인데 '그동안 지치지 말아라!' 하는 게 저의 부탁이죠. MBC는 (파업하며) 벌써 PD들이 다 지쳐가는데, 쌍용차는 대단한 거예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도 마찬가지고요. 대단들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승리해서 맛보는 희열, 반드시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다 다른 데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 함께해요. 사람들에게 선한 기운들 있잖아요. '그것만 믿고서 가자.' 난 이렇게 생각해요."
희 : "마지막으로 희망광장에 함께해달라는 메시지 좀."
김 : "그러기에는 지금 (벌어진) 일들이 너무 많아가지고. 지금 아마 다 '부글부글'이에요. (광장으로) 한 명이 됐든 두 명이 오든 그게 희망이죠. 씨앗이 딱 떨어지는 거예요. '내가 몇 개의 씨앗으로 꽃을 피워줄 건지' 생각을 해주시기를. 많은 분들이 참여하면 참여할수록 더 희망의 불은 뜨겁게 지펴지니까.
제가 (희망광장에) 못 가면서 '많은 분들 오세요!' 이야기하기가 좀 부끄러워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권하기가) 그러네요.
저는 제가 있는 자리에서는 할 수 있는 것, 제가 가진 재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려고 노력해요. 재능기부라고 생각해요. 뭐 마음만큼 몸이 못 따라주고, 시간적인 여유도 그래서."
희 :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이 : "웃통 까고 대들겠습니다."
김 :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자고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희망 세상을 향한 99%의 희망광장’ 기획단의 도움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