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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집몰랑에서 본 거문도, 동도, 서도, 고도의 세 섬에 둘러싸인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
기와집몰랑에서 본 거문도, 동도, 서도, 고도의 세 섬에 둘러싸인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 ⓒ 김종길

제주도와 여수 중간에 있는 섬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 삼부도, 백도 군도를 말한다. 거문도의 본섬인 동도, 서도, 고도 3개의 섬은 바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호수 같은 바다를 만들었다. 예부터 이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여 천혜의 항구 구실을 하였다. 이 바다를 일러 '삼호(三湖)'라 부르는 게 새삼스럽지만은 않다. 면 소재지가 자리한 거문리에서 등대로 향했다. 거문도 등대는 팔미도 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운 등대로 남해안에서는 제일 오래된 등대로 알려져있다.

 거문도등대와 선바위
거문도등대와 선바위 ⓒ 김종길

민박집 주인이 아니었다면 여행자도 남들처럼 포장길을 따라 등대를 갔을 것이다. 지도를 꺼내 꼬치꼬치 캐묻는 여행자가 의아했는지, 아니면 여행자의 카메라를 보고 그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민박집 사내는 '기와집몰랑'으로 가라고 했다.

"거문도서는 그 길이 최고지요. 아마 사진 찍기에는 그만한 길이 없을 것이오. 거문도 등대가 워낙 경치가 좋지만 기와집몰랑에서 보는 게 최고지요. 별로 힘들지도 않아요. 부지런히 걸으면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할게요."

민박집 주인이 말한 대로 삼호교를 건너 서도로 갔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길을 잡았다. 날씨는 잔뜩 찌푸렸지만, 바다는 잔잔했다. 젠장, 등대의 멋진 노을도 쪽빛 바다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안노루섬은 갈매기 차지... 길가 유채꽃이 간간이 봄 알려

 안노루섬, 밖노루섬, 오리섬
안노루섬, 밖노루섬, 오리섬 ⓒ 김종길

바로 앞 안노루섬은 이미 갈매기 차지였다. 오리를 닮은 섬이 바다로 헤엄쳐 가는 동안 뒤의 밖노루섬은 바다로 가지 못하고 수평선에 걸려 제자리였다. 길가로 듬성듬성 핀 유채꽃이 노란 봄을 간간이 알렸을 뿐, 봄을 느끼기에는 아직 부족한 무언가가 있었다. 한말 의병장이었던 임병찬 순지비에서 여행자는 잠시 머물렀다.

고요하기만 하던 바다가 소리를 낸 건, 뭍으로 '쑥' 들어 온 유림해변에서였다. 섬 아낙이 머리에 톳을 이고, 해안을 느릿느릿 걸어왔다. 그녀 남편인 듯한 중년 사내가 마중을 나왔다. 기와집몰랑 가는 산길을 물으니,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길만 잘 보고 따라가면 된다고 짧게 말했다.

 기와집몰랑으로 가는 내내 동백숲이다
기와집몰랑으로 가는 내내 동백숲이다 ⓒ 김종길

새로 생긴 거제도 관광호텔 옆 다도해해상국립공원분소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길을 꺾으니 산길이 나왔다. 조금은 가파르지만, 허리를 굽힐 정도는 아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 여행자는 짙은 상록수림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온통 푸른 잎들에 비해 벌거벗은 줄기들, 그 사이로 붉게 꽃을 피운 동백이 간간이 보였다.

두어 번 쉬었을까. 오랜만에 오르는 산길에 지쳤을 무렵 푸른 숲은 사라지고, 마른 억새 군락이 나타났다. 몇 발 나아가자 아래는 천길 벼랑 끝이었다. 돌담을 두른 무덤이 보였고 이 일대가 '기와집몰랑'이라는 걸 알았다.

기암절벽 위 걷는 것은 아찔한 일... 먼바다 옆구리에 끼고 난 길

 기와집몰랑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이다.
기와집몰랑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이다. ⓒ 김종길

 보로봉의 돌탑
보로봉의 돌탑 ⓒ 김종길

'몰랑'은 산마루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기와집몰랑(기와지붕몰랑)'은 바다에서 보면 이능선이 기와지붕 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을 오를 때 완만한 숲의 풍경과는 달리 기와집몰랑의 바다 쪽은 직벽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길은 벼랑 위로 이어진다. 요즘 유행대로라면 '몰랑길'이라고 이름 붙이면 좋을 듯하다. 기암절벽 위를 걷는 것은 아찔한 일이기도 하지만 먼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는 맛은 비할 데 없이 상쾌하다.

 몰랑길에서 본 거문도등대. 1905년에 세운 등대로 남해안 최초의 등대이다.
몰랑길에서 본 거문도등대. 1905년에 세운 등대로 남해안 최초의 등대이다. ⓒ 김종길

 거문도등대
거문도등대 ⓒ 김종길

길을 사이에 두고 벼랑과 바다가 서로 옥신각신 다투는 사이, 거문도 등대가 벼랑을 비집고 바다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 나도 모르게 짧은소리를 냈다. 날씨가 흐려 멋진 풍광은 이미 마음속에 접어두었는데…. 구불구불 능선을 따라 바다 쪽으로 스멀스멀 밀고 나온 섬, 그 끝에 하얀 등대가 아스라이 서 있었다.

조물주가 만들어 낸 피조물과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이렇듯 잘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과연 거문도 최고 풍광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렌즈로 당겨 보아도, 눈으로 멀리 보아도 바다와 섬이 만들어 낸 황홀한 풍경에 여행자는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누군가 쌓은 돌탑이 꿋꿋하다. 벼랑 끝에서 숱한 바람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견고하게 서 있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신선이 내려와 매일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바위와 아차바위를 지나니 다시 길은 상록수림으로 이어졌다.

365 계단 길 넘어 거문도 등대로 향했다

 365계단길
365계단길 ⓒ 김종길

 기와집몰랑길
기와집몰랑길 ⓒ 김종길

어둡고 긴 숲길은 중간에 두어 번 잠시 바다를 보여준 게 전부, 다시 터널 같은 짙은 동백숲 길로 이어지더니 갑자기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365 계단 길이었다. 해발 157m 정도인 기와집몰랑과 170m인 보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도로와 바로 만나는 이 길의 경사는 의외로 심했다.

처음에 하나 둘 세기 시작했던 계단 수가 가물가물해질 즈음, 눈앞에 반듯한 시멘트 길이 나타났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1박 2일>에서 거문도의 차마고도(?)로 표현했던 잘록한 '목넘어'를 건너 거문도 등대로 향했다.

 수월봉과 거문도등대
수월봉과 거문도등대 ⓒ 김종길

여행 팁: 기와집몰랑(기와지붕몰랑)을 거쳐 거문도 등대로 가는 길은 거문도 최고 풍광을 자랑한다. 거문도 소재지가 있는 고도에서 삼호교를 건너 유림해변 방향으로 가면 거제도 관광호텔이 있다. 호텔 앞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거문도 분소 앞을 지나자마자 나오는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을 보면 산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 실린 글을 수정 게시하였습니다.

여행은 3월 9일 거문도를 시작으로 다녀왔습니다.



#기와집몰랑#기와지붕몰랑#거문도등대#몰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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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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