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근씨. 웬지 그는 이리 불러야 더 어울리는 사람 같다. 문성근 대표(국민의명령), 문성근 최고위원(민주통합당), 문성근 후보(부산 북강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라는 직함이 아직은 낯설다.
"음… 삶이 결국 사랑이고 연애구나 하는 생각은 민란 운동을 하면서 많이 했습니다. 저는 시민운동을 한다고 나갔는데 시민들은 저를 정치지도자로 봐버리는 거예요. 야권 통합을 이뤄내고 뭔가 바꿔줄 사람으로. 저분들이 왜 그럴까, 나한테 믿거나 기대하는 게 있어서 그렇구나 싶으니까 같이 마음이 아팠어요. 국민의명령 회원들이 저를 안아요. 남녀불문, 연배 불문. 그 다음부터는 남녀가 없어져요. 이제 저는 신부로 살아야 돼요(웃음). 모두를 인류애로 보는 거죠. 왜 못하겠습니까? 근데 신부들 정말 어떻게 살아요?"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크게 웃었다. 그래서일거다. '문성근씨'라는 호칭이 더 친근한 건. 그는 정치의 속성을 연애로 본다. 그것도 절절한 연애. 그는 배우다. 배역을 통해 늘 다른 사람의 생을 살았다. 정치도 그렇게 봐버린다. 연기자의 공감능력으로 그들의 아픔, 그들의 분노, 그들의 희망과 접신하려 한다. "그 인물의 느낌을 같이 느끼지 못하면 연기가 안되"듯이 정치도 "유권자, 서민들과 공감하지 못하면 뜨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애인이 후지게 해서 헤어졌는데 헤어진 여자 집 앞에 가서 밤새 소주 먹고 울고불고 해봐요, 욕먹죠. 나 달라졌어, 과거와 달라진 나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이는 거예요, 여자 마음을 다시 열 재간이 없는 거죠. 민주정부 10년 동안 너무 화가 나서 돌아앉았더니 이명박이 나타나 하는 것 보니까 기가 차, 그러다 노 대통령 돌아가시고 아차 싶은 게 있어서 반쯤은 돌아앉았는데 더 돌아앉도록 해야죠. 대중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면 우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시민과 함께 가는 열린 구조의 정당으로 새롭게 꾸리지 않는 한 국민은 신뢰를 안합니다."이글을 읽는 독자들은 무슨 얘기를 하려나, 싶으실 거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에서 만든 책 '사람도서관' 시리즈의 첫 권, <문성근을 읽다>를 소개하려고 한다. 문성근이 시작한 '새로운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네 삶은 한권의 책으로 묶기에 부족함이 없다. 파란 기와집에 사는 지도자이든, 멀리 외진 곳의 촌로이든 "나는 풀밭에 잡초처럼 대단한 존재는 아니지만 동시에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다"라는 법륜스님의 말처럼, 누구라도 그 인생은 책 한권 감이다. 그런 인물들이 책으로 모인 곳이 사람도서관(living book)이다. 이 도서관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평전'들이 진열된다. 그 첫 권은 문제적 인간, 문성근!
작은 문고판 크기의 120쪽 분량. 스마트폰이 대세인 시대, 감히 종이의 감각을 복원하려 한다. 다만 잡지보단 깊고 단행본에선 거품을 뺀, 그래서 출퇴근길 한 시간이면 술술술~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책 내용 역시 좀 색다른 시도였다. 10만인클럽 회원 30여 명이 모여 문성근을 '함께' 읽었다(10만인클럽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10만인들의 연대, 아울러 권력에 굴하지 않는 뉴스를 보기 위해 <오마이뉴스>의 경제적 자립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은 먼저 문성근씨에게 주제 강연을 듣고, 일문일답으로 집단 인터뷰를 이어갔다. 부족한 내용은 편집자의 추가 취재를 통해 보충되었다.
'남들은 직업 한 번 바꾸기도 어려운데 다섯 번이나 인생 전환을 했고 매번 자신을 던졌다. 왜, 어떻게 가능했는지… 문성근, 그가 알고 싶다.'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남들은 생을 한 번 사는데 저는 여러 번 바뀌어 얄밉다는 거지요(웃음). 배우는 정말 다양한 인생을 연기하는데 저는 실생활에서도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회사 다니다가 배우가 되었고 노무현 지지활동을 했고 백만민란 운동하다가 국회의원 출마하고 이렇게 다섯 번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일흔이 넘으면 그때는 다시 배우로 복귀해 여섯 번째 삶을 살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이 책은 '인간 문성근'의 내면 고백이다문성근의 집안은 근현대사의 압축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동학군으로 활동했고,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였으며, 아버지는 통일과 민주화 운동가다. 집안의 그런 공기를 마시고 그런 젖을 먹고 자란 문성근에게 역사와 정치는 신념이기에 앞서 원체험이다. 해서 배우를 할 때든 운동을 할 때든 '나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 서 있는가'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문성근의 불편한 DNA.
동시에 꽤 오래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저는 늘 콤플렉스에 시달렸어요.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이 깡그리 다 박사고 교수고 그랬으니까. 아버지 교수, 삼촌 교수, 작은고모 박사, 뭐 다 그런 식이었죠. 제가 보기엔 형, 누나도 머리가 굉장히 좋았고 또 막내인 저하고는 터울이 한참 져서 어디 가서 말 붙일 데가 없는 거죠. 다들 정신세계가 저보다 엄청 높은 분들이니까. 굉장히 주눅 들어 살았고 배우 하면서도 그랬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마흔 즈음이었죠."#. 이 책은 '남자 문성근'의 사랑 이야기다<닥치고 정치>에서 김어준은 문성근이 좋은 정치인의 자질을 갖춰다며 도덕적 자격, 역사적 자격, 현실적 역량 모두 된다고 평가하면서, 하나 더 꼽은 게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 이에 대한 문성근의 대답은?
"사랑은 변하죠, 식죠. 그건 당연하잖아요. 생물학적으로도 사랑이 유지되는 게 3, 4년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으니까. 그런데 저는 의무를 다하지 못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음… 저는 주례를 안 서요. 주례 해달라고 하면 나 결혼제도 반대한다고 말해. 원시 청동기 시대쯤에 결혼제도가 필요했는지 모르겠어요. 재산이든 종족번식 때문이든…. 그런데 이창동이가 딱 한 번 주례를 섰는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두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오늘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지켜야 합니다.' 에이 저 새끼, 말도 잘한다. 그 얘기를 내가 좀 일찍 들었더라면 지키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거죠."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일본 태생, 그리고 이혼,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두 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이 책은 '배우 문성근'에 관한 이야기다문성근은 지금도 배우 문성근 앞에 '천직'이라는 수식을 꼭 붙인다. 일흔이 넘으면 다시 배우로 복귀할 거라고 다짐하듯 말한다. 연기자가 되려고 20년 발버둥을 쳤고 이제 겨우 의무감에서 벗어나 연기가 행복해진 게 얼마 안되었는데 연기를 못하게 돼 괴롭다는 문성근. 대학졸업하고 취직한 건설회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공사 현장에 파견되었을 때도 그는 천상 배우였다.
"사우디 더위가 자동차 본네트에 달걀을 깨면 지져질 정도였어요. 엄청 뜨겁죠. 그런 차 안에서 배우의 정서랄까 감성 구조랄까 그런 걸 만끽하는 거죠. 혼자 자동차 안에서 땀은 비오듯 솟는데… 일부러 에어콘도 안 켜고요."잡놈, 싸이코패스, 수꼴 등 '악역'을 자처했던 이유 역시 그랬다.
"자기 한계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안 되는 일에 도전하려는 측면이 있고요. 또 상업 배우들이 이미지 관리 때문에 나쁜 역을 안 해요. 저는 그게 굉장히 불쾌하더라구요. 배우 알기를 뭘로 아느냔 말이지. 배우가 CF 모델이냐?"문성근은 자신을 세속 영화판에 적응시킨 게 아니라 자신의 모습과 개성을 그대로 지키면서 성공한 배우라는 점에서 영화판에서 희귀한 존재다.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몇 차례나 거머쥔 톱배우지만 이제껏 찍은 영화 중에서 자신과 닮은 배역은 근사치도 없었다는데… 그는 진짜 얼굴은?
#. 이 책은 '정치인 문성근'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문성근이 객사의 심정으로 뛰어든 정치판, 그가 열고자 하는 정치의 시대는 어떤 것일까?
"본래 예술가와 정치인의 운명은 하나였다. 공동체의 운명과 대중이 처해 있는 삶의 진상을 대의하고 대변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무너졌다. 대중은 더 이상 작가들의 재현이나 정치인들의 대변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직접 말하고 직접 항의했으며 직접 행동을 조직했다…. 어큐파이 파티, 정당을 점령하라! 당원만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들어와서 투표하고 공천해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시라는 것. 아직은 미완이다. 야권통합도, 온오프결합 정당도… 또 그 무수한 정당 혁신의 안들." 문성근의 정치,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정치와의 연애, 그 자체는 절절한데…, 정당 안에서 구현할 방법,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지…, 정치의 문법, 공학적 질서, 대결 방식의 소통이 때론 답답하고 힘겹다. 영화감독 이창동은 그런 자신의 '친구'에게 두 가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성근에게는 기존의 정치문법에 주눅 들지 않은 예술가적 상상력이 있다. 그리고 그에게는 성직자 같은 기질이 있다. 정치의 본질은 공익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자기 희생이다. 그게 성(聖)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정치, 우리가 희구하는 정치를 개념화할 도리는 없지만 무한히 자유로우면서도 본질은 끝까지 끌어안고 가는 것이지 않을까?"그러면서 "문성근이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건 뭐가 되건 욕망이나 이익으로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라는데 내 무엇을 걸어도 좋다"까지 말한다. 엉뚱하게도 문성근-이창동의 우정이 부럽다.
문성근이 내장한 '혁신'과 '시민'이라는 화두. 성패는 두고볼 문제지만, 적어도 지금 이 전환시대, 그에게 맡겨진 배역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록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책은 알라딘, 교보문고, 인터파크, 예스24 등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정가는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