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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 '4·11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야권연대 합의문 서명식'에서 각자 서명한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 '4·11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야권연대 합의문 서명식'에서 각자 서명한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 권우성

4·11총선을 향한 야권의 최대무기는 'MB정권 심판론'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참패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깊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확인시켰다. 마치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고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이 '노무현 정권 심판론'으로 치러진 것의 데자뷰라 할 만하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를 하라고 압박을 받은 것도, 전국적인 야권연대를 이뤄낸 것도 'MB정권 심판'이 그 기반이었다. 이는 물론 이명박 정부 집권 4년간의 민주주의 후퇴와 민생악화가 그 원인이다.

반대로 새누리당으로서는 이를 피하는 것이 이번 총선의 관건이다. 애초 생각했던 등판시점이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박희태 돈봉투'사건으로 빨라지긴 했지만 '박근혜 간판'으로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데 당의 총의가 모아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민주통합당의 자충수... '정권심판론' 흔들

지난해 12월 27일 대표적인 반재벌론자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참여한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하고, 올해 1월 15일 민주통합당에서 한명숙 대표가 등장하면서 '정권심판론' 구도가 흔들리는 양상이 나타났다.

박 위원장이 세종시 수정문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격하게 대립했던데다, 2008년 총선 공천때 '이명박계의 박근혜계 학살'의 잔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민주당이 민주통합당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전당대회' 등 민주당의 자충수도 큰 기여(?)를 했다.

새누리당은 '보수표현 삭제' 논란을 거치면서 강령을 전면개정해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고 "새롭게 누리겠다"는 조롱 속에 당명도 바꿨다. 실 내용과 의지여부와는 별개로 이명박 정권과는 다르게 하려는 것 같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공천정국으로 들어가면서 민주당은 크게 흔들렸다. 시민과 당원 80만 명의 직접 선거로 당선된 한명숙 대표였지만 발 빠르게 치고 나가지 못했다. 정치자금 문제로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임종석 전 의원을 총선실무를 맡아야 할 사무총장에 임명한 것은 두고두고 짐이 됐다.

공천탈락한 구 민주계의 탈당행렬, 불법선거인단 모집 혐의를 받던 전직 동장이 자살한 광주 동구 사건, 소극적인 야권연대 추진 논란은 오랜만에 새누리당을 앞질렀던 당 지지도를 다시 역전시켰다.

박근혜 '야당심판론' 꺼내고, 이명박 거들고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종인 비대위원.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종인 비대위원. ⓒ 남소연

이런 가운데 한명숙 대표가 "정권교체 이후에 한미FTA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오자, 선거구도 전환을 노리던 새누리당은 이를 흘려보내지 않았다. MB심판론이 아니라 '노무현 대 박근혜'를 부각시키고 싶던 차에 괜찮은 소재가 등장한 것이다. 여권은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묶어 참여정부 핵심인사들이 했던 찬성발언을 상기시키면서 '말 바꾸기' 공세를 취했다.

박 위원장은 2월 20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폐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분들인들이 다시 모여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정책에 대해 계속 말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심판의 대상"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야당심판론'이라는 보기 드문 주장을 꺼내든 것이다.

이틀 뒤인 22일 이명박 대통령도 가세했다. 한 대표와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했던 발언 전문과 시점까지 소개하면서 "왜 말을 바꿨느냐"고 공격했다.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일일이 당 인사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비판한 것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박 위원장이 선거전면에서 '야당심판론' 꺼내들자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총선 구도, MB 심판론서 '노무현 vs 박근혜'로 이동>(<중앙일보>), <'그때 노무현' 對 '지금 박근혜' 대결과 나라 앞날>(<조선일보>) 등의 프레임이 퍼져나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에 대한 검찰수사 시도도 일단 불발되기는 했지만 이런 구도를 만드는 데는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김종인 "어쩔 수 없이 정권심판론에 끌려갈 것"

하지만 'MB심판론' 구도를 피해가려는 새누리당에게 큰 장애물이 등장했다.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청와대가 민간인사찰 증거인멸사건의 몸통이라고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현재까지 청와대 인사들이 자신의 입을 막기 위해 8500만 원을 줬다고 주장하고 나섰으나 청와대 측은 해명에 소극적이다.

새누리당 전체가 공천에 몰두해 있는 상황에서, 박 위원장 쪽은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박 위원장 쪽의 한 관계자는 "큰일이다. 그냥 넘어갈 사건이 아닌 것 같다"며 "이래서야 어떻게 MB색깔을 빼느냐"고 탄식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명박-박근혜 협력'이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새누리당의 공천을 보면 진수희 의원과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당과 청와대의 친이계는 대거 배제됐지만, '한미FTA 전도사'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김회선 전 국가정보원2차장, 4대강 사업 책임자 김희국 전 국토해양부 2차관 등 정치색깔이 진하지 않은 현 정부 출신 관료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는 인물난도 있겠지만, 박 위원장 쪽이 이 대통령의 색깔을 빼는 한편 갈등도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달곤 정무수석의 문자메시지 논란에서 나타난 것처럼, 양쪽의 협력은 박 위원장에게 큰 짐이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공천 자체의 한계도 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강령의 전면에 내세웠지만 이를 실현할 인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김종인 비대위원이 "가급적 정권심판론에 끌려가지 않기를 바랐는데 공천된 사람의 면면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정권심판론에 끌려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박근혜#이명박#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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