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이 주축인 새천년민주당에서 영남사람이 대권주자가 된다는 소리가 웃긴 소리 아닙니까?"
16대 총선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2000년 4월 2일, 부산 북강서을 후보자 합동연설회가 열린 대상초등학교. 허태열 한나라당 후보는 당시 상대편 후보를 그렇게 공격했다. '지역 통합'을 외치며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를 떠나 부산으로 향했던 어느 정치인의 짝사랑은 단순히 '웃긴 소리'로 치부됐다.
선거에서 패한 그는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나요"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그에겐 '바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 바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3년 뒤, 많은 이들이 비웃었던 일은 현실이 됐고 그는 대통령까지 된다. 모두 눈치 챘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다. 그는 선거에서 4번의 패배를 맛보았는데, 마지막으로 패배한 곳이 부산 북강서을이다.
북강서을은 4·11 총선에서 여러모로 주목받는 지역구다. 야권이 탈환하겠다는 이른바 '낙동강 벨트' 핵심지역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또 선거철마다 지역에서 쟁점이 되는 동남권 신공항의 부산지역 유치 희망지인 가덕도도 북강서을에 속한다.
이번 총선에선 이 북강서을을 두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의리를 지키겠다'는 문성근 민주통합당 예비후보와 지역 토박이론을 내세우는 김도읍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맞붙는다.
못다 이룬 노무현의 꿈, 북강서을에서 부활할까그동안 문성근 후보는 여러 차례 노 전 대통령과의 의리를 언급하며 그가 이루고자했던 지역주의 극복을 북강서을에서 이루겠노라고 밝혀왔다. 노 전 대통령이 못한 것을 어떻게 문성근은 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이에 대해 문 후보 선거사무소 최상영 상황실장은 "객관적 조건이 이전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형만한 아우 없다고 하지만 형만한 아우를 보여주겠다"며 "전철을 밟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대해 김도읍 후보는 "정치적으로 지역주의 타파는 쟁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야를 떠나서 이전 국회의원들 모두 낙하산이었다"며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북강서을을 위한 공약은?
북강서을은 부산시 전체 면적의 4분 1에 달하는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동시에 도시와 농촌이 결합된 도농복합지역의 특성도 갖추고 있다. 북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자리잡은 새도시 지역이다. 반면 강서구는 그린벨트와 김해공항의 고도제한에 걸려 개발이 더딘 농촌 지역의 모습을 보인다.
후보들은 두 지역의 이런 특성을 고려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김도읍 후보는 교통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또 젊은층이 많은 북구를 교육도시로 육성하고 그린벨트에 묶인 강서구에는 인구 유입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성근 후보측은 강서구를 신항·신공항·철도를 연계한 물류 중심지로 발전시키고, 북구를 문화의 메카로 키우는 동시에 복지를 확충시켜야한다는 입장이다.
지역 토박이 김도읍 vs. 인지도 높은 문성근
19일 강서구 강동동에서 주민들과 나무를 심고 있던 김도읍 후보를 만났다. 이 지역에서 성장한 김 후보는 주민들과 스스럼이 없어 보였다.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이 김 후보에게 먼저 찾아와 악수를 청하고 힘내라며 격려해줄 정도였다. 김 후보는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일꾼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김 후보에 비해 문성근 후보는 상대적으로 지역적 기반이 약한 편이다. 이에 대해 문 후보 측은 "힘 있는 정치인이 지역 발전을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지역의 염원이 있다"며 "집권당이 될 수 있는 만큼 유력 정치인에 거는 기대가 강하다"고 말했다. 지역적 기반에서는 밀리는 문 후보지만 대중적 인지도에서는 앞선다는 것이 양측 캠프의 공통된 평가다.
실제로 만나 본 10여 명의 시민 중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75세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번쯤 문 후보의 이름을 들어봤다고 답했다.
화명동 롯데마트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 이아무개씨와 윤아무개씨는 "문성근씨가 더 익숙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젊은층들의 경우엔 거의 대부분이 문 후보를 알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높은 인지도는 지지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학생 강아무개씨는 "맑고 깨끗한 이미지가 좋아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 연고가 없다는 점은 문 후보의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정역 인근에서 만난 한 40대 여성은 "처음에 문성근씨가 나온다고 해서 신기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과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이 나와 뜬금없었다"고 말했다. 문 후보의 선거사무소 근처에서 만난 또 다른 40대 여성 이아무개씨 역시 "문성근은 알지만 우리 지역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심심치 않게 들리는 색깔론도 문 후보에게는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이에 대해 문 후보 측은 "정면돌파하겠다"며 "남북 관계를 풀어나갈 적임자임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검사 출신인 김도읍 후보는 관료적이며 딱딱한 이미지가 걸림돌이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18년 동안 법조계에 있었던 경험이 입법기관 구성원으로서는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재까지의 선거 판세는 박빙이다. 대중적 인지도에서 강세를 보였던 문성근 후보가 초반 우세를 가져갔지만 최근에는 김도읍 후보가 무섭게 추격해오는 양상이다. 19일 발표된 중앙일보-엠브레인 여론조사(유권자 500명 대상 신뢰수준 94% 오차범위±4.0%p)에서는 김 후보가 35.5%로 문 후보(29.2%)를 6.3%p차로 앞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쏟아진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했기에 어느 한쪽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향후 북강서을 선거는 사하-사상-김해로 이어지는 낙동강 벨트의 바람과 젊은층이 많은 북구의 표심이 누구에게로 향하는지에 따라 결과를 달리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정민규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