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대표님은 참 원칙을 가지고 열심히 해보시려고 하는데, 저희 당에 그 '보이지 않는 손'이 있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대표님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옆에서…. 그 '보이지 않는 손'은 당내 인사도 있을 수 있고, 당외 인사도 있을 수 있습니다."박영선 민주통합당 전 최고위원이 '한명숙의 보이지 않는 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이 한명숙 대표를 아바타로 내세워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도대체, 이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박 전 최고위원은 21일 오전 MBC 라디오에 출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명숙 대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폭로하면서, 최고위원직과 'MB정권 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특별위원장직'까지 모두 사퇴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신이 사퇴하게 된 구체적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핵심은 공천문제였다고 말합니다. 박 전 최고위원은 "내부에서 봤을 때 이번 공천과정이 공명정대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자신이 재벌개혁과 검찰개혁을 추진해왔는데 유종일 KDI 교수와 검찰 출신 유재만 변호사, 이재화 변호사 등이 공천에서 제외됐다고 말했습니다.
검찰개혁 문제와 관련해서는, "당내 공심위원들이 검찰개혁은 시민의 힘과 시민단체의 성원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검사 출신이 과연 필요하냐 라는 시각을 갖고 있어 관철이 안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박 전 최고위원은 "검찰에는 정치검찰이 있지만 그래도 양심적인 검사들이 있다, 이 양심적인 검사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 중에 후배들이 따르는 검사 한 분 정도는 민주당이 모셔서 조화로운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486과 이대라인은 이미 드러난 손"... 그럼 친노?'보이지 않는 손'은 누굴 지목한 것이냐에 대한 질문에는 "486세대와 이대 동창회는 그냥 겉으로 드러난 어떤 결과물"이라며 "한명숙 대표가 그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굉장히 괴로워하셨고, 이번 공천과정에서 최고위원들이 많은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박 전 최고위원은 "제가 당원이고 당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이 정도의 경고에서 멈추고 스스로 '보이지 않는 손들'이 이제는 화합과 대한민국의 조화로운 발전, 번영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모호한 표현이지만 그가 지목한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는 분명하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박 전 최고위원의 '보이지 않는 손' 주장은 이날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증폭됐습니다.
어떤 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 했으니, 여기서 말하는 '손'은 '손학규 전 대표'를 말하는 것이라는 농담을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486과 이대라인이 나왔으니, 남은 것은 '친노'뿐이다, 결국 문재인 상임고문을 지적한 말이다,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이는 486과 이대라인, 친노는 이미 '보이는 손' 아니냐고 말을 거들었습니다. 혹자는 한 대표에 대해 섭정정치를 해온 이해찬 상임고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 전 최고위원이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이 모두를 포괄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도 돌았습니다. 당내 인사도 있을 수 있고, 당외 인사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볼 때, 공천심사위원 같은 '외부세력'을 지칭한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돕니다.
도대체 그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이고 한명숙 대표를 어떻게 조종하고 있다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4·11 총선을 불과 20일 앞둔 이 엄중한 시국에, 중책을 맡고 있는 야당의 핵심 정치인이 모든 직을 내려놓겠다고 작정한 그 궁극적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유재만 변호사는 검찰개혁의 적임자인가핵심은 유재만 변호사의 공천문제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박 전 최고위원은 이번 비례대표 공천심사 과정에서 유재만 변호사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공천을 적극 추천했습니다. 박 전 최고위원은 유 변호사가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는 박 전 최고위원의 생각과 달리 유재만 변호사가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판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주통합당이 그토록 강조했던 '정체성'에 맞는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공심위의 결론이었던 것이지요.
검찰개혁 분야로 두세 명을 추천할 수 있었다면 모를까 그것이 아닌 마당에 딱 한 명을 고르라면 그건 유 변호사일 수 없다는 것이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유재만 변호사가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법조계에서 수사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사를 잘하는 것과 검찰조직을 뜯어고쳐 정치검찰 문제를 일소하고 조직의 혁신을 이뤄내는 일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판단한 것입니다.
공심위 내부에서는 과연 유 변호사가 검찰조직과 인사문제에 칼을 들이댈 수 있을까, 정치검찰의 문제를 본격화 하고, 폐부를 찔러 정치검찰의 썩은 살을 도려낼 수 있을까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했지만, 결과는 회의적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과거에 그가 민주진보를 겨냥했던 공안검사였다는 점과 재산문제 등에서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있어 보인다는 문제제기와는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공심위의 이 같은 입장이 알려지자, 박영선 전 최고위원은 직접 공심위원들을 만나 설득하기로 작정했던 모양입니다. 공심위 회의장까지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유재만 변호사의 공천을 읍소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MB정권 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서 자신과 함께 손을 잡고 일할 사람이니 꼭 공천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던 것이지요. 실제 공심위 내부에서는 그의 이런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공감한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정치활동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데 그것을 아니라고 할 공심위원들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유재만 변호사 문제를 두고 재논의를 했고, 심지어 표결까지 갔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결론은 뒤집힐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박 전 최고위원의 사정은 알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의'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이지요. 그동안의 삶에서 '검찰개혁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실천을 했는가도 중요하게 본 것 같습니다.
이처럼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가 유재만 문제에서 뜻을 굽히지 않고 물러서지 않으니, 최고위원들이 나서서 반발했던 모양입니다. "최고위원들이 이 정도의 전략공천도 못하느냐"라는 것이 핵심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전날 최고위와 공심위 간에 막판 설전이 벌어지고, 한명숙 대표와 안병욱 교수 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오갔지만 결론은 똑같았다고 합니다.
치열한 공천전쟁 속 한명숙 대표의 선택은?이 같은 '공천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사이, 한명숙 대표는 정중동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고위원들의 입장을 전달하기는 했지만 안 위원장의 권한을 침범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한 대표 또한 자기 몫으로 누구 하나 추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 대표가 누구를 추천하는 순간 최고위원들이 너도나도 챙기려 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공심위의 한 관계자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공심위가 이렇게 자율적으로 해도 되는 것인가 자문할 정도로 한명숙 대표의 침범은 없었다"며 "단 한 번도 누구를 어떻게 하라는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박 전 최고위원은 이 점이 답답했을 수 있습니다.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외부세력'에 불과한 '안병욱 공심위'의 결정을 뒤집지 못하는 데 대한 무기력감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이기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대표와 최고위원들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 조직에 상당히 실망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조직에서 도무지 '최고위원직 못해먹겠다'고 판단하고, 관두자는 결론을 내렸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판단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입장이 충돌할 때 그만두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통합당의 핵심 관계자는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2012년 총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민주통합당에게 중요한 선거"라며 "국민들 앞에 정권교체라는 선물을 안겨야 하는 숙명의 과제를 갖고 있는데도 이렇게 무책임하게 물러서는 행동을 해서야 되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박영선 최고위원의 선택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며 "민간인 사찰 등 MB정권의 심장부를 강타할 수 있는 주요 정치적 계기가 생겼으면 우선 그 일부터 추진하는 게 정치의 순리"라고 말이지요.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박 전 최고위원 같은 분들이 일을 할 때이지 일을 내려놓을 때가 아니라는 게 상식 아니냐"며 "이렇게 자신이 추천한 인물들이 낙마했다고 해서 전부 일을 놓으면 누가 일을 할 것인지 정말 답답한 노릇"이라고 성토했습니다.
민주통합당 내부는 갑자기 터진 박 전 최고위원의 사퇴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동분서주하는 눈치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이 추천한 인사들이 공천심사 과정에서 미끄러졌다고 해서 선출직 최고위원 자리와 MB정권 비리 특위위원장 같은 중대 업무를 내려놓는 것이 과연 정치적으로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
박영선 전 최고위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