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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 황룡장터. 새봄을 맞아 나무와 꽃을 파는 코너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장성 황룡장터. 새봄을 맞아 나무와 꽃을 파는 코너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 이돈삼

봄 햇살이 따사롭다. 봄볕에 새 주인을 기다리는 닭과 오리가 날개를 축 늘어뜨렸다. 강아지도 움직임이 없다. 난장을 펼친 할머니도 자꾸만 내려앉는 눈꺼풀을 감당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할머니 앞에 놓인 달래, 냉이, 쑥, 미나리 등이 내뿜는 향긋한 내음은 실바람을 타고 장터를 뒤덮는다. 망치로 톱날을 세우던 할아버지도 움츠렸던 허리를 펴고 봄의 향기를 가슴 깊숙이 빨아들인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마을버스가 도착한 모양이다. 장터는 금세 물건값을 흥정하는 소리와 여기저기 안부를 묻느라 북새통을 이룬다. 이때다 싶어 얼굴 알리려는 국회의원 후보자들까지 합세해 장터는 더욱 부산해진다.

지난 19일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월평리 제2황룡교 주변에 자리한 황룡장(4·9일)의 아침나절 풍경이다. 장성 황룡은 '홍길동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는 고장이다. 황룡에는 홍길동 테마파크가 있고, '청백리'의 표상이 된 아곡 박수량 선생의 백비가 있다. '치유의 숲'으로 알려진 축령산 자연휴양림도 황룡에 걸쳐있다.

 홍길동 테마파크. 장성 황룡은 홍길동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홍길동 테마파크. 장성 황룡은 홍길동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 이돈삼

 박수량 백비. '청백리'의 표상이다. 황룡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박수량 백비. '청백리'의 표상이다. 황룡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 이돈삼

황룡장은 예부터 호남의 대표 장터로 이름을 날렸다. 전국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장이었다. 광주와 고창, 담양과 함평을 잇는 지리적인 이점 때문이었다. 비옥한 옥토에서 나오는 곡물도 한몫했다. 장성은 물론 광주, 담양, 영광, 함평, 정읍, 고창 등 6개 시·군의 상인과 주민이 이용했다. 장날이면 사람에 치여 다니질 못할 정도였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건 2004년.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의 하나로 새 단장했다. 장옥만 97동에 2평 남짓한 점포가 400여개 달한다.

"알싸하고 매콤한 홍어 한 점 먹어보고 가세요"

 김재님씨. 황룡장에서 홍어무침을 버무리고 있다.
김재님씨. 황룡장에서 홍어무침을 버무리고 있다. ⓒ 이돈삼

어디선가 구릿한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홍어다. 곳곳에 걸린 간판마다 '홍어'란 두 글자가 선명하다. 얼추 10여 곳은 돼 보인다. '홍어의 고장' 영산포시장에 버금간다. '홍어회무침'이 눈길을 끈다. 삭힌 홍어에 미나리, 무, 고추장 등 갖은 양념을 넣고 버무렸다. 발그레하니 때깔이 곱다. 홍어 특유의 향이 침샘을 자극한다. 홍어회무침을 버무리던 김재님(63·장성홍어수산)씨가 한 입 권한다. 알싸하면서 새콤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어물전에는 홍어 외에도 가오리, 굴비, 해삼, 동태, 고등어, 산낙지 등등 바닷가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해산물이 즐비하다. 바다라고는 찾을 수 없는 산골이지만 어물전의 풍성함은 바닷가 장터 못지 않다.

50년째 장구 만드는 할아버지, "중국산이란 말만 하지 마세요"

 강사원 할아버지. 50년째 장구와 북을 만들고 있는 명인이다.
강사원 할아버지. 50년째 장구와 북을 만들고 있는 명인이다. ⓒ 이돈삼

허름한 장옥 한쪽에 장구가 쌓였다. 시골 장터에 장구 장사는 흔치 않는 풍경이다. 장구 사이로 허공만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온다. 어눌한 말투에 움직임까지 불편해 보인다. 강사원(86) 할아버지다. 장이 서는 날이면 손수 만든 장구와 북을 가지고 나와 파는 분이다. 사흘 밤낮을 오동나무와 씨름해 만든 것들이다. 벌써 50년째다. 강 할아버지는 열아홉 살 때부터 장구 만들기를 했단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잠시 남의 논을 빌려 농사지었던 것이 외도의 전부였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장구를 찾는 사람이 없다. 온종일 장터에 앉아 있어도 구경 오는 사람조차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어쩌다 하나씩 알음으로 주문이 들어오는 것이 전부다. 오동나무 구하기도 힘들고, 찾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장구 만들기를 내려놓지 못하는 건 전통의 맥을 이어가려는 욕심 때문이다. 물론 잘 나가던 때도 있었다.

"5·16전후로는 잘 팔렸제. 그때는 하루에 서너 개씩 만들었어.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거든. 근디 지금은 중국에서 맹근 게 판을 쳐. 때깔도 좋은데다 가격에서 2배 차이가 나는데 누가 사겄어? 사지 않아도 좋은데,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오해만 안 했으면 좋겄어. 그게 젤로 서운해."

강 할아버지는 1980년대 중반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서 북과 장구를 출품, 특선과 입선을 해 '명장' 칭호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돼 있다.

돼지 창자로 만든 암뽕순대 등 먹거리 다양한 장터

 황룡장 풍경. 시골장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닭과 오리전이다.
황룡장 풍경. 시골장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닭과 오리전이다. ⓒ 이돈삼

 암뽕순대. 황룡장의 대표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다.
암뽕순대. 황룡장의 대표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해가 중천에 걸렸다. 먹자골목이 북적댄다. 오일장 구경은 누가 뭐래도 먹을거리다. 황룡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용례(78) 할머니 가게에서 맛보는 암뽕순대. 돼지 창자에 파, 마늘, 콩나물, 선지, 삼겹살 등 많은 양념이 들어간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빚는 '쌍네죽집' 팥죽과 국밥도 빼놓지 말아야 할 먹을거리다. 사람들로 넘쳐나던 황룡장이 예전 같지 않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 몇 해 사이 대형할인점이 들어서면서 여느 오일장처럼 침체의 늪에 빠졌다. 상인들은 "오일장이 열리는 날만이라도 대형마트의 영업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일.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상인회(회장 김광엽)가 나섰다. 4월부터 11월까지 매달 1회 황룡시장 거리공연을 열기로 했다. 시장 곳곳에서 신명나는 품바공연을 비롯 노래자랑, 깜짝 경매 등의 이벤트를 진행한다.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황룡장 풍경. 황룡장터의 옛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광엽 상인회장(왼쪽)과 전통약재를 팔고 있는 김종문 할아버지 모습이다.
황룡장 풍경. 황룡장터의 옛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광엽 상인회장(왼쪽)과 전통약재를 팔고 있는 김종문 할아버지 모습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황룡장#재래시장#장성#강사원#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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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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