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4일 오후 6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살인해고를 멈추라"며 죽어간 21명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24일 오후 6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살인해고를 멈추라"며 죽어간 21명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 김지수

관련사진보기


"정리해고, 퍽이요!" "비정규직, 퍽이요!" "MB정부, 퍽이요!"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은 느닷없이 벌어진 떡판으로 왁자지껄했다. 조합원 조끼를 입은 한 사람이 "경찰청장 조현오, 이젠 노동자 그만 좀 잡아가라!"하고 떡을 내리치자 주변에서 웃음과 함께 함성이 일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꿈꾸는 노동자들의 '떡메치기 퍼포먼스'는 매서운 3월 마지막 꽃샘추위에 떠는 참여자들에게 따뜻한 인절미 한 접시가 되어 돌아갔다.

이날 쌍용차 및 코오롱, 콜텍, 세종호텔, 유성기업 및 재능지부 등 비정규직 투쟁 노동자들은 서울 중구 광화문 동화 면세점 앞에 모여 '전국 해고노동자의 날' 행사를 열었다. 오전 9시부터 광화문 앞에 모인 참여자들은 해고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꽃탑을 쌓고 스님들과 함께 탑돌이를 하는 등 다양한 선전전과 퍼포먼스를 펼쳤다.

'희망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떡메치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희망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떡메치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 김지수

관련사진보기


노동자 정신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학살'... "정부는 이미 사이코패스"

날씨마저도 짓궂었다. 3월인데도 칼같은 바람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마음을 시리게끔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이런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후 6시가 되자, 본격적으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문화제 <눈물을 멈춰>'가 진행됐다. 문화제에서는 해고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퍼포먼스와 율동 공연이 펼쳐졌으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송경동 시인,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정혜신 박사 등 다양한 인사들이 발언에 참여했다.

지난해 '희망버스'를 시작으로 올해 1월 '희망뚜벅이'와 2월 평택에서 '희망텐트'가 열렸지만 해고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지난 2월 쌍용차에서는 결국 21번째 해고노동자의 죽음이 닥쳤고, 콜텍 노동자들은 콜트와 달리 부당해고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1890일이라는 긴 싸움을 맞게 됐다. 재능과 타 사업장들 또한 여전히 끝없는 장기투쟁에 돌입 중이다.

그 때문인지 발언대에 오른 정혜신 박사는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한 쌍용차 노동자가 21번째 죽음때 어떻게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괴로움을 호소해 왔다, 최근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에 힘들어하는 분들을 많이 본다"며 "사람이 일정 수준 고통을 넘어서면 정서적으로 마비되는데 그러나 그런 자신들을 제발 책망하지 마셨으면 좋겠다, 사람을 이렇게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의지를 부숴버리는 '범죄'를 자행하는 MB정부와 조현오야말로 정말 사이코패스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경찰청은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진압을 '조기 해결 사례'라며 '경찰 수사 베스트 사건 10' 가운데 5위로 선정했다. 이에 대해 쌍용차 노조 김정우 지부장은 "무려 21명의 쌍용차 노동자들이 국가폭력에 의해 학살되었는데도 경찰청은 쌍용차 폭력 진압을 매우 우수한 것이라 선정했다"며 "이처럼 현재 노동자 인권은 바닥이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쌍용차 노조원들은 내일 이후, 이 시간 이후에 또 누군가 죽을까하는 공포와 두려움을 늘 가슴 속에 담고 있다"며 "그러나 이 답답한 심정을 안고 해고가 살인임을 보여준 이 정부를 향해 끝없이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짜디짠 눈물바다뿐인 노동자 세상, 그래도 '눈물을 멈추라'

오후 6시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문화제'에서 여러 인사들이 발언하고 있다(왼쪽부터 백기완 소장, 정혜신 박사, 송경동 시인).
 오후 6시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문화제'에서 여러 인사들이 발언하고 있다(왼쪽부터 백기완 소장, 정혜신 박사, 송경동 시인).
ⓒ 김지수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다리 수술을 한 송경동 시인은 불편한 몸에도 목발을 짚고 연단에 올랐다. 그는 "꼭 작년 이맘 때였던 3월 25일 쌍용차 노동자 14번째 희생자의 추모제 때 낭송했던 시가 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낭송하게 됐다"며 운을 떼었다.

"노동자들만 눈물바다구나.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하며 눈물바다, 평생을 생존권에 쫓겨가며 눈물바다, 평생을 길거리에서 싸워가며 눈물바다, 급기야 저절로 목숨까지 반납하며 눈물바다. 짜디짠 눈물바다뿐인 노동자 세상이 참 좋겠구나."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쳐서 그럴까. 조곤조곤 말하던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끓어올라 단단해졌다. 시가 적힌 종이를 잡던 그의 손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사람들로 북적대 산만하던 현장은 가라앉았고,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던 이들도 있었다.

"이 서러운 세상을 어떻게 사나. 더 이상 물량과 생산성에 쫓기지 않고, 더 이상 실업과 생활고에 쫓기지 않고, '먼저 가서 자네는 좋겠네'라고 이야기 해야하나. 차라리 '먼저 가서 자네는 행복하겠네'라고 말해야 하나."

다음으로 퍼포먼스에 앞서서 올라온 쌍용차 노조 고동민씨가 그간 정리해고에 맞서다 죽어간 쌍용차 동지의 이름과 사망사유를 하나둘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죽은 21번째 동지의 이름까지 모두 읊고 나자 그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가 "그러나 과연 이 죽음이 쌍용차 노동자만의 죽음인가"를 되물으며 마이크를 내리자 연이어 코오롱, 유성기업, 재능지부등 각 해고 노동자들이 함께 일어나 본격적인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희망을 향해 우리가 길을 만들어가자"며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함께 웃으며 노래했다. '눈물을 멈추라'는 그들의 구호처럼 해고노동자들이 울음을 삼키고 열심히 춤추자 이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도 다함께 노래하며 서러운 마음을 녹녹히 채워갔다.

'희망광장'을 만들자며 이곳에 모인 그들. 결국 서로를 위하며 아픔을 이겨내던 그들의 눈물과 웃음이 곧 '희망'이었다. 매서운 추위와 정부의 억압 그리고 무자비한 자본의 횡포도 그들의 '희망'을 앗아갈 수 없없다. 

'희망광장'을 만들자며 이곳에 모인 그들. 결국 서로를 위하며 아픔을 이겨내던 그들의 눈물과 웃음이 곧 '희망'이었다. 유성기업, 세종호텔, 재능, 현대차 등의 노동자들이 모두 모여 해고에 맞서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희망광장'을 만들자며 이곳에 모인 그들. 결국 서로를 위하며 아픔을 이겨내던 그들의 눈물과 웃음이 곧 '희망'이었다. 유성기업, 세종호텔, 재능, 현대차 등의 노동자들이 모두 모여 해고에 맞서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 김지수

관련사진보기



현재 쌍용차 노조는 지난 21일 쌍용자동차의 새 인수 기업 '마힌드라'의 본국인 인도 대사관을 방문하여 수상과의 공식적인 면담을 요청했으며, 이에 인도대사관에서는 "문서 검토 후 본국과 협의하여 답을 주겠다"고만 밝힌 상태다.

또한 이날 희망광장 참여자들은 문화제에 이어 25일 'MB퇴진 2012 1차 민중대회'에서 한미FTA 및 핵안보정상회의와 제주해군기지 반대 등을 함께 외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김지수, 김혜승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희망광장, #쌍용차, #비정규직, #정리해고, #눈물을 멈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