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4년 2월 27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경비직원이 당시 참여연대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의 발언을 막기위해 넘어 뜨리고 있다.
2004년 2월 27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경비직원이 당시 참여연대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의 발언을 막기위해 넘어 뜨리고 있다. ⓒ 권우성

그는 참 솔직하다. 거침도 없다. 논리적이다. 그러면서 흥분도 곧잘 한다.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과) 이야기다. 그는 경제학자다. 그를 안 지도 10여 년이 다 돼 간다. 기사에 많이 인용된 취재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를 마주한 곳은 연구실이 아니었다. 참여연대 사무실 아니면 기자회견이나 간담회 자리였다. 그 스스로도 "지난 10년간 연구실 안의 학자로만 살지 않았다"고 했다.

김 교수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난 2004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장이다. 2월 27일 막바지 겨울나기가 한창이던 때였다. 전날 기자에게 "내일 재미있을 거야"라고 귀띔해주던 그였다. 실제로 그날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이었던 그는 삼성전자 일반 소액주주로 참여했다. 이른바 한나라당 불법 정치자금 제공에 대해 이건희 회장 등 경영진에 책임을 물을 예정이었다.

김 교수와 송호창 변호사 등 5명이 각자 역할 분담도 했다. 현장에서 펼칠 현수막도 준비했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김 교수 등은 손을 들어 발언권을 달라고 했다. 주총 사회를 맡았던 당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허락하지 않았다. 양쪽 간 시비가 오갔다. 윤 부회장은 "당신 몇 주나 갖고 있어?", "기자들 와 있으니까 한번 떠들라고 말이야", "저 양반 정신 나간 것 아냐..." 등의 막말도 이어졌다.

결국, 그들은 건장한 회사 보안요원들로부터 끌려나왔다. 이 과정에 일부는 옷깃이 찢겨지기도 했다. 당시 김 교수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주주의 발언권을 제한한 주총은 원천 무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현장은 고스란히 기사화됐다. 그는 또 회사 쪽의 폭행과 모욕에 대해,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주총 무효소송은 기각했지만, 손해배상에선 참여연대 손을 들어줬다. 이후 그의 이름 앞엔 '삼성 저격수'가 따라붙었다.

다음 해인 2005년 삼성전자 주총에도 참석했다. 이번에도 윤종용 부회장 등이 나왔다. 하지만 2004년과 같은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대신 김 교수 쪽과 회사 쪽간의 질의와 답변의 공방이 계속됐다. 솔직히 국내 재벌기업 주총에서 이런 장면은 전례가 없었다. 소액 주주가 거대기업을 상대로 경영 문제 등을 따져 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김 교수 스스로 이를 '미친 짓'이라고 했다. 그가 최근에 낸 <종횡무진 한국경제>(오마이북 펴냄)에서다. 물론 이 말은 어느 외국인 투자자가 경제개혁연대 사람들에게 던진 말이라고 한다. '미친 사람들(crazy guys)'이라고.

'과격한 사회주의자인가, 신자유주의의 첨병인가'

 <종횡무진 한국경제>
<종횡무진 한국경제> ⓒ 오마이북
그 역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소액주주운동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주주 가치 극대화를 통해 재벌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의 재벌개혁운동은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게서 비판을 받았다. 보수로부터는 '사회주의적 과격단체'로, 진보로부터는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말이다.

어떻게 이처럼 양립 불가능한 평가가 함께 나올 수 있을까. 그는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체념한 듯한 말이다. 기자와 만났을 때도 자주 내뱉던 말이다. 그리고 그 스스로 논란의 소지가 될 만한 발언은 극도로 자제하는 것이 습관처럼 됐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의 재벌에 대한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아니, 더욱 또렷해졌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도 재벌을 '전근대적인 독점, 천민자본'으로 규정한다. 이어 삼성과 현대자동차 그룹의 성장 이면을 들춰낸다. 재벌을 중심으로 쏠리는 과도한 경제력 집중도 비판한다. 김 교수는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은 경제영역을 넘어 정치·사회·문화·이데올로기적 지배력까지 확장된다"면서 "말 그대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소수 거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에 비판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삼성공화국' 논란이다. 그는 "한국에서만 가능하다"고 썼다. 5대 재벌 중 하나였던 삼성이 이젠 다른 재벌들조차도 근접하기 어려운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기준으로 삼성이 우리나라 GDP(국내 총생산)의 17.4% 자산을 갖고 있다. 총 설비투자도 삼성 단독으로 15.3%를 담당하고 있다.

김 교수는 "두렵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이어 "우리나라 총 설비투자의 7분의 1(15.3%)을 삼성 혼자 차지한 상황에서, 어느 정권이 삼성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라고 재차 묻는다. 책 속의 말을 옮겨본다.

"투자를 무기로 한 재벌의 위협(일명 자본파업)을 물리치고, 재벌개혁 정책을 일관되게 집행할 정권이 과연 있겠는가? 진보정권조차도 재벌과 타협하기 십상일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재벌개혁이 어렵고, 더욱 재벌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삼성 문제만 봐도 그렇다. 2007년 말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특별검사가 임명됐고, 이건희 회장과 경영진이 줄줄이 법정에 섰다. 이 회장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형 집행은 면했다. 대통령의 이례적인 단독사면도 이어졌다. 그리곤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해체됐다던 전략기획실도 미래전략실로 간판만 바꿔 달았다.

기업집단법 등 법치주의 확립과 모피아 개혁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 유성호
김 교수는 "이 과정에서 '총수에게 충성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내부 구성원의 왜곡된 인센티브 구조 문제는 더 악화됐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뜨거웠지만, 변한 건 없었다"고 자조 섞인 평가를 내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걸까. 그 역시 "이 문제만 지난 10년 동안 고민해왔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고 할 정도다.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다. 하나는 법치주의 확립이다. 보수진영이 입에 달고 사는 '법치'와는 사뭇 다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나 후진적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현행 법체계에서도 시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김 교수는 "법 집행의 이중잣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기업지배구조 모델을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또 하나는 엄정한 법 집행을 넘어, 새로운 법 제도적 접근이다. 기업집단법 등 새로운 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확산되는 기업집단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 그의 이야기는 재벌이라는 기업집단의 법적 실체를 인정하자는 것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자인 재벌 총수와 참모조직(비서실), 각 계열사 이사회간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해서 그에 맞는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개혁과 진보의 성공을 말한다. 그러면서 경제관료에 대한 경계심을 주문한다. 이른바 '모피아(과거 재무부 영어표기와 이탈리아 마피아의 합성어)'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모피아는 유능하다"고 말한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개혁의 필수적 도구다"고 전한다.

그는 통제받지 않는 모피아는 개혁의 최대 장애물로 생각한다. 특히 재계의 이해관계와 유착된 모피아를 방치하는 것은 보수나 진보정권 모두 개혁의 실패를 초래하는 지름길이라고 단언한다. 이어 그는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또 개혁은 선거 승리 후 집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대통령 후보 공약들도 대부분 5년 안에 마무리하기 어려운 것들을 잘 안다. 그의 충고다.

"개혁은 혼자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독단과 조급증은 금물이다.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우리나라 대통령 모두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가 이 독단과 조급증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개방론자, 그럼에도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는 스스로 '개방론자'라고 말한다. 한미FTA를 통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하는 것도 불가피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다시 말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제적으로 너무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단언할 수 있다'는 표현까지 썼다. 확신에 가깝다.

그의 우려는 단순한 관세 인하가 아니다. 서비스업 개방이다. 김 교수의 말은 이렇다. 미국 등 외국기업의 국내 주재를 허용한다. 이들은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제도적 환경에서 활동해 온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만든 서비스 품목의 국경 간 거래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제도를 미국 등 선진국 제도에 맞춰가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농업과 서비스업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다. 상대적으로 우리 입장에선 피해가 눈에 보듯 선하다. 이런 미국과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 자체가 심각한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또 한미FTA를 둘러싸고 사회 계층간 극심한 갈등과 논란 등 역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그는 적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김 교수가 우려하는 것은 따로 있다. 법과 제도의 투명과 공정한 집행이다. 이는 개방에 따른 위험과 갈등 조정을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규칙의 공정성과 집행의 엄정성이 의심되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방이라는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는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길이라는 것. 그의 말이다.

"예를 들어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가지고, 경제 관료들이 '이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 기업이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라고 하면, 위축되지 않을 정치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소송 가능성을 과대 포장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위한 조치를 사전에 봉쇄하는 빌미로 작용할 거라는 데 있다."

결국, 한미FTA 문제 역시 경제관료로 이어진다. 경제관료로 인해 개방의 잠재력보다 그 위험성이 더 부각될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을 경제학자로서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라고도 했다.


#김상조 교수#종횡무진 한국경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