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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열 신문사의 불법도청 사건으로 영국 의회 청문회에 나와 증언하는 루퍼트 머독.
계열 신문사의 불법도청 사건으로 영국 의회 청문회에 나와 증언하는 루퍼트 머독. ⓒ <가디언>

지난해 여름 비슷한 시기에, 언뜻 보면 상당 부분 유사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던 스캔들이 한국과 영국의 주요 언론사에서 일어났다. 둘 다 불법적인 뉴스 취재와 관련된 사건이다.

그로부터 계절이 몇 번 바뀌어 다시 찾아온 봄, 당시 높은 관심을 끌었던 두 사건이 그 후 어떻게 처리되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건 당시만큼이나 사후 처리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두 나라 언론과 사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전히 조사 중인 <뉴스오브더월드> 도청 스캔들

취재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도청 사건으로 해당 언론사의 사주인 세계적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부자가 의회 청문회에 소환되어 전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밝히며 용서를 구했던 건 작년 7월 19일이었다.

대중적 타블로이드 신문을 발행하던 머독 일가의 <뉴스인터내셔널>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건의 휴대전화 도청, 경찰 뇌물 스캔들 등으로 비난과 고발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부적절한 취재 행위가 유명인, 정치인, 왕실 일가에만 한정되었다던 이전 조사 결과와 달리, 억울하게 살해된 어린 소녀 밀리 다울러, 심지어 런던 버스 폭발 테러 희생자 등 민간인들의 휴대전화까지 무차별적으로 도청한 것으로 폭로되자 대중들의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16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전통의 대중지 <뉴스오브더월드>가 스캔들의 책임을 지며 전격 폐간 조치되었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의회 차원의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명했다.

그 후 레베슨 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레베슨 위원회가 구성되는데, 레베슨위원회의 임무는 <뉴스오브더월드> 스캔들의 심층 조사와 이로 인해 촉발된 영국 언론 전반의 취재 윤리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레베슨위원회는 9월부터 사건 배경 이해에 필요한 분야의 저명인사 초빙 특강을 시작으로 <뉴스인터내셔널>, <가디언 미디어 그룹>, BBC 등 주요 언론, 런던 경찰청, 저널리스트 전국노조 관련자들, 그리고 그동안 미디어로부터 사적 침해를 당했다는 51명을 모두 출석시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대상자 명단에는 정치인, 스포츠스타, 대중적 인물, 일반인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휴대전화 도청사건 피해자인 다울러 양의 부모와 언론에 의한 사생활 침해를 주장해온 유명 배우 휴 그랜트도 출석했다.

총 4단계로 진행되는 조사위 활동은 첫 단계로 언론과 개인들의 사적영역 침해 부분, 2단계에선 언론과 경찰의 부적절한 공모 관계를 조사하게 된다. 향후 진행될 3단계에선 언론과 정치인 문제를 다루고, 마지막 단계는 영국 미디어의 불법적 취재 관행과 문화를 정리하면서 최종적으로 언론 보도에서의 '자율 규제'와 윤리적 기준 강화를 위한 제언을 할 예정이다.

올 2월까지 1단계 조사를 마쳤는데, 개인 정보 접근에 대한 이슈, 기술, 미디어법, 제도 등에 대한 강연과 '언론 보도 경쟁이 저널리즘에 미치는 영향', '언론의 권리와 책임', '언론 자유와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을 주제로 한 세미나들이 제임스 커런, 스티브 바넷 같은 저명 언론학자들과 함께 진행되어 또한 주목을 끌었다.
   
 민주당 대표실 도청파문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된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작년 10월 4일 국정감사중인 국회 문방위 회의장을 나서며 김인규 KBS 사장과 스치고 있다.
민주당 대표실 도청파문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된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작년 10월 4일 국정감사중인 국회 문방위 회의장을 나서며 김인규 KBS 사장과 스치고 있다. ⓒ 남소연

이미 과거의 일로 잊혀져버린 KBS 도청 의혹

한국에선 현재 MBC를 필두로 KBS, YTN 등 여러 언론사 노조들이 사장 퇴진과 공정 보도를 목표로 파업 중이다. 이 가운데는 작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도청 의혹을 받았던 KBS 측 새노조도 포함되어 있다. 얼마 전 <나꼼수> '봉주8회'에 출연한 KBS 파업 지도부가 시인했듯, 이제 도청 의혹 건은 KBS 구성원들에게는 어디서도 언급하기 불편한 불명예스러운 경험이 되어버렸다.

작년 6월 KBS 수신료 인상안 논란이 있던 시기, 야당 최고위 비공개 회의 내용이 KBS 기자에 의해 불법 도청된 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녹취록 형태로 당시 여당 소속 국회 문방위원장이었던 한선교 의원에게 넘겨졌다는 의혹이었다.

그러나 도청 의혹을 받은 KBS 장아무개 기자는 "택시에 핸드폰, 노트북을 두고 내렸다, 당일 국회에 없었다"는 등 추후 거짓으로 드러난 여러 해명들에도 불구하고 작년 연말 경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의혹의 주체였던 KBS는 자신들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었던 내부조사조차 외면하여 비난을 받았었다.

의혹 주체와 조직의 솔직한 목소리에 의한 진실 규명을 기대했던 국민들의 바람과 달리, KBS는 경찰 조사 결과만 내세우며 '자율 규제'라는 자신의 책무와 언론 독립성의 대의를 스스로 내팽개쳤다. KBS 구성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편한 정서는 지금 파업정국에도 분명히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 6월 30일 민주당 '불법도청 진상조사 특위' 위원장인 천정배 의원이 문방위 회의실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하는 발언을 KBS 방송 카메라가 기록하고 있다.
작년 6월 30일 민주당 '불법도청 진상조사 특위' 위원장인 천정배 의원이 문방위 회의실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하는 발언을 KBS 방송 카메라가 기록하고 있다. ⓒ 남소연

사장만 물러나면 공정한 방송 할 수 있나?

언론사 노조들의 공통된 투쟁 방향은 '사장 퇴진'으로 요약된다. 공정 방송의 모든 최종적 권한과 책임을 사장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는 조직의 특성을 이들의 파업 목표가 명확히 해주고 있다.

물론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보도를 위해 현재 진행 중인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은 당연히 중요하며 승리해야만 하는 일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시스템상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친정부적 혹은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사장이 물러나면 우리의 언론 보도 환경은 자연적으로 좋아질 것인가? 그들이 현역 정치인이 아니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현 사장이 물러난다 해도, 자사의 도청스캔들 하나 내부적으로 처리하지 못해 온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사 구성원들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이고 공정한 방송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제대로 뉴스데스크> <리셋 KBS 뉴스9>가 앞으로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으로 어떻게 자신할 수 있는가? 아쉽지만 그들 내부에 뿌리 깊은 엘리트주의 문화, 그 속에 자리잡은 특권적, 관료주의적 의식과 관행이 계속되는 한 '9시 뉴스'를 영원히 무한 '리셋'하는 일이 다시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즉, 사장 퇴진 운동과 함께 풀어야 할 숙제는, 특히 공영 방송 구성원 모두의 지속적인 자기 혁신을 통한 새로운 조직 문화 형성이며, 이 과정이 잘 이루어져야만 언론의 독립성과 국민적 신뢰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도청스캔들을 조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레베슨조사위원회'의 홈페이지.
영국의 도청스캔들을 조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레베슨조사위원회'의 홈페이지. ⓒ 레베슨조사위

정치인 도청에서 민간인 사찰까지 모두 별일 아닌 한국 사회?

물론 영국의 경우에도 우리처럼 공공서비스 방송, 즉 BBC와 BBC의 상위 기구인 'BBC 트러스트'의 수장 인사를 모두 정부에서 한다. 하지만 그나마 영국에선, 확실한 정치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공영방송 같은 독립적 조직의 수장이 되고 나면, 스스로가 자신의 임명권자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어 정부에서 자신을 관리(?)하는 것조차 쉽지 않게 태도를 바꾸어 왔다.

예전 야당 시절 보수당 의장으로, BBC 보도에 매우 비판적이었던 현 BBC 트러스트 위원장 크리스 패튼 역시 취임 이후 여러 차례 "BBC도 완벽하지 않으며, 뉴스 보도에서 정치적 입장 때문에 모든 스토리를 다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스스로 자기반성하기도 했다. 이는 패튼뿐 아니라, 블레어, 브라운 총리의 신노동당 시절에 BBC 사장으로 임명된 그렉 다이크, 마크 톰슨 사장 등 대부분에게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와 다른 이들의 조직 문화를 만들었는가? 언론 독립성이란 무거운 책임을 부여받은 공영방송의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가치와 신뢰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언제 어디서나 지켜져야 하는 '정직, 진실에 입각한 저널리즘'이며,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이들이 대중들로부터 받게 되는 외면은 다시 되돌리기가 몇 배나 어렵다는 그간의 학습 효과들이 있었다.

최근만 보더라도, 자사의 비윤리적 오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장, 본부장, 담당 기자 모두 동시에 사직했던 2003년 BBC 케이스나, 민간인과 정치인 도청 스캔들로 유구한 역사의 인기 신문을 하루아침에 폐간시켜 버린 언론 재벌 머독의 처사처럼, 특히 언론에 대해 옳지 않은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지게 하는 사회적 합의와 누구든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언론인들의 역사가 있었다.

특히 <뉴스오브더월드> 경우에서 보듯이 민간인, 특히 가장 약한 자들에 대한 불법 도청과 사찰의 경우에는 그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최악의 범죄 행위로 단죄하는 추세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국민 신뢰를 잃었음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영방송 사장들의 뻔뻔함과 민간인이든 정치인이든 가리지 않고 사찰을 자행한 권력자들의 용서받을 수 없는 행태가 겹쳐지면서, 언론 노조들의 파업이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더불어 우리 언론 역시 향후에는 '진실', '정직'에 입각해 불의에 떳떳히 맞서는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켜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KBS#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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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문화연구자. 지역의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함. 10여년 전 유학시절 <오마이뉴스>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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