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총괄기획과장이 "이명박 정권 쪽에서 민간인 사찰 진실 공개를 막기 위해 MB(이명박 대통령) 독대와 대기업 취업 등을 제안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진 전 과장이 지난 2010년 8월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이후 진씨를 자주 접촉했던 A씨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진 전 과장이 '내가 민간인 사찰과 관련된 진실을 공개하려고 하자 (정권 쪽에서) 세 가지 조건을 내걸고 회유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정권 쪽에서 진 전 과장에게 언급한 '세 가지 조건'은 ▲ 2심에서는 꼭 내보내준다고 MB가 약속했다 ▲ 나가면 MB와 독대시켜주겠다 ▲ 삼성·LG·현대의 상무급으로 취직시켜주겠다 등이었다. A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청와대가 장진수 전 주무관뿐만 아니라 진 전 과장도 입막음을 하려고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진 전 과장이 검찰에서도 그런 얘기를 한다면 재판부에서 확인해볼 문제이지 청와대에서 확인해줄 게 아니다"라며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한편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이 진 전 과장의 서울구치소 특별접견 기록을 검토하고 있어 주목된다.
검찰은 2010년 8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진 전 과장의 특별접견 일지를 서울구치소로부터 넘겨받아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는 청와대·국무총리실 인사, 변호사, 정치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실형받은 진경락 "가만 있지 않겠다"며 양심선언 고민진 전 과장은 지난 2010년 11월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그의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혐의를 인정한 것이다. 그 석 달 전인 8월에 구속됐을 때만 해도 "금방 나갈 수 있다"고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1심 결과는 크게 어긋났다.
1심 선고 이후 진 전 과장은 주변에 "가만 있지 않겠다"고 얘기할 정도로 격노했다. 그는 "정권이 나를 보호해준다고 해놓고는 이럴 수 있느냐"며 "청와대 수석들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장진수 전 주무관이 공개한 '최종석-장진수 대화록'에도 나온다. 이 대화록에 따르면,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은 장 전 주무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경락 과장이 그간에 오늘 재판과정에서 증인신청을 해 가지고, 뭐 청와대 수석들을 세우겠다, 뭐 이렇게 난리를 쳤거든.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자기는 억울하다. … 그래서 '장진수도 희생하고 있는데 당신이 그렇게 하면 득이 될 게 있느냐' 설득하는 상황인데…."진 전 과장은 당시 양심선언 문제를 깊이 고민했고, 정권쪽에도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사찰 의혹의 진실이 담긴 진술서를 써서 중앙징계위에 보낸 것도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진술서에는 "민간인 사찰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사찰 증거 인멸은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은 청와대 수석들을 법정에 세우지 못했고, 그의 진술서도 중앙징계위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심지어 청와대에서 진술서를 빼돌렸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A씨는 "2심 때도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진 전 과장이 중앙징계위에 편지를 써서 보냈다"며 "그런데 진 전 과장이 '편지가 징계위로 안 가고 청와대에 인터셉트 당했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진 전 과장은 중앙징계위에 보낸 편지에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다 썼다고 했다"며 "'나를 신경 쓰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분명히 진 전 과장이 '(중앙징계위에) 진술서가 접수되지 않았다'고 했다"며 "편지가 구치소에서 바로 청와대로 갔는지, 징계위로 갔다가 청와대로 갔는지는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은 자신이 양심선언을 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지난 3월 4일부터 27일까지 수차례 <오마이뉴스>와 접촉한 과정에서 "내가 사석이든 어디서든 억울함을 토로했을 수 있는데 그것이 양심선언으로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MB 독대' 등 정권 쪽에서 제시한 '3가지 회유책'
한편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이후 진 전 과장이 양심선언을 하려고 하자 정권 쪽이 긴박하게 움직였 것으로 보인다. A씨는 "하루에 몇번씩의 특별접견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변호사 등을 내세워 '청와대 수석 증인 신청'과 '중앙징계위 직접 출석'을 막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MB 독대'와 '대기업 취업' 등 등 세 가지 회유책이 제시되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이것은 진 전 과장이 내게 직접 한 얘기"라면서 "그래서 진 전 과장은 (양심선언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첫째 조건(2심 석방)만 충족되고 둘째와 셋째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0년 8월 1심에서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진 전 과장은 이듬해 4월 2심에서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서 풀려날 수 있었다. 이렇게 풀려나긴 했지만 '증거인멸 지시' 혐의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몸통으로 지목된 것에 "엄청 억울하다"고 했다.
특히 진 전 과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직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고위층 인사가 그를 특별접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중앙징계위에 '윗선 개입'이 담긴 진술서를 보내고, 1심 선고 이후 "가만두지 않겠다"며 양심선언을 고백했던 그를 회유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진 전 과장은 <오마이뉴스>에 "내가 억울함을 밝히더라도 법정에서 밝히겠다"며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심을 해주면 뭔가를 얘기하기 좋은데 그대로 유죄를 확정하면 진실을 말할 기회가 없어지지 않나"라고 토로한 바 있다.
"MB와 식사하면서 칭찬받은 적도 있다고 말해"A씨는 진 전 과장이 현 정부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보여주는 증언도 내놓았다. 그는 "진 전 과장이 MB와 직접 식사를 했고, 그 자리에서 정책 건의를 하자 MB가 '어떻게 공무원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며 칭찬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기획총괄과는 (점검팀 등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다시 정리해 '위'에 보고하는 부서로 보인다"며 "각종 보고서가 진 전 과장에게 모이면 그는 이것을 정리해서 청와대 등에 올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진 전 과장이 차분하고 주도면밀하다"며 "(그래서인지) 그에게 그런 정리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A씨는 "진 전 과장은 '내가 자료를 다 가지고 있다'고 했다"며 "최근 언론에서 그가 노트북을 가져갔고, 차량에 서류박스를 싣고 다녔다는 사실이 보도됐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디엔가 자료가 보관돼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3월 27일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직후부터 언론과의 접촉을 완전히 끊은 진 전 과장은 수 차례 검찰 소환통보에 불응하다가 13일 오후 검찰에 자진출석했다.
진 전 과장은 앞서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나는 민간인 불법사찰의 증거인멸을 저지르거나 지시한 적도 없고, 검찰이 압수수색하기 전에 노트북 1대를 빼돌렸다는 의혹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