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어려운 선거판에서 후보가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표를 한 올 두 올 주워 놓으면, 중앙정치에서 다발째 표를 갖다 버리고 있으니, 후보들이 선거운동할 마음이 생기겠어요? 이러다 전멸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4·11 총선 서울 강서갑에 출마한 구상찬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31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민간인 불법사찰건과 같은 악재 때문에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터진 한숨이었다.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의 폭로와 사찰문건 보도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여당인 새누리당에 최대 악재로 떠올랐다. 이명박 정부 실정에 대한 국민적인 실망감이 정권심판론을 형성했고, 2년 전 터졌다가 유야무야되는 듯했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다시 터져 나오면서 사그라들던 정권심판론의 불씨에 휘발유를 뿌린 격이 됐다.
31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주재한 총선상황 일일점검회의에서 특검 실시와 권재진 법무장관 사퇴를 요구하기로 한 발빠른 대응도 이같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새누리당 수뇌부의 상황인식을 반영한다.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해야"..."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져야"
실제 일선에서, 특히 수도권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후보들은 앞서 언급한 구 의원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노원을의 권영진 의원은 "이 사건이 악재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계속 나오면 정권심판 분위기가 얼마나 더 강해질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일단 이날 당에서 특검실시와 권재진 장관 사퇴 요구가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잘했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탈당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권 의원은 "특검도 당연하고 권재진 장관도 사퇴를 해야 하는데, 민간인 사찰 사건과 증거인멸에 청와대 비서관들의 개입 사실이 밝혀지고 있어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 의원은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이미 불붙은 악재를 꺼뜨릴 수는 없다고 봤다. 권 의원은 "대통령이 사과한다고 해서 선거에 도움이 되겠느냐"며 "어차피 터진 악재를 덮을 수는 없는 일이고, 선거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떠나 잘못된 일에 대한 사과는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역 출마 의원은 "당연히 특검을 해야 한다"며 "이걸 정리하고 가야지, 그냥 넘어갈 순 없다. 특검 결과에 따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최고 결정권자가 정치적 책임도 져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새누리당을 탈당해 당의 입장을 가볍게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기도 한 지역구에 출마한 한 의원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악재임은 분명한데, '한판'이나 '절반'짜리는 아닌 것 같다"고 진단하면서 "핀트가 안 맞는다"고 했다.
민간인 사찰에 대한 여론 악화는 청와대를 향한 것이고, 사찰대상에 이미 확인된 몇몇 여당 의원들이 포함된 것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새누리당에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의 이미지가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대응만 잘 하면 우리 당이 완전히 뻗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선거일은 불과 11일 앞으로 다가왔고,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해선 연일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새누리당 후보들, 특히 이슈에 민감한 수도권에 출마한 후보들은 좌불안석이다. 특히 남경필 의원 등 사찰 대상자로 확인된 여당 의원들은 공동으로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이 대통령을 향해 모종의 결단을 촉구할 것을 검토중이어서, 그 내용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