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해 각 정당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대책, 반값등록금 등 연이어 청년을 위한 정책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정책들이 모든 청년층을 샅샅이 살펴본 뒤 나온 것일까. 혹시 대학생이라는 특정 신분에 치우친 정책들은 아닐까. 대학생만 청년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도, 청년유권자>라는 기획을 통해 2030세대에 속하는 비대학생 청년들을 만나 그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들어봤다. - 기자 주
캄보디아 프놈펜 출신으로 6년 전 한국에 온 초찬비얀(28)씨. 그녀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결혼이주여성이다. 현재 5살 된 아이가 한 명 있는 초찬비얀씨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종로구에 있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초찬비얀씨를 만났다.
초찬비얀씨는 오는 11일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3월 한국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영주권을 취득한 지 3년이 경과한 만 19세 이상의 외국인에 한해 지방자치선거권을 부여하지만, 총선과 대선 투표권은 국적을 취득한 사람에게만 권한이 있다. 국적은 결혼 2년 후에 비자를 신청한 뒤, 이후 심사를 거쳐 1~3년 뒤에 취득할 수 있다. 통상 국적 획득까지 4년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고 한다. 초찬비얀씨의 경우 약 3년이 걸렸는데, 아이가 있어 빨리 취득한 편이었다.
"공부 못한 무식한 사람 취급... 우리도 직장생활 하고 싶어요"초찬비얀씨는 "아무리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도 이주여성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피부색과 학력으로 무시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지하철이나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 이주여성들을 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이주여성이라고 하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분명 처음 간 식당이었는데 주인이나 직원이 한국 사람한테는 존댓말을 하고, 우리한테만 반말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도 사람인데 기분이 나쁘죠."그녀는 이주여성들이 상대적으로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해 차별을 받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녀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문화 차이까지 겪다 보니 한국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단다. 특히 남성 위주의 문화에서 큰 차이를 느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와 한국은 많이 달라요. 제가 한국에서 결혼하면서 남편 부모님을 같이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 고향에서는 결혼을 한다고 시댁에 들어가지 않아요. 오히려 남자가 신부 집에 들어와서 살죠."더불어 유독 이주여성에게만 한국의 과거 여성상을 요구하는 풍토가 강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이를 무조건 낳아야 한다고 말해요. 부모님을 모시고 매일 집에서 집안일만 하고, 직장 생활도 안 된다고 하죠. 우리도 한국여성처럼 고향에서 공부하고 배운 것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주여성을 다 똑같이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해요. 흔히 공부 못한 여자로 생각하죠. 물론 사람마다 조금씩 상황은 다르겠지만 무조건 그렇게 보는 점은 옳지 못해요."그녀는 이주여성도 한국여성처럼 아이가 성장한 뒤 직장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한국 사회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통번역이나 다문화지원센터 등 제한된 일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주여성들이 본국에서 전공하고 직업으로 삼았던 일을 한국에서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주여성 가출이 무조건 다 나쁜 것은 아니에요"
한편 초찬비얀씨는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으로 가정폭력을 꼽았다. 먼 타국에서 이주여성들이 당하는 가정폭력은 매우 심각하며, 결국 견디다 못해 할 수 없이 가출하는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이주여성들은 한국말을 잘 못하잖아요. 그래서 남편에게 폭력을 더 많이 당하고, 당해도 어디 가서 말할 곳이 없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약 한 집에서 다 같이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누가 그 집을 나가고 싶겠어요. 하지만 남편이 만날 욕하고 때리면 그 집에서 살 수 있겠어요? 여성들이 그 집에서 살고 싶어도 너무 위험하고 힘든 상황이라 가출하는 거예요. 끝까지 참다가 결국 마지막에 내린 결정이죠. 이주여성들의 가출이 무조건 다 나쁜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체로 집을 나간 이주여성에게 먼저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비춰진다고 설명했다. 결혼 이주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너는 남편과 아이를 돌보는 것이 당연한데 왜 집을 나가느냐'고 말한다고 한다. 원인은 보지 않고 결과에만 더 초점을 맞춘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어떤 경우라도 이주여성의 체류에 관해 남편의 선택과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만일 이주여성이 가출하면 가출 발생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출입국사무소에 가출 신고를 해야 한다. 이 경우 국적이 아닌 거주(F-2) 비자를 갖고 있는 이주여성은 이후 체류기간 연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남편이 신원보증철회를 하면 이주여성의 체류허가가 취소되거나 변경될 수 있다.(거주 비자는 일반적으로 국적 취득 전 보유하는 체류자격 비자다.)
초찬비얀씨는 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불안한 체류로 또다시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 했다. 체류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자의가 아닌 타의로 본국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주여성들은 항상 체류 문제 때문에 불안해요. 저희 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한 이주여성은 외국인 등록증 기한이 이번 달로 끝나서 체류연장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남편하고 크게 싸워서 체류연장을 할 수가 없었죠. 남편이 허락해주지 않는 한 체류연장을 하지 못하거든요." 그녀는 이주여성들의 체류를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보완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 제도는 지극히 남성 중심이라는 주장이다.
"남편 없이도 이주여성 혼자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체류연장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면 좋겠어요. 지금은 남편이 서명한 신원보증서나 남편 신분증이 꼭 필요해요. 남편에 의해 체류 여부가 좌지우지되죠." 현재 우리나라 국민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는 국민인 배우자의 신원보증을 원칙으로 한다. 만약 신원보증인이 보증을 철회하거나 신원보증인이 없게 된 때에는 최단기간 내에 새로운 신원보증인을 선임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직장생활이나 외부 활동을 할 기회가 많지 않은 이주여성으로서는 제3의 보증인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한국인 배우자의 신원보증 없이는 소지하고 있는 거주 비자 혹은 외국인 등록증 기한이 만료가 되면 체류 자격이 없어져 한국에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초찬비얀씨는 "가출신고 기간이 너무 짧다"며 "가출한 이주여성이 집으로 돌아가거나 남편과 화해할 수 있도록 최소한 3개월이나 6개월 정도로 기간을 늘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주여성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를 해달라는 것이다.
이혼 청구(소송)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제도를 잘 알지 못하는 이주여성은 적절히 대처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남편이 법원에 이혼 청구를 하면 가출한 여성의 경우 행선지가 불명확해 이혼 절차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수 있다. 또 한국말이 서툴 경우 이혼 과정에 있어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가출한 이주여성들 중에는 자신이 이혼한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나중에 집에 들어가거나 혹은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보고 자기도 놀라죠. 본인 이름이 없으니까 그제야 이혼했다는 것을 알고요. 그때가 돼서 우리 센터에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우리도 해결할 수가 없어요. 만일 이주여성이 위장결혼하려는 나쁜 여성이라면 이혼 청구를 해도 되겠지만,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여성이라면 오히려 다시 피해를 입는 거잖아요. 가출과 이혼 모두 양쪽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고 조사해야 해요. 남편들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이주여성들의 눈으로 봐줬으면 해요."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 한국 사람 아니란 느낌 든다"초찬비얀씨는 정치권에서 내거는 다문화가족 정책에도 한마디 전했다. 그녀는 다문화라는 말이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다문화라는 말은 좋지 못해요. 한국 국적이 있는데도 다문화라고 하면 우리는 한국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나마 우리는 이주여성이라 괜찮다고 해도 우리 아이들은 괜찮지 않아요. 다문화 가정이라고 하면 아이들을 외국 아이로 대하는 느낌이 들어요."그녀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를 위해 만든 동화책을 예로 들며, 다문화 가정을 위한다는 명목이 오히려 더 차별과 편견을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 다문화 아이를 위해 만든 동화책은 왜 만들었을까요? 우리 아이의 아빠는 분명 한국 사람이고, 엄마도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 꽤 많은데 말이죠. 그런 동화책은 굳이 안 만들어도 돼요. 그냥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동화책을 만들면 되죠.또 어디선가 다문화 아이를 위한 학교를 짓는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해요. 우리 아이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말도 잘하는데 다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서 배워야죠. 다문화 학교에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만 들어간다면 자신을 외국인처럼 생각할 수 있잖아요.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도 다문화 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외려 차별을 받을 수도 있어요.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다문화라는 말에 상처와 충격을 받을까 염려돼요." 초찬비얀씨는 이번 총선에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꼭 투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미 선거를 한 번 경험했다. 2010년에 국적을 받고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 처음 투표를 했단다.
"지난해에 서울시장 선거를 할 때는 처음 투표하는 거라 긴장을 좀 많이 했어요. 어떤 사람을 찍어야 할지 아리송했죠. 그래서 서울시장 관련 홍보물을 보고 더 적극적으로 뉴스와 인터넷을 찾아봤어요. 투표를 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을 찍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는데 결국은 제가 믿고 있는 후보를 찍었죠."초찬비얀씨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도 후보가 너무 많아서 조금 헷갈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르는 만큼 더 찾아보고 주민으로서 두 번째 투표권을 행사하고자 마음 먹었단다.
"제 생각에는 투표가 매우 중요해요. 선거에 무관심하거나 투표하지 않으면 누가 뽑힐지 모르잖아요. 혹시라도 사람이 잘못 뽑혀서 나라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그럼 저나 주민들 모두 살기 힘들잖아요. 이번 총선에서는 정치인들이 이주여성을 포함해 국민 모두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강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