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학부모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대학입시가 단연 선두를 차지할 것이다. 관료집단을 비롯한 사회 기득권 세력이 '○○대학교 출신' '△△고등학교 출신'의 자기 사람 챙기기에 적극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웬만큼 '레벨'이 있는 대학 졸업장이 아니면 정규직으로 취업하기도 어려운 사회 현실 역시 학부모와 학생들의 걱정을 배가시키고 있다. '대학 간판이 너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학벌 체제의 폐해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한국에서 대학교육은 사실상 국민 보편 교육으로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내 자식이 '대학을 갈 수 있나 없나'가 아니라 '어떤 대학을 들어갔나'에 따라 학부모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한국처럼 대학이 성적순으로 서열화 되어 있는 현실에서 자녀의 '대학 간판'은 일종의 '신분'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만 서열화된 것이 아니다. 과학고, 외국어고, 영재고 등 각종 특수목적고와 자립형 사립고의 난립으로 일반 공립 고등학교는 2등 학교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서열화된 고등학교 체계에 대학 입시가 끼어들자 '과학 인재 양성' '외국어 우수자 양성'이라는 특수목적고의 본래 설립 목적은 '특별 입시 학원'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해 설립된 '국제중학교' 등 각종 외국인 학교는 내국인의 입학이 일정비율 허가됨으로 해서 또 하나의 '외국어 학원'으로 전락했다. 학벌 지상주의 앞에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만 남은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으로 학생과 학부모는 어릴 때부터 '영어 유치원' 등을 전전하며 각종 특수목적 학교와 사립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사교육'에 내몰리게 되고, 이는 다시 공교육 체계를 무력화하는 악순환을 낳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사교육' 문제도 결국 학벌 체제로 파상된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통계조사에서,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증가의 주된 원인을 '취업 등에 있어 출신 대학이 중요'하고, '특목고, 대학 등 주요입시에서 점수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학벌사회와 대학 서열화 경쟁, 학생과 학부모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입시 체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반값 등록금'을 비롯한 각종 교육복지 정책조차 한낱 '사교육비 보조 수단'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교육에 의존하다보니 교육비용이 많이 들고, 이제는 소위 명문대 입학생 중에서 저소득층 출신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서울대의 경우 지난해 합격자 중 서울의 일반고 출신 중에서 강남·서초·송파 3구 출신이 무려 42.5%인데 반해 구로·금천·마포 3구 출신은 불과 2.7%였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는 명문대 수석 합격자 이야기는 신화 속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됐다. 학벌 체제가 부모의 소득에 따라 '세습'되는 학벌 세습체제로 더욱 악화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교육 복지 문제는 서열화된 대학과 성적위주의 입시체계를 고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수립될 수 없다. 이는 2012년 총선 국면에서 한국 사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복지문제이다.
학벌 세습체제 심화시킬 우려 있는 새누리당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이 이처럼 심각함에도 총선을 앞둔 여당인 새누리당(비대위원장 박근혜)이 발표한 교육 복지 공약은 매우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이 제시한 교육 정책은 '기본적 교육 강화' '인성 교육 강화' '방과 후 학교 내실화' '등록금 부담 줄이기'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제시한 '기본적 교육 강화'는 장애인 교육 정상화, 비인가 대안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는 데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단편적인 내용이다. 또 새누리당의 '인성교육 강화' 정책은 체험학습, 주말 문화학교 지원, 산림교육, 학교폭력 없애기 등의 내용으로 이뤄져 인성교육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성적 경쟁 위주의 입시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새누리당은 '방과 후 학교' '등록금 부담 줄이기' 등 교육비용 대책에서도 이른바 '선별적 복지론'을 앞세워 매우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학 사회의 핵심 화두로 등장한 '반값 등록금' 문제도 새누리당은 다른 당과는 달리 소득 계층에 따라 차등 지원하겠다고 공약했고, 그 외 학자금 대출 금리를 2% 인하, 단계적인 고교 무상 교육 정책만 덩그러니 발표됐을 뿐이다. 그나마 정부 재정 여건이 좋을 경우에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교육을 위해 돈을 마련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있다면 그 다음에 고려해보겠다'는 새누리당의 안이한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사립학교 위주의 대학 서열화 개선' 등 보다 근본적인 새누리당의 교육 복지 관련 정책은 과거 한나라당 시절 정책 토론회에서 제출된 사례에 대한 보도기사 등을 통해 추측해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새누리당은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학을 법인화해 정부로부터 사실상 독립시키며, 교육부 예산 차등 지원을 통해 난립한 사립대학을 '선진화'하겠다는 내용의 신자유주의 방식의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새누리당의 국립대학 구조조정 추진 방향은 '효율성'의 미명하에 국립대학을 사실상 민영화하는 방안일 뿐이다. 더군다나 새누리당의 사립대학 구조조정 역시 정부 예산의 차등 지원을 통해 지방 사립대학을 통폐합하는 방향만 제시돼 있다.
과거 한나라당 인사들은 특수목적고를 자기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등 오히려 학벌과 성적위주의 입시경쟁을 가열시키는 방향의 정책을 공약했다. 2008년 치러진 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된 나경원, 홍준표, 신지호, 정두언, 원희룡, 전여옥, 정몽준 등 한나라당 주요 국회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특목고, 자립고 유치'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더욱이 가장 가까운 사례로 2011년 10월 26일 치러진 보궐선거에 서울시 양천구청장 후보로 나섰던 추재엽 한나라당 후보는 '특목고를 유치'해 '청소년이 살기 좋은 양천을 만들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바 있다.
이처럼 새누리당은 과거 한나라당 시절부터 성적 위주로 서열화된 대학 사회를 구조조정하겠다는 의지를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았다. 더욱이 새누리당은 교육에도 신자유주의를 적용해 교육 기관인 대학을 하나의 기업 다루 듯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새누리당에게 제대로 된 교육 복지 정책을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여론이 있다. 오히려 새누리당은 성적 위주로 서열화 돼 있는 현재 교육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방향의 정책을 통해 학벌 세습체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비 지원 정책에 그친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대표 한명숙)의 정책에서도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절박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민주통합당이 4·11 총선을 앞두고 발표한 '3+3' 정책의 주요 과제에서 제출된 주된 교육개혁 과제는 '반값 등록금'밖에 없는 실정이다.
민주통합당은 2011년 발간한 '민주당의 복지구상'에서 '반값 등록금'을 교육 분야 핵심 공약으로 내걸며 '과도한 등록금'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등록금이 과도하게 책정되는 원인으로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지원이 미흡하며, 사립대학이 사실상 등록금에 의존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따라서 민주통합당은 과도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재정 지원을 통해 사립대학의 운영을 보조해 등록금에 의존하는 대학 운영을 피해보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의 이러한 '반값 등록금' 정책은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의 요구에 비춰봤을 때 합당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한국 교육 문제의 핵심 사안인 '학벌 체제'와 '성적 위주 입시 경쟁' 문제에 대한 해법이나 교육 문제 전반을 관통하는 개혁안을 내놓지 못하였다.
민주통합당은 대학 구조개혁 방안에서도 뜨뜻미지근한 입장이다. 서울대 법인화로 대표되는 국립대 민영화 방안은 본래 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교육부 장관 시절 밀어붙인 정책이었다. 또한 사립대학 비리 척결과 통폐합 문제에 있어서도 과거 민주당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왔다. 민주통합당은 최근에서야 야권연대 협상 과정에서 서울대 법인화 폐지와 사립대학의 국공립화에 합의하고 이를 공약했을 뿐이다.
이처럼 민주통합당의 교육 복지 정책 역시 부족한 돈을 지원하는 식의 '복지=서비스'라는 기존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정책 대안이 실제 교육 개혁에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전면적인 교육 개혁 내건 통합진보당
통합진보당(공동대표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은 전면적인 교육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무엇보다도 통합진보당은 교육 복지 정책의 목표를 '대학 서열화와 고질적인 학벌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상향평준화' '공교육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담당하는 국공립대학과 특성화된 교육을 담당하는 사립대학의 공존'으로 내걸고 학벌 지상주의를 타파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핵심공약의 첫 번째로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체계 추진'을 제시하고 부실한 사립대학을 퇴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공립대학으로 적극 편입하겠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은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체계'를 통해 1단계로 입학 정원의 50%, 2단계로 입학 정원의 80%를 국공립대학에 망라해 교육 복지 시스템을 국공립대학 위주로 완전히 개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공약은 등록금에 의존해 운영되는 사립대학에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운영비만 지원하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립대학을 적극적으로 공교육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비용 문제와 대학 서열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통합진보당은 국공립대학 중심의 대학 구조개혁과 더불어 현재 수학능력시험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입시 경쟁체제를 '대학입학자격고사'와 '고등학교 졸업 자격고사'를 동시에 도입하여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이 방안에 따르면 통합진보당은 먼저 고등학교를 전면 의무교육화해 공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고등학교 졸업 자격고사'를 중고등학교를 마친 모든 학생들이 달성해야 할 최저 학력 기준으로 제시한다. 학업이 미달된 학생들은 보충교육을 통해 완전 학습을 지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통합진보당은 '고등학교 졸업 자격고사'를 통과한 학생들이 '대학입학자격고사'를 치러 기준 점수만 넘으면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체계'로 대폭 확충된 국공립대학에 대해 입학 자격을 부여해 학생들의 성적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은 이를 통해 성적 경쟁 위주의 입시제도와 학벌 체제를 근본적으로 고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무상교육을 가장 먼저 제시한 정당답게 통합진보당은 교육비용에 대한 정부 재정 확충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한 고등교육 재정을 확충, 고등학교까지 전면 의무교육을 야권연대 협상과정에서 민주통합당에 공동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제안하여 합의를 이끌어냈다. 또한 사립대학의 의무인 법인 전입금 확충 문제 역시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해 강제한다는 복안이다.
통합진보당의 교육 복지 정책은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학벌체제와 성적위주 입시경쟁' 문제를 근원부터 접근해 들어갔다는 점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통합진보당은 동시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체계와 대학 교육 체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밑그림을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 복지 이제껏 많은 정치인과 정부 인사들이 한국의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모두들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아무도 성적순으로 서열화된 사립대학 위주의 대학 교육 체계를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소위 명문고, 명문대 간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스스로 자기 성벽을 허물 리 없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 복지라 할 수 있다. 학교를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면서 등록금 장사, 입학원서 장사에 빠진 부패한 사립학교들은 이제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야 한다. 결국 국공립 대학을 위주로 한 공공 교육이 자기 자리를 찾아갈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을 완성할 때만이 진정한 교육 복지가 실현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작성한 김성훈씨는 우리사회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우리사회연구소 누리집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