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중팔구의 여성들은 결혼을 합니다. 결혼을 하면 부부의 연으로 생긴 가족들을 건사하기도 하고 자식들도 품습니다. 인간의 신체 장기 중 그 어느 곳 하나 허투루 있거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인류의 역사에서 어머니의 자궁처럼 소중한 것도 없습니다.
자궁을 축출해도 여성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은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위대한 역할입니다. 한 생명, 인류의 모든 사람들 일생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됩니다.
어머니들은 수정과 착상, 감수분열을 하며 한 생명이 탄생하는 동안에 발생하는 온갖 증상, 소위 임신초기의 입덧이라고 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며 아이를 출산합니다.
출산한 아이는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제대로 자지 못하며 잠을 재우고, 제대로 먹지 못하며 먹여야 합니다. 당신은 씻지 못하더라도 씻기며 애지중지, 극진히 보살펴야만 무탈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 아이입니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합니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약한 여자에서 강한 어머니가 됩니다.
자식 대신 '자慈'자와 '제濟'자를 품고 살아가는 비구니십중팔구의 여성들이 결혼을 할 때 출가를 하고, 결혼한 여성들이 가족이나 자식을 품을 때 '자慈'자와 '제濟'자를 품고 살아가는 비구니, 여성 출가 수행자가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의 간이역인 정토마을, 불교호스피스 활동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능행 스님이 가족과 자식 대신 '자'와 '제'를 품은 스님입니다.
1988년, 15명의 봉사자들과 불교봉사단체 '자비회'를 설립해 2000년부터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서 독립형 호스피스 '정토마을'을 개원하는 것으로 출가 수행자가 품은 자제는 감수분열을 시작했습니다.
감수분열을 시작한 자제의 태동은 2004년 재단법인 정토사관자재회로 설립되었습니다. 그런 착상의 결과로 2005년에는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에 자제병원을 건립할 부지를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3월에 기공한 의료복지 임상전문인력 양성기관인 '마하보디교육원'은 2007년에 개원돼 죽어가는 생명들이 몸과 마을을 기댈 수 있는 호스피스, 고통과 외로움을 완화시켜 줄 줄기세포 같은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있습니다.
완화의료전문 '자제병원' 상량대법회임상전문인력 양성기관인 마하보디육원으로 감수분열한 자제, 능행 스님이 잉태와 출산을 꿈꾸고 있는 한국 불교계 최초의 완화의료전문 '자제병원'이 4월 1일 상량법회를 올리는 것으로 태동의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호스피스 전문교육기관 마하보디센터가 개원을 하던 날 지난 2007년 10월 7일, 얼마 전 입적하신 총무원장 지관 스님께서는 개원법회에 참석해 사람이 지을 수 있는 많은 덕 중에서 그 중 으뜸은 바로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간병공덕'이라는 말씀에 이어, 경문의 한 구절, '난행을 능행하면 존중여불(실천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실천하면 그게 곧 부처님과 같으니라)'라는 말씀으로 능행스님의 공덕과 업적을 치하셨었습니다.
2010년 4월 18일, 자제병원 건립 천일애 행복기도 대법회에 참석한 혜국 스님께서는 종단에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비구니 스님이 하고 있다면서 물심양면의 후원을 약속하셨었습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부부의 만남이 감수분열을 해가면서 사람의 형체를 띠어가듯, 마음으로도 쉽게 그려지지 않던 자제병원을 위한 땅이 한 뼘 한 뼘 마련되어 터파기를 하고, 병원이 될 건물을 건축하기 시작하더니 골격의 완성 단계라 할 상량식이 4월 1일 치러진 것입니다.
1만1500명의 후원자들이 함께 하는 자제병원 건립행사 시작 2시간 전인 8시 30분경에 도착한 행사장 입구는 오색 연등으로 즐비합니다. 오색 연등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니 상량식을 올린 시멘트 건물,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건축 중인 자제병원 건물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공사 중이기에 다듬어지지 않은 회색빛 콘크리트 덩어리입니다. 건물 앞쪽으로 제단이 차려져 있습니다. 오방색 천으로 동여 멘 장엄한 들보도 가지런하게 놓여 있습니다.
마당에는 이미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보시할 수 있는 부스들이 빙 둘러 차려져 있고, 행사가 치러질 무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몸을 의지해 앉을 수 있는 의자도 1500개나 줄을 맞춰 놓여 있습니다.
행사가 시작될 시간이 다가오니 한가하기만 하던 행사장으로 사람들이 썰물처럼 밀려옵니다. 안국선원에서는 20여 대의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왔다고 합니다. 족히 800여 명은 될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서니 여유로웠던 행사장은 어느새 복잡하기까지 합니다.
10시 30분, (재)정토사관자재회 자제병원 상량대법회가 시작됩니다. 야단법석으로 치러지는 상량식이니 대북을 울리고,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는 것으로 행사가 시작됩니다.
이사장인 능행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경과보고가 이어집니다. 1만1500명의 후원과 정성, 그 후원과 정성이 낳고 있는 결과를 시시콜콜할 정도로 자세하게 보고합니다. 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과 전국비구니회장인 명우 스님께서 격려사를 하고, 울주군수를 위시한 각계의 참석 내빈들이 축사를 합니다.
법단에 오른 안국선원장, 얼마 전 치러진 부산 범어사 주지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선출된 수불 스님께서는 '감성'을 주제로 법문을 하십니다. <아함경>과 <법망경>에 나오는 경구를 들어 설법하시고, 질병치료 이상으로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자제병원이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병자를 도와주는 이가 곧 나를 돌봐주는 이라는 것을 설하십니다.
꽃비 나리고 행복 흘러 넘치는 상량식상량대법회를 끝내고 2부 행사로 상량식이 이어집니다. 스님들께서는 상량식을 집전하기 위해 들보를 올린 건축물 앞까지 이동하고, 행사장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의자를 180도 돌려놓고 앉았습니다.
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의 집전으로 상량식이 봉행됩니다. 일련의 제를 마치니 바닥에 오방색 헝겊으로 동여메 놓여있던 상량, 들보가 기중기에 들려 조금씩 떠오릅니다.
꽃비가 나립니다. 꽃잎이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2층 난간에 서있던 열여섯 보살님들이 뿌리는 꽃잎이 들보 위로 꽃비가 되어 쏟아집니다.
어떤 꽃잎은 천상의 여인처럼 나풀거리고, 어떤 꽃잎은 비천상에서 들려오던 몽환의 소리처럼 아득한 떨림으로 떨어집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칩니다. 쏟아지는 꽃비가 출렁거릴 만큼 사람들이 치는 박수소리가 큽니다. 기쁜 마음이 뭉클거리고, 따뜻한 가슴이 출렁거리는 행복 가득한 광경입니다.
헐렁했던 헝겊 줄, 오방색 천이 조금씩 당겨지며 팽팽해지며 들보가 올라갑니다. 들보에 매달린 노란 색 자루 두 개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동안에 고생했고, 앞으로도 수고해 줄 공사현장 사람들에게 건네는 마음을 자루에 넣기 위해 몰려듭니다. 몰려드는 사람들로 몇 차례나 들보가 멈칫거렸습니다.
아름드리 굵기의 나무를 켜서 만든 들보에는 상량일시와 상량문이 적혀 있지만 둘둘 만 헝겊에 가려 전문을 읽을 수는 없었습니다. 기중기에 매달린 들보가 어느덧 3층 옥상 높이로 올라갔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오방색 헝겊을 달고 떠올라 있는 들보는 출산 직전 아가의 모습과 흡사한 자제병원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이 절을 올립니다. 가슴에 품은 소원, 자제병원에 담고자 했던 당신들의 기도가 원만히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극한 절로 표현합니다.
무수리를 자처하는 '정념회' 사람들상량식이 끝나니 점심식사가 시작됩니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앉아 비빔밥으로 나온 절밥을 먹습니다. 이번 행사에도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사람들은 정념회 사람들 이었습니다.
2005년부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중요하지만 궂고 힘들 수밖에 없는 식사와 관련한 봉사는 정념회의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궂고 힘든 일이지만 무수리를 자청하는 기꺼운 마음들이기에 일하는 사람들은 웃는 얼굴이고 신명나는 손길입니다.
굿은 일을 하면서도 띠는 가식 없는 웃음, 분명 힘들 것임에도 넘쳐나는 신명에 절집의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봄 햇살 아래 서서 비빔밥 한 그릇 뚝딱 비우며 포식의 만족감에 젖어듭니다.
안국선원에서 온 사람들은 별도로 식사를 준비해 와 무리무리 먹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있는 절엘 오면 응당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알 텐데 왜 별도로 도시락을 준비해 왔는지가 궁금해 여러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안국선원에서 온 사람들이 도시락을 준비해 온 것은 식사 한 끼에 대한 부담마저도 오로지 자제병원 건립에 사용되기를 바라는 보시행, 작지만 큰 보시의 실천이었습니다.
엉덩이와 어깨 들썩이게 하는 '나도 가수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다시 행사장으로 모여듭니다. 3부 행사가 '나도 가수다'라는 타이틀로 진행됩니다. 사람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어떤 노래는 엉덩이와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어떤 노래는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우스갯소리에 승속을 구분하지 않고 박장대소하니 행복한 얼굴들이 출렁댑니다. 노래를 잘한 사람에게 상품이 주어지고, 행운이 뒤따르는 사람들에겐 경품을 지급하며 야단법석으로 치러진 (재)정토사관자재회 자제병원 상량대법회는 행복빛깔 무지개로 끝났습니다.
3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능행 스님께 병원 이름이 왜 '자제慈濟'로 하였는지를 여쭸습니다. 능행 스님이 품고 있는 자제는 자제라는 글 자체에 담긴 뜻을 넘어 선, '상구보리하화중생'의 실천이었습니다.
'아제 아제 바라 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세 가세 어서가세 피안의 저 언덕으로 함께 나가세'의 실천이라고 하셨습니다. 스님들과 운영위원, 후원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고통 없고, 외로움 없는 세상으로 함께 나가기 위한 불심의 실천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제, '티끌 같은 정성', '낙숫물 같은 후원' 이어져야자제병원의 현재는 출산을 앞뒀거나 막 태어나려는 아가의 모습입니다. 뱃속에 있을 때 보다 더 많은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배냇저고리를 입고 지내는 갓난아이 상태입니다. 출산한 아이는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배냇저고리를 대신 할 옷, 모유를 대신 할 이유식, 세상의 병마에 대항할 저항력을 키워 줄 예방주사도 필요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아픈 거라고 합니다. 나이를 많이 먹지 않아도 아플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아프다는 건 괴로움입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생로병사입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되고,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티끌 같은 정성이 모이고 낙숫물 같은 후원이 이어지면 능행 스님이 품고 있는 자제병원은 태산 같은 고해, 바위 같은 병상의 고통과 외로움조차도 더불어 피안으로 가는 반야의 용선이 될 것입니다.
조계종 제13대 종정으로 추대 된 진제당 법원 대종사께서는 3월 28일 오후 2시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봉행된 추대식에서 "온 세계가 한 집이요, 만 가지 형상이 나와 둘이 아니다"라며 "고통 받는 이웃과 중생이 있는 그 곳에 함께하며 병들고 가난한 이를 내 몸같이 사랑하고 보살피자"고 말씀하시며 부처님 가르침의 사회적 실천을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티끌 같은 정성이 태산처럼 모아지고, 낙숫물 같은 후원이 바위를 뚫고 대하를 이룰 만큼 이어져 '자제병원'이 순풍을 만난 반야용선으로 사바세계 곳곳에서 두둥실 떠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