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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3월이 지나갔다. 등록금 내랴, 전공서적 사랴, 신입생 밥 사주랴, 심지어는 교통비까지 올라 돈을 아끼고 아껴도 모자란 날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한층 더 고통스러운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자취생'들이다. 등록금, 책값, 식비, 교통비에 생활비까지 감당하려니 <무한도전>의 하하처럼 '미추어 버리겠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돈, 혹은 아르바이트로 벌 수 있는 돈은 매년 한정적인데 꾸준히 올라가는 물가 때문에 자취생들은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한다. 자취생들에게 서울은 '저 많은 집들 중 내 몸 하나 뉘일 곳 없을까'라는 신세한탄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신혼부부도 찾기 힘들다는 '서울의 전셋집'을 자취생들이 더 적은 돈으로 구하는 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자취생활의 외로움을 견디며 일명 '자달(자취의 달인)'로 성장(?)하고 있는 서울의 자취생들을 만나 그들의 '자취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때론 웃음 나오고 때론 짠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1년차 자취생 A군] "학교는 서울인데, 전셋값 때문에 인천으로?"

 A군이 SNS에서 집을 찾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A군이 SNS에서 집을 찾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 조윤희

3월은 대학생들이 마음을 잡고 새 학기를 시작하는 시기이지만,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대학생 A군는 학업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다. 지난 2월 말, 집주인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학생, 방음 공사를 해야 돼서 그런데 방 좀 빼줄 수 있을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 같았다. 2월 말이면 이미 좋은 부동산 매물은 대부분 팔린 후이기 때문이다. 남은 집이라곤 비싸거나 혹은 시설이 안 좋은 집뿐일 것이 뻔했다. 갑과 을의 관계일지라도, 2년 계약 중 이제 1년 밖에 살지 않은 전셋집이기에 그냥 버텨보려 했다. 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여동생이 계속되는 주인집의 '간곡한' 독촉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전셋집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가장 먼저 현재 살고 있는 성신여대 주위로 매물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1년 만에 전셋값은 2000만 원 이상 올라 그 근방에서는 집을 얻을 수 없었다.

A군이 제시한 금액에 맞춰 부동산 중개업자가 소개해준 오래된 다세대 주택은 A군에겐 꽤 충격적이었다. '이곳에서 어떻게 2년을 살까'하는 막막한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내가 너무 집 고르는 기준이 높나?'라는 고민까지 들었다. 사실 A군 혼자 사는 집이라면 서울의 어디든 가격만 잘 맞춰 구하면 됐다. 하지만 여동생 두 명과 함께 살아야 할 집이다보니 보안이나 시설문제 등 따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1년 전엔 교통, 보안, 시설의 삼박자가 모두 잘 갖춘 곳을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 중 한 가지를 포기해야 '서울 안'에서 살 수 있다.

세 가지를 만족하는 집을 찾으려면 이제는 서울 근방으로 향하는 의정부행이나 인천행 열차를 타야 했다. 1년 사이에 서울땅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A군은 해마다 치솟는 서울의 부동산 가격에 앞으로의 서울 생활에 두려움을 느꼈다. 서울을 돌아다니며 A군이 느낀 것은 1년 전 보다 서울은 '시작하는 이들에게' 더 힘든 곳이 되었다는 점이다. 

[4년차 자취생 B양] "여름엔 동물원, 겨울엔 이글루"

"자취방에 바퀴벌레 없으면 그게 자취방이냐."

자취생 B양의 한 마디는 4년의 자취생을 통해 다져진 그녀의 '내공'을 알 수 있게 한다. 현재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B양은 '자취 하수' 시절 잘못 고른 첫 자취방이 지금의 그녀를 있게 했다고 털어놨다. 4년 전 그녀의 첫 자취방으로 돌아가보자.

한여름 밤, B양이 불을 끄고 침대 위에 가만히 누으면 '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퀴벌레들이 어둠 속에서 신나게 달리는 소리였다. 어느 날, 자고 있던 B양은 머리 위로 '다다다다다'하는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잠에서 깬 B양은 바퀴벌레가 도망가지 않도록 천천히 전등 스위치로 향했다. 불을 켜자마자 잽싸게 바퀴벌레 스프레이를 집어 들어 소리가 난 곳을 조준한 순간 10cm 정도 되는 지네가 '다다다다다' 소리를 내며 침대 밑으로 달아났다.

바퀴벌레에 단련된 B양이었지만 다리 많은 지네는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적이었다. 결국 그녀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지네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지네뿐만이 아니다. 봄, 여름, 가을 내내 말벌이 B양의 방 안으로 들어와 생명의 위협도 느낀 적도 있었다.

B양의 집은 곤충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인기였다. 3월의 어느 밤, 자고 있던 B양 머리 위에서 이번엔 '구루구루' 하는 소리가 났다. 비둘기 한 마리가 자고 있던 B양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비둘기는 바깥 창문을 열고 들어와 이중창 틈 사이에 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비둘기가 어떻게 문을 열고 이중창 사이로 들어왔는지 B양에겐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난방 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자취집은 한겨울 밖에 있는 것처럼 춥다. 영화 <남극일기>의 한 장면.
난방 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자취집은 한겨울 밖에 있는 것처럼 춥다. 영화 <남극일기>의 한 장면.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겨울이 되자 모든 벌레들이 B양의 집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벌레 하나 살 수 없을 만큼 자취방이 추웠기 때문이다. 오래된 집이라 난방시설이 효율적이지 못했다. 수도관의 동파를 막기 위해 설정한다는 '보일러 외출모드'로 24시간 설정해 놔도 가스값은 매달 5만 원 이상 나왔다. 보일러 온도를 높여 집을 따뜻하게 하면 가스비용은 15만 원 이상 나올 기세였다. 결국 B양은 부담스러운 가스값 때문에 겨울 내내 집에서 입김이 나오도록 춥게 살아야 했다.

집에 있는 동안은 수면바지와 수면양말을 세트로 장착해 입고 지내야 했다. 오리털 이불은 B양이 온기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공부를 할 때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얼굴만 빼꼼 내밀어 책을 봤다. 일조량이 줄고 날씨가 추워지면 우울증에 잘 걸린다고 하듯, 결국 그 해 겨울, B양은 우울증까지 걸렸다. 계약이 끝나는 2월, B양은 햇빛이 잘 드는 새로운 자취방을 얻어 미련없이 그 집을 떠났다.

B양은 유일하게 살림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엄마에게도 나중에는 걱정만 끼치는 것 같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고 했다. 탈 많았던 '자취 1년차' 시절, 문제가 있을 때마다 B양이 도움을 청했던 곳은 다름 아닌 '네이버 지식in'이었다. '벌레 죽이는 방법'부터 '공과비 내는 방법'까지 네이버 지식in은 살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지식in느님'의 가르침 속에 B양은 '자달'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6년차 자취생 C양] "자취는 뻔뻔해지는 것이다"

 원룸, 하숙 등을 구하는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원룸, 하숙 등을 구하는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 박가영
C양은 창문 없는 지하방에서 자취를 시작해 현재는 원룸이라는 호사를 누리며 살고 있는 진정한 '자취의 달인'이다. 양팔이 다 펼쳐지지 않을 정도로 작은 지하 고시원이 그녀의 첫 자취방이었다. 빛 하나 들지 않아 시계가 없으면 밤인지 낮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지하 고시방에서의 10개월이란 시간은 C양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

지하방에서의 삶이 끔찍했던 C양은 그 뒤로 의심할 만큼 싼 곳은 피한다고 했다. 매물이 싸게 나온 곳은 주인이 빚이 있거나 혹은 무언가 중대한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자취했던 곳은 '가운데 중(中)' 처럼 집 한가운데 기둥이 꽂혀있던 집이었다. 설계가 잘못된 구조이긴 했지만 기둥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어 그녀는 싸게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물 잘 나오는지, 난방 잘 되는지 이런 건 정말 기본적인 것이고…"

C양에게 서울에서 좋은 자취방을 찾는 방법을 물었더니 "뻔뻔해져야지"라는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로 상경한 지 6년차 되는 C양은 집을 구할 땐 '깡촌에서 지금 막 올라온' 순진한 학생처럼 연기한다고 했다. "서울이 이렇게 비싼지 몰랐어요, 갖고 온 돈이 이것 밖에 없는데 잘 맞춰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말하며 우는 소리를 내면 믿거나 말거나 부동산 아저씨는 못 이기는 척 좋은 매물 정보를 알려준다고.

값싼 매물을 찾으러 발품을 파는 것은 1990년대 초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C양은 강조했다. 요즘은 인터넷에 지역만 검색하면 부동산 시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부동산이 스피드뱅X, 부동산11X와 같은 부동산 정보 회사에 가맹되어 있어 직접 부동산을 돌아다닌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비슷하다. 발에 땀나도록 뛰어봤자 체력 낭비,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집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으로 시세를 파악해 지역을 선정한 후 그 동네의 정보력 좋은 부동산 중개업자를 찾아 '시골에서 막 올라온 학생'인 양 연기하는 것이라고 C양은 강조했다.

더불어 그녀는 마음에 드는 매물이 있다면 낮에 한 번 가보고, 밤에도 한 번 더 가보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대부분 집을 보러 다닐 땐 낮에 돌아다니는데, 낮에는 그 동네의 '밤 분위기'를 파악할 수가 없다. 실제로 낮에는 멀쩡한 동네가 밤에는 일진 고등학생들이 모이는 '아지트'로 돌변하기도 한다고. 

'자취의 달인'으로 거듭난 C양이지만, 지금도 자취 생활이 쉽지만은 않단다. "취업 준비로도 바쁜데 집안일까지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전에 살았던 지하방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C양은 "'내가 그런 곳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뭘 못하겠어?'라는 생각에 다시 용기가 난다"며 "그 힘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자신의 자취인생을 회상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중년의 주인집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은 착한 것이 아니라 바보같은 짓이다."

끝으로 C양이 자취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주인집과의 관계에 대해 알려준 한 가지 조언을 전하며 3명의 이야기를 마친다. 아직도 자취생으로서의 이익과 권리를 지키는 것에 부끄러워 하는 '초보 자취생'들이여 용기를 가지시라. '자달'의 길이 멀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조윤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취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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