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아그라와 함께 북인도의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로 불리는 자이푸르는 라자스탄 주의 수도이다. 자이푸르는 핑크시티라고 불리기도 하는 데 이유는 영국 왕세자(에드워드 7세)가 자이푸르를 방문할 당시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온 도시를 핑크색으로 장식했기 때문이다.
일행이 계획한 스케줄은 새벽에 자이푸르에 도착해 숙소에서 자고 아침에 관광에 나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 되는가 특히 인도여행이라면. 인도의 열차는 언제 올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잦은 연착으로 여행자들의 애를 먹인다.
아그라에서 7시 반에 출발할 예정이던 열차는 다음날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다. 새벽 5시쯤 자이푸르역에 도착하니 밤 열차와 추위에 시달린 학생들은 기진맥진이다. 아그라포트역에서 있었던 카메라도난 사건을 겪은 학생들은 긴장하고 있었지만 쏟아지는 잠은 어쩔 수가 없다. 학생들을 대합실 중앙에 모이게 하고 배낭을 베고 잠을 자도록 했다.
혹자는 대합실 바닥에 널브러져 자는 학생들을 보고 인솔교사들을 욕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는 한국이 아닌 인도. 밤기차를 기다리다 대합실에서 잠자는 인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흡사 전쟁터를 빠져나온 피난민 같은 모습이다. 인도인들은 일상이 된 듯 어느 역에서나 마찬가지다.
인도인들이 옷 위에 즐겨 걸치는 '깜발'은 아주 다용도다. 담요처럼 생긴 깜발은 추울 때는 얼굴만 내놓고 상반신까지 덮는다. 대합실에서 잠잘 때는 깔개로, 사막 여행을 할 때는 모래위에 펼쳐 놓고 밥상이 된다.
줄타기 외교로 독립국 신분을 유지한 카츠츠와하 왕조자이푸르에서 11㎞떨어진 구릉에 자리한 암베르성은 11세기에서 18세기까지 카츠츠와하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다. 현재는 옹색한 규모의 작은 마을이지만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다.
암베르 성은 무굴 황제 악바르와의 혼인동맹을 통해 왕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마하라자 만 싱(Man Singh)이 건설했다. 마하라지는 위대한(Maha) +왕(Raja)의 합성어인 인도의 지방 군주를 일컫는 말이다. 자이 싱은 무굴제국의 황제인 악바르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보냄으로써 평화를 보장받았다.
무굴에 대항해 끝까지 독립을 지켰던 마하라자 왕조는 영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정책을 펼쳤다. 인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벌어진 세포이 항쟁(Sepoy's Mutiny) 당시에도 마하라자는 영국측 입장에 섰다. 영국이 지방 군주 세력을 정치적 상징으로 인정해 주었기 때문으로 이는 영국의 계산이었다.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자이 싱 2세는 무굴제국이 쇠약해지자 암베르포트에서 자이푸르로 수도를 옮겼다. 이곳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아늑함과 훌륭한 경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이 싱은 벵갈 출신의 젊은 건축가와 함께 힌두 특유의 건축 양식인 실파사트라(Shilpa Shastra) 스타일로 도시를 건설했다.
'바람의 궁전'이라고 불리는 하와마할은 1799년에 지어진 자이푸르의 대표적인 볼거리이다. 바람의 궁전이라는 이름은 밖에서 부는 작은 바람을 증폭시켜 건물 전체를 시원하게 만드는 특이한 건물구조이다. 보수적인 봉건시절에 바깥출입이 금지된 왕가의 여인들이 하와마할의 문틈을 이용해 바깥세상을 구경했다고 한다.
인도 3대 라씨(Lassi) 가게 중 하나인 라씨왈라는 외국인들로 문전성시대부분의 해외여행이 그렇지만 입이 짧은 사람은 해외 여행할 때 더욱 고달프다. 맞지 않는 음식과 독특한 향신료 냄새는 장기 여행자를 지치게 만든다. 여행은 상당한 체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과일은 체력을 보강시켜 주는 영양 공급원이 된다. 거기에 또 다른 음식이 입에 맞는다면 금상첨화다.
인도를 여행할 때 우리 입맛에 맞고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은 라씨 가게다. 라씨는 유유를 발효시킨 커드에 물을 타고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 주는 일종의 요구르트다. 조금 걸쭉한 요구르트라고 보면 된다. 여행객들 입맛에 부담 없고 약간 신맛이 나지만 갈증과 피로를 풀어준다.
중심가인 M.I로드에는 인도 3대 라씨집이 있다. 주인이 라씨집을 25년째 운영한다는 라씨왈라는 명불허전이라고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가게 바로 옆에 똑같은 라씨 집이 있어도 사람들은 원조 라씨집만 찾는다. 점토로 만든 라씨컵은 주인이 가게 옆에 세워둔 드럼통에 던져서 깨도된다. 나는 인도 여행 중 입맛이 없을 때 항상 라씨집을 찾았다. 귀국한 지금은 아예 집에서 요구르트를 만들어 매일 먹는다.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인 암베르 성암베르성은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다. 높은 산위에 설치한 암베르성은 산 정상을 따라 성벽이 둘러싸고 있다.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높은 산에 쌓은 성으로 자이푸르에서 암베르포성을 보지 않았더라면 자이푸르가 별로 매력이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암베르성의 핵심 볼거리 중 하나인 쉬시 마할은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 장식으로 인해 촛불 한 개만 있어도 방 전체를 환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대리석에 세밀하게 새긴 석공의 기술은 놀랍다.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제작하는 나라 인도헐리우드만 기억하는 사람은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허나 사실은 인도가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제작한다. 인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약간 어설프다는 생각이 든다. 뻔한 스토리와 어색한 춤. 하지만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도 있다.
자이푸르 중심가인 M.I로드에는 라즈 만디르라는 유명한 극장이 있다. 시간이 있어 라즈 만디르에서 영화감상을 하기로 한 계획은 틀어졌다. 만원이라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네루 바자르 인근에 있는 '고일차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는 구성과 스토리가 탄탄했다.
일행은 핑크빛 도시가 외교력인가? 아니면 관광객유치를 위한 방편인가? 고개를 갸웃하며 사막위의 도시 자이살메르로 떠났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