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문정현 신부 제주 강정포구 7미터 삼발이 아래 추락...부상 문정현 신부가 6일 오후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 현장 부근 서방파제에서 추락해 부상을 당했다. 119구급대가 부상당한 문 신부를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강정마을회 제공>
문정현 신부 제주 강정포구 7미터 삼발이 아래 추락...부상문정현 신부가 6일 오후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 현장 부근 서방파제에서 추락해 부상을 당했다. 119구급대가 부상당한 문 신부를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강정마을회 제공> ⓒ 연합뉴스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던 문정현 신부가 지난 6일 강정포구 방파제에서 7미터 높이의 삼발이 아래로 추락했다.

"문정현 신부님이 강정포구 서방파제에서 떨어지셨다."

한 문장을 쓰고 십 분 넘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강정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라고 외치면서, 구럼비가 깨어지는 것이 뼈마디가 부서지는 것처럼 아픈 일이라면서 문정현 신부님이 시멘트 덩어리 위에서 손자뻘 해경과 몸싸움을 하다가 7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난 어디에 있었는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하늘이 내린 제주의 자연을 위해, 제주 해군기지 꼭 막아야 한다면서, 일흔을 훌쩍 넘긴 노 사제를 싸움의 맨 앞에 세워두고…. 나는 왜 그의 뒤에 숨어 있었는가? 효순이와 미선이가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때에도,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을 미군기지 짖는다고 몰아낼 때에도, 용산참사로 다섯 명의 철거민이 불에 타 죽은 아비규환의 현장에서도, 난 그저 그의 뒤에 숨어있었다.

인권도시를 만드는 일도,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일도, 사형폐지 음악회를 준비하는 일도, 지난 3월 14일 강정의 푸른 밤 콘서트 출연진을 섭외하는 일도, 분명 소중하고 값진 일이다. 그런데 난 왜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가? 문정현 신부님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할아버지 신부님의 허리뼈 마디마디가 부서질 때, 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난, 왜 강정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가? 왜, 오늘 제주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가 취소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는가?

신부님이 계신 제주대학교 병원에 찾아가더라도 신부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있을까? 그의 눈을 보며 괜찮으시냐고 물을 자신이 없다. "어서 일어나셔야죠" 하면서 웃을 수 없을까. 두렵다. 모두가 문정현 신부처럼 싸울 수는 없다고 말한다. 각자 방식과 길이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다 '거리의 신부'가 될 수는 없다. 그래도 문정현 신부처럼 싸우는 사람이 100명은 있어야지, 아니 10명이라도 있어야지. 거리의 신부가 한 명만 있다면 거리의 목사, 거리의 스님, 거리의 학자, 거리의 변호사, 거리의 의사, 거리의 활동가, 거리의 화가, 거리의 음악가…. 한 명씩은 있었어야지. 40년 넘게 한 자리에 서서 흔들림 없이 누가 그처럼 싸워 본 적이 있는가? 다른 길은 없다. 문정현의 자리에서 싸울밖에.

덧붙이는 글 | 김덕진 기자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문정현#해군기지#강정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