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렸을때 엉뚱 발랄한 모습으로 언제나 내곁에 있을 것만 같던 녀석이 대학진학을 위해 집을 떠났습니다.
어렸을때 엉뚱 발랄한 모습으로 언제나 내곁에 있을 것만 같던 녀석이 대학진학을 위해 집을 떠났습니다. ⓒ 신광태

"이 아이가 아저씨 따님이에요."

1994년 1월, 춘천시 어느 산부인과에서 간호원이 조그맣고 못생긴 갓난아이를 가리키며 내 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도대체 너희들은 왜 그 모양이냐!

"김 주사 오늘 출근 안 했나?"
"부인이 아기를 낳아서 휴가를 냈습니다."
"뭐? 그 친구 미혼이잖아."
"네... 근데 아기를 낳았습니다."

1993년 12월, 과장이 옆 동료의 결근 이유를 묻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1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서 김아무개씨는 나의 결근에 대해 과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 주사 오늘 왜 안 보여?" 
"아기를 낳아서 못 나왔습니다."
"뭐야? 그 친구 미혼이잖아?"
"네, 그렇긴 한데 아기를 낳아서..."
"어이~ 지역경제계! 도대체 니들 왜들 그래? 사회에 무슨 불만 있어?"

아내가 임신 사실을 내게 말한 것은 1993년도 4월경이었습니다. 아기를 낳기 전에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혼식을 차일피일 미뤘던 것은 형님이 결혼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어머님께서 "어떤 경우라도 동생이 형보다 먼저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의 신혼여행에 동행했던 아이

 1994년, 딸아이는 우리 부부 신혼여행도 같이 동행했습니다.
1994년, 딸아이는 우리 부부 신혼여행도 같이 동행했습니다. ⓒ 신광태

상황이 이렇게 되자(결혼 전에 아이가 태어남), 같은 해 6월 19일 우리 부부는 화천의 조그만 농협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형님이나 어머님 눈치보다 딸아이가 자라서 엄마 아빠 결혼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따지면 대답이 궁색해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신혼여행 갈 때 영은이(딸아이 이름)를 이모한테 맡기고 갈까?"
"세상에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를 우리끼리 즐겁게 보내자고 남의 손에 맡긴다고? 좀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아내는 내 말에 야속한 표정을 지을 만도 한데, 오히려 야릇한 미소를 보입니다. 아마 내게 '딸아이를 데리고 가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눈치를 살피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는 걸 순진한 아내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경주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우리의 신혼여행 사진에 딸 아이가 함께 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재미있는 일 중 하나입니다.

"요즘엔 생활이 많이 좋아지니까, 아이가 태어난 기념으로 여행을 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택시기사는 우리가 딸아이를 위해 경주를 찾은 줄 아는 모양이었습니다. "아닌데요. 우린 신혼여행 온 건데요"라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지 집사람은 창밖을 보며 "어머 저게 말로만 듣던 첨성대구나!"라며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엄마 아빠 신혼여행 사진에 왜 내가 있어?'라는 딸 아이의 질문이 언제 나올지 몰라 불안에 떨다가 나는 자백을 하기도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아빠 엄마가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너를 먼저 낳고 결혼식을 올렸단다"라고 녀석이 세 살 되던 해에 말해버렸습니다.

딸 아이는 참 엉뚱한 녀석이었습니다

 어렸을때 딸아이는 참 엉뚱한 아이였습니다.
어렸을때 딸아이는 참 엉뚱한 아이였습니다. ⓒ 신광태

"아빠 계시니?"

딸아이가 네 살 때 사무실 직원이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안 계시는데요."
"그럼 엄마는 계시니?"
"안 계시는데요."
"그럼 어린 너 혼자 집에 있는 거냐? 너 참 착한 아이로구나! 엄마는 어디 가셨는데?"
"베란다요."

어느 날 직원이 내게 전달할 사항이 있어서 집으로 전화를 했을 때 딸아이와 나눈 통화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오랫동안 사무실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 되었었습니다. 녀석은 자기 옆에 엄마가 없으니까 없다고 한 것인데, 직원들은 딸아이를 수준 높은 센스쟁이로 평가했습니다.

녀석이 다섯 살 되던 어느 날 일요일, 받고 싶지 않은 전화가 있어서 집사람에게 누구에게서 전화가 오던지 나 없다고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새눈을 뜨고 보니 집사람은 빨래를 널기 위해 밖으로 나갔는지 없고, 딸아이가 전화기를 향해 후다닥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전화 받지 마"라고 말하기도 전에 녀석은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제발(술 마시러 나오라는) 친구 녀석의 전화가 아니길...'이란 생각도 하기 전에 딸 아이는 큰소리로 내게 말했습니다.

"아빠 찾는 전화인데, 없다고 그럴까?"

녀석은 나름대로 아빠를 생각해서 말한 건데, 그렇게 말하려면 수화기나 막고 말할 것이지. 하는 수 없이 전화를 건네받았습니다. "자식아! 넌 애들 교육을 그렇게 시키냐?"라는 친구의 핀잔에 "너 때문에 받지 않으려고 했다 인마!"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낮잠 좀 자려고 그랬다, 미안해"라고 말하자 "빨리 기어나와! 한잔하자"는 친구의 답이 돌아옵니다. 딸 아이 덕분에 그날 또 고주망태가 돼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모와 고모를 죽인 우리 딸

"큰일 치르시느라 힘드셨겠어요. 힘내세요!"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어느 날, 집사람은 딸아이의 친구 엄마로부터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아니 큰일이라니, 뭘 말씀 하시는 거죠?"
"얼마 전에 영은이 이모(집사람의 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던데..."

집사람은 얼마 전 오전 11시쯤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를 기억해 냈습니다. 분명히 그날 딸아이는 "선생님이 일찍 보내줬어"라고 말했는데, 일찍 집에 가야 할 구실을 생각하던 녀석이 '이모님이 돌아가셨다'는 핑계를 댄 겁니다. 녀석은 참 기특하게도 존재하지도 않은 큰 이모를 죽인 겁니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1년 뒤, 자율학습이 싫었던 녀석은 또 고모를 죽였습니다. 역시 내게 여동생이나 누님이 없기 때문에 녀석에게 고모는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죽였습니다.

"인마! 여기 좀 앉아 볼래? 우리 약속 하나하자. 아빠도 살면서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을 테니, 너도 이제 거짓말하지 않기로 약속해 줄래?"

이 같은 서로의 약속 때문인지, 녀석은 그 이후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대신 뻔뻔스러울 만큼 대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우리 만날까?"

어느 날 퇴근시간 무렵 사무실로 걸려온 딸아이의 전화. 밖에서 딸아이를 만난다는 것. 연애할 때 기분처럼 설렜습니다. '녀석을 만나서 좋아하는 돈가스 시켜놓고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아빠에게 불만은 없는지 등에 대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약속장소로 나갔습니다. 멀리서 녀석이 손을 흔들며 달려옵니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아빠 실은 나 오늘 수학 빵점 받았어. 절대로 엄마한테 말하면 안 돼! 나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간다. 집에서 봐~"이었습니다. 솜방망이로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 녀석은 빵점 받은 사실을 내게 말함으로써 스스로 부담을 털어버리려 했나 봅니다.

어머님의 말씀, 50살이 된 지금에야 알 것 같습니다

 딸아이의 대학진학 기념 해외여행
딸아이의 대학진학 기념 해외여행 ⓒ 신광태

항상 그런 꼬맹이일 줄 알았는데, 딸아이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올해 원주시에 있는 어느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기숙사에 녀석을 데려다 주면서 "대학생 되었다고 맨날 술이나 퍼마시며 돌아다니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려다 그만 울컥했습니다. 녀석이 태어나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언제 집에 오냐?"
"신입생 환영회도 있고, MT도 있고 너무 바빠서 이번 주에도 집에 못 가!"

매주 목요일이면 전화를 통해 집에 올 수 있는지를 묻는 내게 녀석은 집에 못 온다고 말합니다. 아빠 얼굴 보는 것보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더 좋은 모양입니다.

"야~ 인마! 니 어렸을 때 이모도 죽이고 고모도 죽인 주특기 있잖아. 이번에 누구 한 명 죽이고 집에 다녀가는 건 어때?"
"아빠, 농담도 그런 농담하면 죄 받는다."

녀석에게는 농담처럼 들렸겠지만,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녀석이 (거짓말이지만) 그렇게 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젊었을 때 객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내게 "집에 언제 오냐?'고 물으시던 어머님께 "촌동네 가서 뭐하게요. 심심해서 안 가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때 어머님께서 "너도 이다음에 애 낳아 보면 이 어미의 심정 알 거다"라고 하셨는데, 50살이 된 이제야 좀 알 것 같습니다.


#화천#딸아이#아빠와 딸#딸바보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