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4·11총선도 하나의 문화에 속한다. 문화란 영화나 음악이나 패션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까닭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바람이 문화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더욱이 문화를 소비하는 취향에 따라 올바른 민주사회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번 선거문화를 어떻게 바라볼까? 본래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본받는 이들'이다.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비우고 죽기까지 복종한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 사는 자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번 4·11총선에서 자기 욕망의 '이기적인 주체'가 되는 것보다는 타인의 짐과 고통을 짊어지는 '이타적인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런 흐름이 아닐까? 불의한 쪽에서 의로운 쪽으로, 죽임의 방향에서 살림의 방향으로, 전쟁과 광기의 혼돈 속에서 평화와 사랑의 지향점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는 것 말이다. 그것은 가치중립적인 소극적인 태도보다 적극적인 평가와 선택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강영안 교수의<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는 올바른 기독교 문화의 주체와 한국교회의 윤리적 실천과제를 다룬 책이다. 물론 성서의 언어를 선택하기보다 유럽철학의 개념과 언어를 빗대어 설명한다. 그와 같은 우회로를 택한 것은 교회 안에 국한된 편협한 시각보다 더 많은 대중의 뜻을 담고자 함에 있을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좀 더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좀 더 건강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려고 애써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잘못된 행위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또 사회 전체가 잘못될 경우 나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자식조차도 피해를 입게 된다."(49쪽)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문화적인 가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문화는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취향보다는 타인과 사회를 건전하게 세울 수 있는 방향과 선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의 '공공선'과 레비나스의 '이타성'으로 그걸 설명하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과 '한 개인의 막말'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 국민 다수를 쥐어짜는 '사찰'과 개인의 욕망에서 터져 나온 '막말'은 그 경중을 비할 바가 못 된다. 민간인 사찰은 타인과 사회를 건전하게 세워야 할 책임과 도리마저 저버린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치중립적일 수 없는 이유다.
"일상의 거룩성의 회복, 이것이 제자도를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절실한 요청이다. 다원적 상황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참됨을 증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빛의 열매(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를 맺음으로 거룩성을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285쪽)이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기독교 문화의 주체자로 살기 위해서, 한국교회의 윤리적 실천의지를 올바르게 완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른바 착함, 의로움, 진실함과 같은 빛의 열매에 그 해결책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한국개신교가 직면한 신앙의 문제, 목회 윤리 문제, 대물림되는 교회의 현상, 목사와 장로의 임기제 문제 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울러 이 책에는 초기 한국개신교가 주도한 문화정책들을 상기시킨다. 이른바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여성들을 교육시키고, 음주와 술을 멀리하게 하고, 계몽운동을 일으킨 게 그것이다. 그로 하여금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높은 빌딩과 첨탑을 쌓는 바벨탑 문화에 젖어 있고, 더 나아가 높은 권좌에 앉으려는 권력의 문화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도 예수가 걸었던 고난의 길보다 오로지 부활의 영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분명 그리스도 예수가 추구했던 성전정화 사건을 떠올릴 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