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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국민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꼭 10년 전인 2002년 대선에 나온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각박한 한국사회에서 과연 행복하다고 혹은 살림 좀 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설령 그렇더라도 겸양의 미덕을 가르쳐 온 동방예의지국에서 대놓고 "그렇소"라고 할 위인이 또 몇이나 될까? 그렇게 따져보면 이렇게 묻는 투가 부정의 대답을 바라는 정치인의 상투적인 레토릭 같지만,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물음이 선거를 앞둔 2012년 지금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국민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지난 4년, 행복하셨습니까?"

 

지금의 18대 국회는 4년 전인 지난 2008년 4월 9일 선거로 구성되었다. 18대 총선은 사실상 넉 달 전에 있었던 2007년 대선의 연장선에 있었다. 경제를 살리자며 MB를 선택한 민심은 넉 달 뒤의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153석을 안겼다. 같은 뿌리의 작은집이라고 할 수 있는 친박연대의 14석을 합치면 무려 167석의 공룡여당이 태어난 것이다(한나라당이 이름을 바꾼 새누리당의 현재 의석수는 174석이다).

 

어떤 이들은 지난 대선과 총선의 결과를 두고서 유권자들이 탐욕을 선택한 탓이라고 한탄하기도 한다. 도덕성보다는 불도저 같은 능력 때문에 MB를 찍었고 재개발과 뉴타운 사업으로 우리네 집값도 오를까 싶어 한나라당을 찍었으니 일면 그럴 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4~5년 전 유권자들의 선택을 단순한 탐욕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누리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지 않았을까?

 

MB를 선택한 민심에 깔린 '누리고 싶은 욕망'

 

 

한국의 현대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정말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다. 급작스런 해방과 뒤이은 분단, 내전, 혼란과 혁명, 연이은 군사반란, 광주항쟁과 민주화투쟁, 국가부도사태까지…. 마음 편히 지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고 김대중-노무현의 10년을 지내면서, 이제는 우리도 이만큼 민주주의를 이루었으니 당분간은 그 성과를 좀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않을까?

 

정권교체도 해 봤고 비주류의 비주류를 대통령으로 만들기도 했고 남북정상회담도 두 차례, 소득 2만 달러와 주가 2천 시대도 열었으니 이 정도면 민주주의도 남북관계도 더 이상 뒤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질 법하지 않은가. 양극화나 가계 빚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많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선진국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디는 것뿐이라는 기대감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었다.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 정부를 심판하고 MB를 선택한 민심의 밑바닥에는 이처럼 한국사회 전반의 돌이킬 수 없는 변화 및 발전에 대한 자신감과 이제는 그 성과를 좀 누리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함께 깔려 있었다. '자신감'과 '누림의 욕망'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와 그만큼이나 신화적이었던 길거리 응원을 통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노무현 정부가 '심판' 받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훨씬 높아져버린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지도자는 국민들의 정당한 '누림의 욕구'를 제도와 시스템으로 공평무사하게 충족시킨다. 반면 국민들의 '누림의 욕구'를 국민적 탐욕으로 변질시키는 지도자는 그 자신이 탐욕의 화신일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는 전자를 추구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 MB 정부는 과연 어느 쪽일까?

 

4년간 행복했을 검찰과 보수언론, 강남 부자들

 

유권자들은 4년 전 총선에서 새로 탄생한 MB정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집권여당을 참으로 '화끈하게' 밀어줬다. 나는 그것이 떳떳하게 누리고 싶은 국민들의 열망이 표현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서울의 중랑구나 도봉구처럼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주민들이 당시 한나라당 후보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누림의 욕구'를 탐욕의 표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투기의 탐욕으로 끝나는가 하는 것은 행정과 정치의 영역에서 판가름이 난다. 훌륭한 정치인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쁜 정치인은 결과적으로 그를 선택한 유권자들도 명예롭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국민들의 누림의 열망을 등에 업고 절대과반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 MB정권과 함께 지난 4년 동안 한국사회를 이끌어왔다. 그 4년 동안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는지,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싶은 욕망이 떳떳하게 실현되고 충족되었는지 한번 돌아보는 것도 이번 총선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MB정부 치하의 4년이 어떠했는가는 국민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지난 4년이 행복했고 또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면, 이제는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집권여당에게 다시 표를 주면 된다. 반대로 지난 4년이 스트레스로 넘쳐났고 살림살이도 팍팍해졌다면, 그리고 누림의 욕망 대신 투기의 탐욕과 그 후유증만이 남았다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을 준엄하게 심판하고 응징하면 된다.

 

MB와 새누리당 때문에 지난 4년이 행복했던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새 정말로 집값이 많이 올랐거나, 짐작컨대 김대중-노무현 집권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확실히 지난 4년이 무척 행복했을 것이다. 특히 노무현과 정면으로 충돌했던 검찰, 보수언론, 강남 부자들, 그리고 MB와 새누리당 집권기에 여러 족쇄가 풀린 재벌일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4년을 마음껏 누리면서 보내고 있을 것이다.

 

검찰은 BBK라는 희대의 담보물을 갖고 있으니 대통령도 무섭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보수언론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전리품을 챙겼다. 권력 감시가 언론의 소명이라던 "잃어버린 10년" 동안 보수언론들이 보인 호기는 눈 녹듯 사라졌다. 강남 부자들에게는 감세와 부동산 규제 완화라는 선물꾸러미가 안겨졌다. 재벌은 낮은 환율과 규제완화와 법인세 감소로 천문학적인 부를 불렸다. 온갖 흠집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권력핵심부로 직행할 수 있었던 '고소영' 사람들 혹은 '영포라인' 사람들도 생애 최고의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으리라.

 

스트레스와 불행으로 점철된, 누군가의 4년

 

지금 열거한 이들만큼의 행복감을 누리지 못했다면, 여러분이 행여 지금 느끼는 행복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그 반대편에는 지난 4년이 스트레스와 불행의 세월이었던 사람들이 있다. 무리한 재개발에 반대하다가 공권력에 목숨을 잃은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죽어서도 테러리스트라는 누명을 벗지 못했다. 그 현장에는 무리한 진압작전 때문에 목숨을 잃은 특공대도 있었다. 군 당국이 무려 48시간 동안이나 구조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46명의 장병이 있었다.

 

기업과 대학의 부당한 해고 때문에 가정이 파괴된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노동자는 300일 넘게 차가운 고공크레인 위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법정관리 중인 어느 자동차 회사의 노동자들에게 정부는 해고와 진압을 선물했고 그 결과 벌써 22명이나 목숨을 끊었다.

 

미국산 위험한 쇠고기는 먹기 싫다고 길거리로 나섰다가 경찰에게 몰매 맞고 잡혀간 사람들이 있었다. 얼마나 위험한지도 잘 모르는 미국산 쇠고기, 일본산 농수산물을 지금도 대책 없이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다가 경찰에게 매 맞는 거주민이 있었고, 이들을 돕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목회자가 있었다.

 

재벌가의 빵집과 기업형 슈퍼와 '통 큰 치킨'과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덕분에 생계가 무너진 사람들이 있었다. 치솟는 등록금에 학업보다 알바에 내몰리는 대학생들이 있었다.

 

단지 권력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방송계에서 퇴출된 연예인도 있었다. 경제전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잡혀간 누리꾼이 있었다. 낙하산 사장을 거부하고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아직도 파업을 벌이는 방송사 사람들이 있다. 지난 권력과 친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으로 보장된 직위를 잃은 사람도 있었다. 더러는 없는 죄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권력의 집요한 괴롭힘은 전직 대통령도 죽음으로 내몰았다.

 

외교부의 발표만 믿고 투자했다가 돈을 날린 사람들도 있었고 하루하루 힘들게 번 돈을 저축은행에 넣었다가 모두 날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불법사찰로 멀쩡한 인생이 완전히 짓뭉개진 사람도 있었다. 그의 자식들은 모두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다.

 

저소득층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높은 이유

 

 

4대강사업이니 남북관계니 동북아 정세니 자원외교니 한미동맹이니 FTA니 그런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이 나와 내 가족과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까다로운 판단은 잠깐 접어 두더라도, 우리는 과연 지난 4년 동안 행복했던 첫 번째 부류와 가까운지 스트레스 받고 불행했던 두 번째 부류와 가까운지 손쉽게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은 너무나 확실하고 또렷하게 가슴 속에 떠오르기 때문에 모르거나 지나칠 수가 없다. 자신의 양심을 자신은 속일 수가 없다.

 

그런데 현실에는 자신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나라 전체가 잘 되기 위해서는 나라님이나 대기업이 일단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저소득층에서 이른바 '부자정당'인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분들에게는 국가나 지도자나 대기업의 성공이 곧 자신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분들은 선의의 애국심으로 혹은 공동체를 향한 갸륵한 마음씨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강력한 중앙집권의 역사가 천 년이 넘는 우리네 이력을 돌아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 그것도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체제에서는 그런 갸륵한 마음씨만으로는 지도자가 부덕해지거나 대기업이 사악한 횡포를 휘두를 개연성을 방지할 수 없다. 나의 행복에 충실하라는 것은 나 개인의 이익을 탐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불특정 다수의 행복이 제도적으로 충족되도록 노력하라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누리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이 떳떳하게 충족되는 길이고 결국에는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길이기도 하다.

 

세상은 노력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바뀐다

 

세상은 우리가 중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 97년 대선 때 이인제 후보는 자신의 출마로 보수표가 갈라진다는 세간의 우려("이인제를 찍으면 DJ가 당선된다"는 말이 많았다)에 대해 "이인제를 찍으면 이인제가 당선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주었던 후보와 정당을 찍으면 우리는 계속 행복해질 것이고, 우리에게 스트레스와 불행을 안겨주었던 후보와 정당을 표로써 응징하면 그 스트레스와 불행의 원인이 제거될 것이다. 떳떳하게 누리고 싶다면 그럴 만한 능력과 비전을 가진 사람과 정당을 선택해야 하고, 그 열망을 투기와 탐욕으로 치환하는 정치세력은 확실하게 응징해야 한다. 세상은 우리가 행동하고 노력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바뀐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 말을 남긴 링컨은 노예 없는 세상이라는 새로운 미국의 미래를 창조했다. 유난히 치열했던 2012총선,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에 따른 한국사회의 미래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통해서 우리의 결과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렇게 우리의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언제까지 남들이 만들어 줄 미래를 가만히 앉아서 예측만 하고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조할 주권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투표장에 가기 전, 다시 한 번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난 4년, 행복하셨습니까?"


태그:#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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